사도세자의 원찰, 화성 용주사

2021. 5. 27. 09:35바롱이의 쪽지/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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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담은 사도세자 원찰"

화성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縣隆園)의 능침사찰(陵寢寺刹)로서 제사 시 물자를 준비하기 위한 조포사(造泡寺)이며, 능침을 수호하고 명복을 빌게 하는 원당사찰(願堂寺刹)이다.

용주사의 건립은 왕실의 공사발주, 관부로부터 재원조달, 계획부터 공사감독까지 관 주도로 이루어진 관영공사로서 1790년 2월 19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4월 15일에 상량을 하고, 마무리 건축 공사를 진행하며 불상을 조성하고 9월 29일에 점안하여 불상을 봉안하였다. 공사 과정은 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현륭원의궤, 조선사찰사료 등 관련 사료를 통하여 공사내용, 공사재원, 공사집행 및 공사인력 등 공사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연풍교(連豊橋) 주변 자연석에는 '도차문래 막존지해(到此門來 莫存知解)'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문에 이르러선 마음을 허공과 같이 비우라'는 말이다.


용주사 홍살문(홍살문은 왕실의 능(陵)·원(園)·묘(墓)·궁전 관아 등의 정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붉은 칠을 한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한 보에 붉은 살을 쭉 박은 형태로 세워 경의를 표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문이다.

다른 사찰과 달리 용주사에 홍살문이 있었던 이유는 정조대왕께서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護聖殿)을 건립하여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용주사에서는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헌경왕후),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일년에 여섯 번의 재를 모셔 왔다 한다. 그러나 1907년을 끝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이후로 중단 되어 왔다. 2008년(무자년) 6월 24일 오늘, 100년 만에 사도세자 제246주기 체향을 모시면서 홍살문을 복원하고, 호성전의 현판을 제막하는 것은 효찰대본산 용주사 창건 당시의 모습을 회복하여 우리나라 효문화를 선양하는 한편, 정조대왕께서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못다한 혼정신성(昏定晨省)의 효를 사후에 라도 실천하고자 하였던 뜻을 계승하고자 함이다.)


효행박물관(코로나19로 인해 휴관중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12호 화성 용주사 오층석탑 (華城 龍珠寺 五層石塔)]

용주사 주변에 세워져 있었는데, 지장전(地藏殿) 뒤쪽 마당을 거쳐 효행박물관 전면 현재 위치로 다시 이전했다. 전체 높이는 4.5m이며, 화강암으로 조성하였다. 

오층 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우고 상륜부를 설치했다. 기단은 지대석 위에 대형의 사각형 하대석을 놓고 중대석과 상대석을 결구했다. 하대석 각 면에는 안상(眼象) 문양을 3구씩 조각했다. 면석 한 면에는 위패(位牌) 형태 문양을 조각했다. 기단 갑석은 상면에 완만한 낙수면을 표현했고, 중앙부에는 1단의 낮은 탑신 받침이 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을 각각 한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탑신마다 우주를 새겨 놓았다. 초층 탑신석에는 전ㆍ후면에 문비(門扉)를 새겨 놓았으며, 5층 탑신은 나중에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옥개석 중 1∼3층의 옥개받침은 4단, 4층은 3단으로 조성하였으나, 5층은 목조건축의 서까래와 귀포의 결구(結構)를 양각해 놓은 모습이다. 낙수면은 경사가 완만하며 네 귀퉁이는 선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고,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상륜부는 5층 옥개석과 한 돌로 구성하였는데, 둥근 평면의 노반 위에 복발과 보주를 아래서부터 차례로 조각했다. 탑신석과 옥개석의 양식, 치석 수법, 체감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문 설명]

Erected near Yongjusa Temple, this pagoda was relocated to the backyard of Jijangjeon Hall and then was moved once again to its current location at the front of Hyohaeng Museum. Its total height is 4.5m, and it was formed out of granite.

The five-story stone pagoda has a single layer stylobate, five-story tone body and an upper portion. The stylobate placed a large square hadaeseok (lower base) over the jidaeseok (foundation stone) and is covered with jungdaeseok (middle base) and sangdaeseok (upper base). Each side of the hadaeseok (lower base) is sculpted with three pieces of ansang (elephant eye) design. On one side of the myeonseok (side stone), the wipae (ancestral tablet) design has been sculpted. The gapseok (flat covering stone) of the stylobate expresses a gentle water draining plane on the top side, and the central part has a lower body support in one layer.

The tapsinbu (body part) consists of the tapsinseok (body stone) and the okgaeseok (roof stone), which are made with one stone each, and each tapsin is carved with uju (side pillar). The tapsinseok for the first story is carved with the door on the front and back, and the fifth-story tapsin appears to have been restored later. The first to third story support of the okgaeseok (roof stone) is formed of four layers, and the fourth story is formed in three layers, but the fifth story has the rafter and gwipo (gongpo weaved into the robust corner pillar) of the wooden architecture framework in relief. The water draining plane has a gentle slope and the four corners have clear lines, while the hole where the wind chime used to hang remains.

The upper portion is formed using the same stone as the fifth story okgaeseok (roof stone), the bokbal (decoration that looks like an upside-down bowl) and boju (bead-shaped decoration on the top story of a stupa or stone lantern) above the noban (roof-shaped decoration on the top story of the pagoda) of a round flat plane from bottom to top. Considering the tapsinseok (body stone) of the first story okgaeseok, the style of the okgaeseok, polishing technique and mass, the pagoda appears to have been built in the Late Goryeo Period.

출처:문화재청


"하대석 안상, 위패 문양, 문비"


"화성 용주사 오층석탑"


"화성 용주사 오층석탑"


삼문각(궁궐의 대문처럼 보이는 삼문각과 양 옆으론 마치 사대붓집 행랑채와 같은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6호 용주사천보루 (龍珠寺天保樓)]

화성시 성황산 자락에 위치한 용주사의 문루이다. 문루(門樓)는 글자 그대로 누각(樓:2층 규모 이상의 높은 건물) 아랫부분에 출입문을 달은 건물을 부르는 용어인데 아래층에 출입문을 직접 달지 않아도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만 두는 때도 있다.

천보루의 생김새를 보면 평지에 자리해 축대 없이 기단만 1단을 두고 마름모꼴의 높은 돌기둥과 짧은 나무 기둥을 결합하여 1층을 구성하였고, 기둥위에 다시 마루를 짜서 올려 2층의 바닥으로 삼았다. 2층 부분은 둥근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받치는 부재인 공포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이라 이름 붙은 팔작지붕을 올렸다. 천보루의 양옆에는 스님이 머물며 생활하는 공간인 요사와 연결되는 복도가 설치되어 있다. 천보루와 복도, 요사는 마치 하나의 건물처럼 연결되어 있어, 궁궐의 문과 행각(行閣:복도나 방을 줄지어 길게 이어 지은 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보루는 현릉원의 능침사찰이라는 용주사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건물 중 하나로, 부처님을 모시는 건물인 불전보다는 덜 화려하게 꾸몄지만 일반적인 사찰의 문루치고는 상당히 크고 화려하게 지었으며, 양옆에 복도와 요사를 연결하여 궁궐과 유사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영문 설명]

This building is the mullu (attic over the outer gate) of Yongjusa Temple, located on the skirt of Seonghwangsan Mountain of Hwaseong-si. A mullu literally refers to the building below the nugak (building that is two stories or higher) with a door for entering or exiting, and sometimes, a simple road is placed for people to pass by without a door on the bottom floor.

Cheonboru Gate is situated on flat land and formed in one tier of stylobate without a chukdae (building ground up higher). The first story is formed by combining the trapezoid-shaped high stone pillar and short wooden pillar, and the floor of the second story is made by building the flooring over the pillar once more. The second story has round wooden pillars, gongpo (wooden brackets assembled onto the capital to support the weight at the edge of the eaves) to support the roof and a gambrel roof that looks like the Chinese character for eight when seen from the side. To the sides of Cheonboru Gate, a corridor that connects to the yosa, the living quarters for the monks, is installed. Cheonboru Gate, the corridor and yosa are connected like a single building, making them appear like the gate and haenggak (building that lines up corridors and rooms in a straight line) of the royal palace.

One of the buildings that directly exhibits the character of Yongjusa Temple as a neungchimsachal (temple that protects the royal tomb) of Hyunreungwon, Cheonboru Gate is less elaborately decorated than the Buddhist hall where the Buddha is enshrined, but is quite large and splendid for a mullu (attic over the outer gate) of a general temple, and has a structure similar to the royal palace through connecting to the corridor and yosa on either sides.

출처:문화재청

용주사 천보루(대웅보전의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문루*인데, 일반적인 사찰의 건축양식보다는 궁궐이나 대갓집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는 용주사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건물 밖의 현판에는 '천보루', 안의 현판에는 '홍제루' 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밖으로는 하늘이 보호하는 곳이고 안으로는 널리 백성을 구제하여 백성들이 불성을 깨닫게 하는 곳이다.' 라는 의미이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앞쪽으로 1칸만큼 돌출되어 있다.

* 문루: 통행하는 문길 위쪽에 지어진 누각형식의 건물
** 원찰: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된 사찰)


[보물 제1942호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華城 龍珠寺 大雄寶殿)]

화성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縣隆園)의 능침사찰(陵寢寺刹)로서 제사 시 물자를 준비하기 위한 조포사(造泡寺)이며, 능침을 수호하고 명복을 빌게 하는 원당사찰(願堂寺刹)이다.

용주사의 건립은 왕실의 공사발주, 관부로부터 재원조달, 계획부터 공사감독까지 관 주도로 이루어진 관영공사로서 1790년 2월 19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4월 15일에 상량을 하고, 마무리 건축 공사를 진행하며 불상을 조성하고 9월 29일에 점안하여 불상을 봉안하였다. 공사 과정은 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현륭원의궤, 조선사찰사료 등 관련 사료를 통하여 공사내용, 공사재원, 공사집행 및 공사인력 등 공사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용주사의 중심영역은 남북중심축 위에 대웅보전-천보루-삼문을 두고, 승당과 선당, 좌우 익랑을 똑같은 규모의 동일한 형태로 좌우 대칭되게 배치하였다. 용주사의 이와 같은 배치 및 공간구성은 창건 시 모습을 대체로 잘 유지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 능침사찰의 배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대웅보전은 용주사의 주불전으로 여러 번의 중수가 있었지만 외부 단청을 제외하고 초창 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의 건물로 18세기 불전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장대석 기단과 원형주좌를 둔 방형초석, 지붕의 취두와 용두, 양성바름 등은 능침사찰로서 건물의 격을 보여준다. 공포의 구법과 초각수법은 초창시의 시대적 특성을 갖추고 있고, 불단과 닫집의 문양과 조각, 안초공과 귀한대 · 충량의 용조각, 단청 등도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불전을 장엄하고 있다. 대웅보전 건축의 도편수는 문언(文彦, 장흥 천관사 승려)이고, 단청 도편수는 민관(敏寬)으로 당대 최고의 승장들이 건축하였다. 

이처럼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은 능침사찰의 주불전으로 권위와 격식, 시대성을 잘 간직하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국보 제120호 용주사 동종 (龍珠寺 銅鍾)"

 

화성 용주사 동종&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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