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눈이차를 알까요?
[국가등록문화유산 신진 퍼블리카 (新進 퍼블리카) Shinjin Publica]
이 차는 신진자동차가 일본의 도요타 퍼블리카를 국내에 들여와 조립‧생산한 모델이다. 사람들이 자가운전을 시작할 무렵인 1967년부터 1971년까지 2,005대를 생산하였는데, 연료가 적게 들어 주로 도시 중류층이 자가용으로 이용하였다. 공랭식 엔진을 장착하여 주행하다가 자주 쉬면서 엔진을 식혀야 했으며, ‘꼬마차’, ‘빨간차’, ‘왕눈이차’ 등의 애칭으로 불리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3대 가운데 이 차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최초의 국산 경차로 연료절약형 승용차의 첫 모델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출처:국가유산청
[신진 퍼블리카 shinjin Publica]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자동차가 1967년 생산한 신진 퍼블리카, 일본 도요타 퍼블리카의 부품을 국내에 들여와 조립한 차량이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국내에서 총 2,500대가 생산되었다. 최초의 국산 경차이며, 2도어 타입에 2기통 790cc 엔진을 장착했다. 작은 차체와 귀여운 외형 때문에 '꼬마 차', '빨간 차', '왕눈이 차' 등의 애칭으로도 불렸다.
퍼블리카는 차체가 작고 연비가 좋은데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한국의 마이카 시대를 여는데 기여했다. 쌀 한 가마니가 4,350원, 소고기 한 근에 280원이었던 당시 생활 물가에 비추어보면 자동차는 100만원 안팎 가격의 비싼 소비재였으나, 퍼블리카의 판매가는 67만원으로 다른 자동차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에 인기를 얻었다. 전태일 열사가 1970년 작성한 이상적인 기업 '태일피복'의 사업계획에 "직접 왕림하시는 고객에겐 퍼브리카로 목적지까지 모신다"라는 아이디어가 적혀 있어, 퍼블리카가 당시의 대표 인기 차량임을 짐작케 한다.
퍼블리카는 일반 시민들의 자가용 이외에도 택시, 운송차량, 웨딩카로도 사용되며 서울 시내와 전국 곳곳을 누볐다. 사진은 1970년의 광화문 앞 거리의 모습이며, 사진 가운데 쌍둥이 건물인 당시의 경제기획원 (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미국대사관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