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먹거리/토렴

어쩌면 당신은 꽃밥을 닮았네요?

찐 바롱이 2025. 1. 6. 06:09
반응형

천황식당은 진주중앙유등시장 가까이 있는 노포다. 1915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4대째 대를 이어 진주비빔밥을 계승해 오고 있다선짓국을 곁들여 먹는 진주비빔밥이 대표 음식이다석쇠불고기, 육회, 선지해장국(오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판매한다), 콩나물국밥도 맛볼 수 있다.
 
영업시간은 06:00~21:00(마지막 주문 20:00)이며 연중무휴다.
 
진주중앙유등시장을 구경하며 골목을 지나 천황식당 앞에 다다른다. 진주 여행하며 몇 차례 와 어렵지 않게 찾았다.
 
식당 입구엔 자동차 한 대가 서 있다. 현대자동차 포니 픽업이다. 예스러운 식당 건물과 어우러져 옛날 감성을 물씬 풍긴다.
 
식당 건물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져 새로 지은 뒤 현재까지 보존하며 사용 중이다. 오래된 목조 와가로 온돌과 아궁이가 남아있는 전통 한옥이다. 회색빛 단층 건물에 진갈색 나무 출입문이 도드라진다.
 
출입문 앞으로 다가선다. 우측 하얀 간판에 푸른색으로 ‘천황식당’ 상호가 한글로 쓰여 있다. 출입문 창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춘첩자를 한자로 쓴 한지가 붙어 있고 출입문 위 은빛 현판 왼쪽에는 ‘음식점(飮食店)’이란 한문과, 오른쪽에는 ‘restaurant’ 영어가 각인되어 있다.
 
한글, 한자, 영어가 쓰인 글을 보며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짙은 고동색 탁자에 앉는다. 한국 전쟁 때 집을 짓고 남은 나무로 지어진 탁자다. 일반 탁자보다 크기가 작다. 노포의 더께는 하도 닦아 빛난다. 보리차 한잔을 마시고 식당을 둘러본다. 색이 바랜 낡은 현판에 한자로 쓴 ‘천황식당’ 글씨가 흐릿하다. 오랜 역사의 물증이다. 2015년 그려진 그림 액자에는 천황식당 건물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진주비빔밥을 주문하고 식당 뒤편 작은 마당으로 향한다. 장과 젓갈을 담은 수십 개의 장독대가 인상적이다. 직접 장을 담근다. 음식 맛은 장맛이다. 눈으로 확인한다.
 
안채에는 작은 방이 오손도손 붙어 있다. 옛 한옥이 정겹다. 방에 걸려있는 액자가 눈에 띈다. 백련천마(百練千磨). 백번 연습하고 천번 닦는다. 노포의 다짐이 느껴진다.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식당 안에 쓰인 연혁 및 유래를 읽는다.
 
“진주비빔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의병과 군관민 그리고 돌맹이를 나르던 부녀자들의 식사 제공을 위하여 생겨난 음식으로서 간단하게 비벼먹는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80년전 1915년경 현재의 진주시 수정동 나무전거리에서 식당을 경영한 "대방네"라 불려진 할머니에 의해 계승된 "진주비빔밥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철따라 나는 소채로 나물을 만들고 갖은 양념을 넣어 만든 보탕과 육회, 재래식 메주로 만든 간장과 특유의 비법으로 빚은 고추장을 쓰는 것이 특징이며 콩나물국 대신 선지를 넣은 쇠고기국이 나오는 것이 타지방 비빔밥과는 다른점이라 하겠습니다.
 
1986년 진주시로부터 “향토전통음식점으로 지정받은 "천황식당"은 70년전부터 3대째 가업을 이어 받아 "진주비빔밥"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100여평의 목조 와가에서 넓다란 장독대를 지키는 자랑스런 향토전통음식점입니다.”


글을 다 읽을 즘 진주비빔밥 밥상이 식탁에 놓인다. 
 
동그란 놋그릇에 담은 진주비빔밥과 선짓국, 신김치, 깍두기, 포 조림, 동치미 국물 등 밑반찬을 네모난 은색 쟁반에 얹어 내준다.
 
진주비빔밥을 지그시 바라본다. 황금색 둥근 놋그릇에 하얀 쌀밥이 봉긋하다 위로 검은 신선한 계절 나물 분홍빛 육회 등을  둘러 담고  가운데에 꽃술 같은 빨간  고추장을 얹는다진주비빔밥을 꽃밥 또는 칠보화반(七寶花盤)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듯하다볼수록 색감이 곱다. 숟가락을 들었지만 비비지 않는다.
 
꽃밥에서 눈을 돌려 선짓국을 본다. 선짓국은 선지와 내장, 소기름, 살코기로 푹 우려낸 육수에 무, 콩나물, 대파를 넣어서 한 번 더 끓인다. 손에 든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얼근하고 시원하다. 건더기도 각기 다른 질감을 뽐낸다.
 
선짓국 두 술 더 맛보고 눈은 다시 꽃밥으로 돌아온다. 진주비빔밥은 사골국물로 토렴한 밥 위에 호박 나물, 무나물, 콩나물, 숙주나물, 시금치, 양배추, 무, 고사리 등 나물을 삶아 직접 담은 간장과 된장으로 심심하게 무쳐 잘게 썰어 담고 깨소금, 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육회, 잘게 다진 문어를 고명으로 얹는다. 빨간 비법 엿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다. 
 
손은 숟가락 대신 젓가락으로 바꿔 잡는다. 젓가락으로 살살 비빈다. 빨간 꽃술은 여러 식재료와 뒤섞이며 사라지지만 맛과 색을 오롯이 덧입힌다. 
 
한 술 크게 떠 입에 넣는다. 직접 담은 간장과 된장, 엿고추장은 식재료에 스며들어 깊은 맛을 내고 잘게 다진 문어는 감칠맛을 더한다. 토렴한 육수를 머금은 밥알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빨간 꽃술이 묻었지만, 자극적이지 않다. 담담하고 고소하다. 육회는 살강살강 씹힌다. 토렴한 밥의 온기가 스며들어 생고기 느낌이 덜 난다. 잘게 썬 나물들도 또각또각 씹히며 각각의 질감과 맛을 어금니와 혀에 전달한다. 몇 술 더 맛본다. 입안은 풍성해지고 비비기 전의 꽃밥을 뇌에 그려낸다.
 
폭 익은 시금한 배추김치, 짭짤한 동치미, 생선포, 깍두기도 곁들여 먹는다. 단출하지만 모자라지 않은 찬이다.
 
2024년 7월 작고한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는 진귀한 식재료가 아니라 음식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리법이 최고의 음식을 만든다 했다그의 글을 떠올리며 꽃밥을 마지막까지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다
 
 직접 담그고, 밥을 토렴하고, 나물을 삶아 양념하여 잘게 썬다배려와 정성이 담긴 진정성 있는 조리법이 가슴에 남실거린다.
 
흔하지만 천하지 않은 비빔밥표현할 것은  표현하여 부족함이 없는 비빔밥천황식당 꽃밥이다.


칡뿌리와 감초가 놓여있다. 입가심 먹거리도 자연적이고 예스럽다.
 
감초는 화한 매운맛에 단맛이 혀를 감친다. 칡뿌리를 입에 넣고 씹으며 식당을 나선다. 첫맛은 씁쓸하지만 씹을수록 달금하다. 나그네는 단맛의 여운을 즐기며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