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평화(Peace)
일곱 번째 이야기
평화 Peace
하얼빈 의거 직후 일본은 러시아 하얼빈에서 자신들의 관할 구역인 뤼순으로 재판정을 옮겼습니다. 안중근 의사 측 변호는 막혔고, 방청객은 일본인과 기자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외치며 치열하게 법정에서의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많은 글씨와 「동양평화론」, 『안응칠역사』를 남겨 독립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고 동양평화 사상을 설파하였습니다. '대한국인 안중근'은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글로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습니다.
동양평화론 東洋平和論
지금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침략의 손길을 뻗쳐오고 있는데, 이 환란을 동양 인종이 일치단결해서 힘껏 방어함이 최상의 방법임은 어린아이라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 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친구의 정을 끊어, 스스로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물고 물리는 형국이 되어 어부를 기다리듯 하는가.
안중근 의사 공판 방청권
Admission ticket to Ahn Junggeun's trial
1909.2. | 안중근의사숭모회
일본인 신문기자 코마츠모토가 안중근 의사 공판 방청을 위해 받았던 방청권이다.
안중근 의사 공판
Ahn Junggeun's trial
1910.2. | 안중근의사기념관
① 왼쪽부터 유동하, 조도선, 우덕순, 안중근 의사
② 안중근 의사 공판이 열린 관동도독부 법원
일본은 자신들의 관할지에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를 관동도독부 뤼순으로 이송하였다.
안중근 의사 공판 장면이 담긴 스케치북
Sketchbook of courtroom during Ahn Junggeun's trial
1910.2. | 안중근의사숭모회
뤼순법정에서 안중근의사가 진술하는 모습등을 일본인 신문기자가 스케치로 남겼다.
『안중근선생공판기』
Records of Ahn Junggeun's Trial
1946.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해방 직후, 안중근 의사의 재판 관련 기록이 한글로 발간되었다.
「동양평화론]
A Treatise on Peace in the East
1910. |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복제)
안중근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동양평화 사상을 집약하여 쓴 글이다. 제국주의가 동아시아를 위협하고 있는데, 일본의 침략으로 동아시아가 서로 협력하지 못하니 각국이 독립을 유지한 채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갑작스럽게 사형이 집행되면서 전체 5개 절 가운데 <서>와 <전감>만이 집필되었다.
뤼순감옥에서 면회 중인 안중근 의사
Ahn Junggeun in an interview at the Lushun Prison
1910 | 일본 류코쿠대학교 도서관
뤼순감옥 수감 당시 안중근 의사가 빌렘 신부, 안정근, 안공근과 면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