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손이가는 해녀밥상
온평생활개선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해안도로에 있던 가게였다.
마을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과 직접 키운 농산물로 음식을 내주던 향토 음식점이었다. 해산물 토렴이 대표 음식이었다. 아쉽게도 현재는 영업하지 않는다.

해산물 토렴을 주문한다. 하얀 접시에 담은 해산물 토렴에 공깃밥과 늙은 호박찜, 김치, 오이무침, 씻은 묵은지볶음, 톳 절임, 멸치볶음, 나물무침 등 밑반찬을 내준다. 해녀들이 물질과 밭일로 수확한 싱싱한 식재료로 차려낸 해녀밥상이다. 수수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밥상이다.

해삼토렴은 바다에서 캐온 소라, 성게, 해삼 등을 살짝 데쳐 썰고 미역과 함께 참기름에 양념하여 버무려낸 제주 향토 음식이다. 온평생활개선은 해산물 토렴(출입문과 메뉴판에 해삼토렴이 아닌 해산물 토렴이라 적혀 있다.)을 판매한다.
해산물 토렴을 훑어본다. 익숙지 않은 생김새다. 나붓한 하얀 접시에 국물이 자작하게 깔려 있다. 그 위에 검은 미역이 낙낙하게 접시를 덮었다.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뿔소라는 흰색과 갈색으로, 성게 생식소는 노란색으로 군데군데 흩뿌려져 있다. 깻가루도 눈에 띈다. 해삼은 보이지 않는다. (해산물 수급 상황에 따라 해삼을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해산물 토렴은 맛국물을 내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성게 생식소를 체에 담고 끓는 국물에 몇 차례 토렴한다. 토렴한 성게 생식소는 따로 두고 국물은 식힌다. 뿔소라도 썰어 끓는 물에 데친다.
미역은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미역과 데친 뿔소라를 한데 섞어 맛국물을 자박하게 붓는다. 참기름을 두르고 버무린다. 토렴한 성게 생식소를 올리고 깻가루를 뿌린다.
젓가락으로 건더기들을 잡으려니 미끄러진다. 숟가락을 바꿔 잡는다. 국물과 함께 건더기를 크게 퍼 입에 넣고 맛본다. 고소한 참기름과 바다향이 뒤섞이며 먼저 코를 희롱한다. 뒤를 잇는 국물의 감칠맛이 은은하다. 촉촉하고 짭조름한 국물 사이로 데친 해산물들이 어우러지며 부들부들하게 씹힌다. 미역은 보드랍고 뿔소라는 존득하다. 달보드레한 성게 생식소가 맛의 균형을 맞춘다.
국물 머금은 바다 나물에 자꾸만 손이 간다. 식재료들은 참맛은 잃지 않고 어우러지며 입안을 감친다.

공깃밥을 해산물 토렴에 넣고 고루 비빈다. 크게 한술 떠 맛본다. 따뜻하고 담백한 밥알 사이로 짭짤한 맛국물이 녹녹하게 스며든다. 밥의 여린 단맛에 맛국물의 감칠맛이 포개진다. 깻가루와 참기름은 고소함을 성기 생식소는 밥과는 다른 단맛을 더한다. 질기지 않게 데쳐진 해산물은 밥알 사이로 각각의 식감을 뽐낸다.
바다 텃밭과 뭍 텃밭 식재료들이 서로 뒤섞이고 어우러지며 제3의 맛을 창조한다. 해녀밥상의 별미 비빔밥이다.
식사 후 맛보라고 주신 귤을 먹는다. 작고 덜 익어 단맛보단 신맛이 좀 더 강하다. 후숙되며 노란색으로 익으면 달콤한 맛으로 변할 작고 푸른 귤이다. 나눔의 정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토렴은 순우리말로 밥, 국수 등에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 따랐다 하며 덥히는 방식을 말한다. 해산물 토렴은 육지의 토렴 식재료와는 사뭇 다르다. 뜨거운 맛국물에 성게알을 토렴하거나 준득한 해산물을 데쳐 부드럽고 깊은 풍미를 더하기도 한다. 또한 식힌 맛국물에 따뜻한 밥을 넣어 비비면 먹기 알맞은 온도를 맞추기도 한다.
오래전에 맛본 독특한 섬 바다의 토렴이 추억의 맛으로 남실거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