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먹거리/토렴

춘자싸롱 국수는 오지다!

찐 바롱이 2025. 3. 10.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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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멸치국수는 표선사거리에서 하천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왼쪽 길가에 있다현재의 길가로 옮긴지 15년이 넘는다고 한다연세 80 넘은 주인 할머님이 운영하는 작은 국숫집이다

 

메뉴는 국수 하나뿐이다국수 보통은 4,000원, 곱빼기는 5,000원이다. 영업시간은 매일 08:00~18:00이지만, 전화로 영업 여부 확인 후 찾길 바란다.

 

주인 할머니(메뉴판에 계좌번호와 ‘강춘자’란 이름이 적혀있다.)는 표선면사무소 건너편 골목 안에서 처음 가게를 시작했다고 한다. 가게 이름도 없는 작은 블록집에서 국수를 팔았다. 국수는 동네 사람들에게 ‘해장 음식’으로 소문이 나면서 ‘춘자싸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소설가 성석제 씨 산문집에 ‘춘자싸롱 멸치국수’로 소개되며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제주를 찾은 올레꾼들이 단골들이 되었다. 이후 여러 방송과 SNS에 소개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가게가 되었다.

 

지금도 네이버 지도 앱에서 ‘춘자싸롱이라 검색어를 넣으면   아래쪽에 ‘춘자멸치국수가 검색된다.

 

2017년 제주 여행을 하며 춘자멸치국수를 찾았다. 표선사거리에서 하천리 방향으로 걸었다. 왼쪽 길가로 가게가 보였다. 간판은 따로 없었다. 출입문과 벽에 ‘춘자멸치국수’란 상호만 적혀 있었다. ‘춘자’와 ‘국수’는 파란색으로 ‘멸치’는 빨간색이었다. 

 

출입문을 오른쪽으로 밀고 들어섰다. 길쭉한 나무 식탁 2개뿐인 작은 가게였다. 안쪽으로 문이 열린 가정 방이 보였다. 주인 할머님이 쓰시는 가전들과 생활용품이 보였다. 흐트러짐 없이 정갈했다. 할머님의 성정이 엿보였다.


자리에 앉아 국수 보통을 주문한다. 시간은 손님에게서 주인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할머님은 누런 1인용 양은 냄비에 미리 삶아둔 국수사리를 대충 담는다. 일정한 온도로 데우던 멸칫국물로 몇 차례 토렴한다. 마지막으로 진한 국물을 냄비가 남실거리게 붓고 고춧가루, 쪽파, 깨를 고명으로 얹는다.

 

양은 냄비에 담긴 국수와 깍두기 한 접시가 식탁에 놓인다. 주인에게서 손님의 시간으로 넘어오기까지 체 2분도 걸리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멸치의 향이 코끝에 여리게 와닿는다. 

 

양은 냄비를 훑어본다. 노란색은 바래고 품고 있던 은빛을 드러낸다. 주인 할머님과 손님의 시간을 오가며 꾸밈없이 닳았다

 

 속에 형체 없이 사라진 은빛 물고기의 희생으로 우려진 짙은 갈색 바다가 담긴다하얀 푸른 쪽파붉은 고춧가루노란 깨가 넘실거리며 거품을 만든다.

 

고명을 흩트리지 않고 숟가락으로 국물만 푹 떠 맛본다. 비릿함은 없다. 제 몫을 다한 멸칫국물이 짭짤하고 진하다. 

 

몇 술 더 한입 가득 떠 삼킨다. 코끝을 여리게 건드렸던 향이 멸치 꼬리였다면국물은 멸치 머리와 몸뚱이의 감칠맛을 오롯이 품고 물밀듯이 입안을 감친다국물은 향과 합쳐지며 목젖을 타고  마리 완전한 멸치가 되어 내장을 헤엄친다.

 

소면(素麵)은 작을 소(小)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얀색 국수를 뜻한다. 춘자멸치국수는 일반 소면보다 굵은 제주 동남국수 면을 사용한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집는다. 고명을 휘휘 젓고 국물 흥건하도록 국수를 건져 먹는다. 매끈하고 촉촉한 굵은 국수가닥은 어금니에 준득하게 씹히며 멸치 기운을 감싸안은 여운을 입안에 내뿜는다. 

 

젓가락질이 바빠진다. 멸치 풍미를 품은 면이 술술 넘어간다. 찬으로 나온 시금한 깍두기도 면과 곁들인다. 사근사근 씹히며 담백한 국숫발에 신맛을 보탠다. 

 

몇 가닥 남은 국수를 마저 먹는다. 양은 냄비 양쪽 손잡이를 잡고 남은 국물을  들이켠다덩그러니 남은 냄비 바닥이 은빛이다바다 밑과  밖을 오가며 자신의 삶을  국물에 헌신한 멸치의 색이다

 

자연스럽게 닳아가며 색이 바랜 양은 냄비  국수  그릇엔 시간이 담겼다 시간엔 의뭉스럽지 않은 진심이 한가득 담겨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춘자싸롱 국수는 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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