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9. 10:01ㆍ구석구석 맛집기행
구례 화엄사에서 구층암까지 답사를 마친 나그네는
화엄사 입구 버스 주차장까지 2km를 다시 걸어 내려온다.
구례읍으로 나오는 버스에 몸을 싣고
하나로마트 구례축협본점 앞에서 내린다.
점심 공양으로 국수를 한 그릇 비웠지만,
많이 걸은 탓인지 다시 배고픔이 슬그머니 찾아온다.
길 건너 맞은편 골목.
100m도 채 걷지 않아 식당 앞에 다다른다.
미리 알아둔 봉성식당이 있다.
오래된 국밥집, 봉성식당

출입문 옆 모범음식점 엠블럼이 눈에 들어온다.
맛에 대한 기대치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빈 자리에 앉아 식당 안을 천천히 훑어본다.
이모님 네 분이 한쪽에 모여
수저를 닦고 계신다.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 2시 30분.
쉬는 시간이 가까워져 손님은 많지 않다.
봉성식당은 2대째 이어온 국밥 전문점이다.
돼지머리국밥, 순대국밥, 소머리곰탕, 돼지수육까지
오랜 시간 같은 메뉴로 자리를 지켜온 집이다.
돼지머리국밥 한 그릇의 온도
시선을 돌리다 모범업소 지정증 옆 알림판이 눈에 들어온다.
“어서오십시오!
저희 업소의 ‘으뜸자랑’은 돼지머리국밥입니다”
망설임은 길지 않다.
나그네는 돼지머리국밥을 주문한다.
잠시 후 이모님이 양은쟁반 한 상을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모서리가 눌리고, 바닥의 꽃무늬는 오래 닳아 희미하다.
그 낡음이 오히려 신뢰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맛을 증명해 온 집이다.

한소끔 끓여낸 돼지머리국밥 뚝배기에서 김이 폴폴 오른다.
공깃밥과 깍두기, 된장, 새우젓, 다진 양념, 부추무침, 단무지, 묵은 김치, 고추, 양파까지
여러 찬들이 양은쟁반 위를 빈틈없이 채운다.
한김 가라앉은 국물은 뽀얗게 우러나 있다.
푸른 생부추, 노란 콩나물 대가리, 연갈색 돼지머리고기 건더기가 넉넉하게 담겨 있다.

건더기를 살짝 밀어내고 국물만 한 숟갈 뜬다.
삼삼하다.
몇 번 더 맛보니, 깔끔하면서도 은은한 고소함이 입안을 채운다.
한 그릇이 완성되는 순간
이제 국물과 함께 건더기를 곁들인다.
돼지머리고기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코기 사이로 쫀득한 비계가 기분 좋게 씹힌다.
살강살강, 졸깃졸깃
다양한 부위가 어금니를 즐겁게 놀린다.
콩나물은 국물의 시원함을 머금은 채
아삭하게 씹히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신맛이 강하지 않은 달곰하고 아삭한 깍두기,
그리고 푹 익어 몰캉한 식감의 묵은 김치가 풍미를 더한다.
밥과 국밥, 그리고 찬을 오가며 수저질이 점점 빨라진다.
공깃밥이 반쯤 남는다.
그대로 국밥에 붓는다.
찬으로 나온 부추무침과 깍두기 국물까지 함께 넣어 가볍게 섞는다.
신맛, 단맛, 여린 매운맛이 국물 속으로 스며든다.

이제 맑고 담백했던 처음의 국물로는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맛을 향해 나아가는 것 역시 국밥이 가진 숙명이다.
아지작 씹히는 부추무침의 질감이
돼지머리고기와 천천히 어우러진다.
국밥 한 그릇이 만드는 다음 길
시나브로 뚝배기 속이 비워지는 만큼,
속은 더 단단히 채워진다.
다음 여행지로 향하는 나그네의 발걸음이 한결 힘차진다.
국밥 한 그릇은
단순한 점심이 아니라,
다음 길을 걷게 하는 힘이 된다.
구례의 오래된 식당과 길 위의 음식 이야기는 구례 맛집 허브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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