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3. 15:01ㆍ구석구석 맛집기행

온천에서 시작된 허기
구례 지리산온천랜드에서 사우나를 마친 나그네는 여행의 피로를 천천히 털어낸다.
몸이 풀리자 자연스럽게 배가 고파진다.
구례 읍내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노곤해진 몸 탓인지 출발과 동시에 깊은 잠이 내려앉는다.
북문에서 2분
북문 정류장에 도착하기까지 약 50여 분.
짧은 듯 긴 이동이었다.
눈을 뜨니 더 허기진다.
북문 정류장에서 내려 직진한다.
구례우체국을 지나 몇 걸음 더 걷는다.
채 2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
2층 가정집 건물 위로 ‘평화식당’이라는 간판이 크게 보인다.
이곳은 3대째 이어오는 육회비빔밥 전문점이다.
방송 출연도 많아 이미 여행객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기준이 먼저 말하는 식당
자리에 앉자마자 벽면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 집이 어떤 기준으로 음식을 대하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직한 재료, 정성 가득한 손맛.”
모든 재료는 100% 국내산.
양념장도 직접 담그고, 고추장과 조선장까지 손으로 만든다.
특히 찹쌀과 누룽지로 빚은 고추장, 국산 콩으로 만든 조선장.
이 집 비빔밥 맛은 이미 여기서 결정된다.
보리새우 국물 한 모금

글을 읽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육회비빔밥을 주문하게 된다.
잠시 후 상이 차려진다.
육회비빔밥.
김치, 콩나물, 무김칫국, 깍두기.
그리고 작은 그릇 하나.
노란 주전자에는 팔팔 끓인 보리새우 국물이 담겨 있다.
작은 그릇에 먼저 국물을 따라 먹는다.
첫맛은 짠맛이 강하게 들어온다.
단순한 짠맛이 아니다.
구수함과 시원한 감칠맛이 천천히 이어진다.
입안이 조금씩 그 맛에 익숙해진다.
뜨거운 그릇에 담긴 비빔밥

육회비빔밥은 뜨겁게 달군 그릇 위에 밥이 먼저 깔린다.
그 위로 나물, 콩나물, 호박, 김가루가 차곡차곡 올라간다.
비법 기름장, 적당히 숙성된 매실 넣어 담근 고추장,
그리고 한우 허벅지살 육회가 중심을 잡는다.
마지막으로 달걀프라이를 얹고 깨가루를 뿌린다.
비빔밥 색감이 곱디곱다.
뜨거운 그릇을 잡기 위한 나비 모양 분홍빛 고무집게가 어우러진다.
작은 장치 하나에도 오래된 식당의 생활감이 묻어난다.
비비는 순간 하나가 되는 맛

숟가락으로 천천히 비빈다.
처음에는 각자의 색이 보이지만, 몇 번의 움직임이면 곧 하나가 된다.
크게 한 숟가락 떠 입에 넣는다.
간은 지나치지 않다.
온도는 알맞다.
밥은 구수하게 살아 있고,
나물은 각각의 식감을 유지한 채 섞여 있다.
육회는 부드럽지만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입안이 단순한 섞임이 아니라, 하나의 풍미로 채워진다.
비빔밥이라는 하나의 풍경

비빔밥을 두고 백남준은 말했다.
서로 다른 문화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하고 융합해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고.
입안에서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처음에는 각각이 보인다.
하지만 몇 번 씹는 사이, 경계는 사라진다.
그리고 잠시 후, “새로운 하나”만 남는다.
짭짤한 보리새우 국물을 함께 마시면 풍미는 더 선명해진다.
서로 다른 맛이 부드럽게 어울린다.
어느 순간 그릇은 비어 있다.
밥알 하나 없이 바닥만 남는다.
남는 것은 포만감이 아니라 맛의 기억이다.
오래된 식당의 배려
평화식당 육회비빔밥은 토렴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뜨겁게 데운 그릇으로 온도를 맞춘다.
오래된 식당만의 배려다.
방송에서 들었던 주인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다시 태어나면 비빔밥 안 해요. 비빔밥이 참 하기 어려워요. 말도 못하게 손이 많이 가요.”
그 말이 식사를 마친 뒤에야 이해된다.
이 한 그릇은 ‘쉬운 음식’이 아니라, 오래 쌓인 시간이다.
시간은 결국 맛의 기억으로 남는다.
구례의 오래된 식당과 길 위의 음식 이야기는 구례 맛집 허브에서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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