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30. 16:59ㆍ구석구석 맛집기행

비가 조금씩 내리던 5월의 구례였다.
예정보다 늦게 구례구역에 도착한 나그네는 구례공영버스터미널행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까지는 한 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
택시도 쉽게 잡히지 않았다.
대합실과 승강장을 오가며 기다리던 끝에 우연히 구례5일시장으로 가는 택시에 합승할 수 있었다. 33년 넘게 운전했다는 기사님은 요즘 구례는 관광객이 많아 택시 잡기가 쉽지 않다며 웃었다.
정오 무렵 도착한 구례5일시장은 주말과 연휴가 겹쳐 평소보다 훨씬 붐볐다.
시장을 둘러보며 찾아간 식당은 문만 열려 있을 뿐 영업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발길을 돌려 시장 끝까지 걷던 중 사람들로 북적이는 천막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간판에는 ‘푸른물고기’라고 적혀 있었다.
시장 끝에서 만난 청년점포

구례5일시장은 3일과 8일에 장이 선다. 주말과 연휴가 겹친 날이라 지역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들의 모습도 적지 않았다.
시장을 걷다 보니 사람들로 북적이는 천막 아래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구례5일시장 청년점포인 푸른물고기였다.

푸른물고기는 김밥과 국수를 파는 작은 가게였다.
차림표를 살펴보니 멸치온국수, 멸치냉국수, 비빔국수, 섬진강다슬기비빔국수 네 가지가 적혀 있었다.
아쉽게도 김밥은 이미 모두 팔리고 없었다.
주문대 옆에는 여수시 멸치 상자가 놓여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섬진강다슬기비빔국수를 주문했다.
계산을 마치자 21번 번호표를 건네준다.
빈자리에 앉아 젓가락과 김치, 채 썬 단무지를 챙겨왔다.
바다의 멸치와 섬진강의 다슬기

차례가 되자 인상 좋은 젊은 여사장님이 크게 번호를 불렀다.
꽃과 벌이 그려진 양은쟁반 위에 국수와 따뜻한 국물이 함께 놓여 있었다.
푸른 그릇에는 섬진강다슬기비빔국수가, 작은 그릇에는 멸치육수가 담겨 있었다.
먼저 김이 오르는 육수를 맛보았다.
푹 우려낸 멸치의 감칠맛이 진하게 전해졌다. 맑은 국물이지만 맛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 모금 더 마신 뒤 자연스럽게 국수로 눈길이 향했다.
푸른 그릇 안에는 노랑, 빨강, 하양, 분홍빛과 옥빛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명으로 올라간 옥빛 다슬기살이었다.

섬진강을 품은 이름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국수 한 젓가락에 담긴 구례

비벼 나온 국수를 다시 한 번 고루 섞었다.
양념과 깨는 면 사이사이로 스며들었고 희던 국수는 옅은 붉은빛을 입었다.
곳곳에 박힌 다슬기살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국수를 크게 한 젓가락 집어 입안으로 넣었다.
국숫발은 부드럽고 적당한 탄력을 지니고 있었다.
양배추와 오이, 상추, 다슬기살은 각기 다른 식감으로 국수와 어우러졌다.
몇 젓가락 더 먹자 입안은 매콤달콤한 양념과 깨의 고소함, 그리고 다슬기의 은은한 쌉싸름함으로 가득 찼다.
비빔국수지만 자극적이기보다는 여러 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맛에 가까웠다.
한 그릇에서 두 가지 국수를 먹다


비빔국수를 절반쯤 먹었을 때 멸치육수를 한 그릇 더 받아왔다.
밑반찬으로 먹던 채 썬 단무지도 함께 넣었다.
붉은 양념을 머금었던 국수는 멸치육수에 씻기듯 다시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국물을 휘휘 저은 뒤 면을 집어 먹었다.
촉촉한 온기가 더해진 국숫발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멸치의 감칠맛이 면 사이로 스며들며 또 다른 국수가 되었다.
아삭한 단무지는 신맛과 단맛으로 풍미를 더했다.
비빔국수 하나를 주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비빔국수와 물국수 두 그릇을 맛본 기분이었다.
바다의 멸치와 섬진강의 다슬기가 한 그릇 안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멸치국수 한 그릇의 위로

먹다 보니 몇 가닥의 국수와 다슬기살, 국물만 조금 남았다.
그릇을 들어 마지막까지 들이켰다.
후련했다.
벽에 붙은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출출한 배도 채워 주고 지친 마음도 달래 주는 멸치국수 한 그릇~ 구례5일시장에 오시면 꼭 드시고 가세요~”
국수를 비운 뒤 나그네는 배를 토닥이며 시장길을 되짚었다.
오후 2시 20분 노고단행 버스를 타기 위해 천천히 구례공영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구례의 오래된 식당과 길 위의 음식 이야기는 구례 맛집 허브에서 계속 이어진다.
함께 읽기
구석구석 백반 1_나그네는 금요일 구례를 찾는다, 구례 금요순대 한우식당
구석구석 백반 2_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밥상, 구례 가야식당
구석구석 백반 3_국수에서 국밥으로 이어진 길, 구례 봉성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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