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절밥 1_스님들도 웃던 한 그릇, 구례 화엄사 절밥]

2026. 5. 27. 15:01절집밥상(사찰음식·산채정식)

반응형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구례 화엄사 전경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화엄사는 계곡 물소리와 함께 천천히 걸어 들어가게 되는 절이다.
나그네는 구례공영버스터미널에서 화엄사행 버스를 탄다.

버스는 20여 분 만에 화엄사 입구 주차장에 닿는다.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1.8km 남짓 걷는다.
불이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으로 큰 규모를 자랑했던 절이었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탔지만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스님들의 발걸음을 따라

화엄사 대웅전 계단을 내려오는 스님들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다 보니 점심 시간이 가까워진다.
대웅전 계단을 내려오는 스님들이 보인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뒤를 따른다. 스님들은 공양간으로 향하고 있었다.


채수와 국수 타래가 놓인 공양간

화엄사 공양간에 놓인 채수와 반찬 고명


공양간에는 삶아 놓은 국수 타래와 채수, 여러 고명과 밑반찬들이 놓여 있다.

삶아 놓은 화엄사 절밥 국수 타래


그릇에 국수 타래를 담고 채수를 붓는다.
고명은 가장자리를 따라 조금씩 골고루 얹는다.

채수와 고명을 올린 화엄사 절밥 국수


빈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
음식을 먹기까지 수고한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담백하지만 깊은 첫 공양, 승소(僧笑)

 
국수 그릇 속 색감이 곱다.
흐트러지지 않게 국물부터 몇 모금 마신다.

날카로운 감칠맛이 아니다.
무디지만 그윽하게 여운을 남긴다.
허기는 가라앉고 속까지 산뜻해진다.

알맞게 삶아진 가는 면에 배추김치, 가지튀김, 쫑쫑 썬 김치, 오이, 표고버섯무침, 목이버섯, 톳, 채 썬 유부와 양념 유부가 어우러진다.

시원한 채수와 다양한 고명의 식감이 한데 섞이며 깊은 풍미를 만든다.

화엄사에서의 첫 식사 공양은 밥이 아닌 국수였다. 스님들도 웃게 만든다고 하여 승소(僧笑)라 부르는, 나그네가 처음 만난 화엄사의 맛이었다.

그릇을 다 비우고 깨끗이 씻는다.

2018년 3월, 나그네가 처음 먹은 화엄사 절밥이었다.


홍매가 천연기념물이 되던 날의 절밥

 
나그네는 2024년 3월 9일, 두 번째 화엄사 절밥을 먹었다.

길상암 백매에 더해 각황전 옆 홍매가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확대 지정된 날이었다.
두 그루 매화의 공식 이름은 ‘구례 화엄사 화엄매’.

행사 덕분인지 화엄사 입구에서는 드물게 친환경 전기 셔틀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고 있었다.

불이문 앞에 내려 천연기념물 올벚나무를 먼저 살핀다.
각황전 앞으로 가니 천연기념물 확대 지정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의자들이 보인다.

홍매는 오래전부터 꽃의 아름다움과 수형으로 사랑받던 매화였다.
천연기념물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국보급 매화’라 부르던 나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가지마다 꽃망울이 가득하다.
드문드문 핀 진분홍 꽃도 눈에 들어온다.

매화를 한참 바라보다 다시 공양간으로 향한다.


검소하지만 부족함 없는 비빔 절밥

나물과 김을 담은 화엄사 절밥 비빔밥 대접


11시 30분이 조금 지나 공양간으로 들어선다.

대접 중앙에는 고추장과 참기름이 담겨 있고, 길게 썬 김과 무생채, 상추, 가지나물, 콩나물, 미나리무침이 둘러 담겨 있다.

화엄사 절밥 비빔밥과 미역국


밥을 담고 따뜻한 미역국을 받아 빈자리에 앉는다. 공양간 부엌 위에 걸린 오관게(五觀偈)를 읽으며 고마운 마음으로 밥을 비빈다.

담백하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나 부족함이 없는 절밥이다.


구층암, 차향이 사방으로 흐르던 시간

구례 화엄사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


점심 공양 뒤에는 구층암으로 향한다. 대나무 숲길의 오붓한 오르막을 5분 정도 걷는다.

구층암은 무엇 하나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없다. 특히 다듬지 않은 모과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한 요사채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인상적이다.

길상암 백매의 향을 마음에 담고 찻간으로 향하니, 차를 소쿠리에 담아 내어주신다.

소쿠리에 담아 내온 구층암의 차


돌의자에 앉아 산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를 마신다. 계곡물은 보이지 않지만 물소리는 여전히 귀에 흐른다.

요사채 문틀 위에는 ‘茶香四流(다향사류)’라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차향이 오감을 따라 사방으로 흐른다는 그 뜻처럼, 산사의 맑은 향과 물소리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구례의 오래된 식당과 길 위의 음식 이야기는 구례 맛집 허브에서 계속 이어진다.


함께 읽기

 
구석구석 백반 2_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밥상, 구례 가야식당

구석구석 백반 3_국수에서 국밥으로 이어진 길, 구례 봉성식당

구석구석 백반 5_대를 잇는 육회비빔밥, 구례 평화식당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