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대폿집 3_빨간 주물럭과 든든한 밤, 구례 북문토종흑돼지]

2026. 6. 17. 15:01구석구석 맛집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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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북문토종흑돼지 외관

나그네는 구례 연곡사 답사를 마치고 구례읍내로 나오는 버스를 탄다.

구례 하나로마트 정류장에서 내려 큰길을 따라 걷는다. 구례경찰서 앞 회전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5분쯤 걷자 대로변 사거리 오른쪽에 낡은 단층 건물이 나타난다. 간판은 빛이 바랬지만 ‘북문토종흑돼지’라는 글자와 돼지 그림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구례 1년살이로 내려온 친구가 잡은 저녁 약속 장소다.

지금은 구례병원 인근으로 확장 이전해, 더 넓고 깔끔한 공간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고 한다.

나그네도 구례를 오가며 두 차례 들렀던 곳이라, 주인 할머니의 손맛과 사람 냄새를 익히 알고 있는 집이다.

6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식당 앞에서 친구를 만나 안으로 들어선다.


주인 할머니 손끝에서 시작되는 저녁상


무뚝뚝한 듯 정 많은 주인 할머니가 손님을 맞는다.

빈자리에 앉아 미리 얘기 나눈 양념주물럭과 소주를 주문한다.

잠시 뒤 하얀 비닐이 깔린 식탁 위에 휴대용 가스버너가 놓이고, 불이 켜진다.

그 위로 검고 넓은 무쇠 그릇이 올라선다.

그릇 속에는 빨간 양념이 도드라진 돼지주물럭이 자리하고, 그 위로 생기 넘치는 대파와 콩나물이 얹혀 있다.

구례 북문토종흑돼지 돼지주물럭


남도 묵은김치와 된장, 마늘, 고추, 애호박무침, 콩나물무침, 고추무침, 상추까지. 수수하지만 정겨운 밑반찬이 차려진다.

주인 할머님이 제철 식재료로 당일 아침 직접 만든 반찬들로, 날마다 조금씩 구성이 달라진다고 한다.

밑반찬은 셀프바에서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다.

구례 북문토종흑돼지 주물럭과 밑반찬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빨간 맛

 
대파와 콩나물을 고루 섞어 졸인다. 익어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와 잔을 부딪치고, 밑반찬에 한잔 들이킨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검은 그릇 속 빨간 국물은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하얀 김을 숨가쁘게 뿜어낸다.

남원 운봉에서 가져온 흑돼지와 양파, 콩나물, 대파가 갖은 양념과 어우러지며 서로의 맛을 배어들게 한다.

구례 북문토종흑돼지 주물럭 익는 모습


다시 소주잔이 채워지고 비워진다.

알맞게 익은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 올린다. 눈으로 보이던 도톰함이 젓가락 끝에 묵직하게 전해진다. 입에 넣고 천천히 꼭꼭 씹는다.

몇 번 더 소주잔과 젓가락이 번갈아 오간다.

그사이 국물은 잘박잘박하게 줄어들고, 양념과 재료들은 끌어낼 수 있는 맛의 끝까지 서로를 섞어낸다.

흑돼지 살코기와 비계, 콩나물은 각기 다른 질감으로 어금니를 움직이게 한다.

자극적이지 않은 양념의 빨간맛 위로 채소의 단맛, 돼지고기의 감칠맛과 고소함이 겹쳐지며 입안이 점점 풍성해진다.

구례 북문토종흑돼지 양념주물럭

술자리의 마지막을 알리는 볶음밥


밥 한 공기를 주문해 볶는다.

압력밥솥에서 갓 지은 뽀얀 밥이 붉은 양념을 머금으며 색을 입고, 그 속으로 깊은 맛을 흡수한다.

술안주이자 한 끼를 대신하는 볶음밥이다.

볶음밥은 술자리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알려준다.

구례 북문토종흑돼지 볶음밥


소주 병 수가 늘어나는 만큼 친구와의 이야기는 깊어지고, 검은 그릇 속 음식은 천천히 줄어든다.

마지막 잔을 부딪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음식값을 치르며 주인 할머니께 "잘 먹었습니다" 말을 건넨다.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이었다.

방학 때 시골 할머니 집을 찾은 손주를 대하는 정과 집밥 같은 온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든든하다.

한 블록 위 친구네 집으로 향하는 사거리 골목의 작은 슈퍼에서 담배 세 갑과 맥주 두 캔을 산다.

담배는 친구 몫이고 맥주는 나그네 몫이다.

2층 옥상에서 맥주를 마신다.


구례의 밤은 천천히 깊어간다

구례 읍내 야경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 아래 구례 읍내와 산자락이 겹쳐 보인다. 붉게 빛나는 교회 십자가가 그 사이로 또렷하다.

별은 보이지 않지만 공기는 산뜻하다.

구례의 밤은 그렇게, 천천히 깊어간다.


구례의 오래된 길과 사람의 이야기는 구례 맛집 허브에서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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