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5. 11:18ㆍ구석구석 맛집기행

물빛나무는 이제 영업을 하지 않는 듯하다. 지도 앱에서는 폐업했거나 정보가 없는 장소로 표시된다.
그러나 친구와 함께 나눈 지리산의 물과 녹차에 대한 추억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나그네는 구례 쌍산재 당몰샘에서 물을 떠 작은 물병에 담고 광평삼거리로 걸어간다.
광평정류장에서 구례읍내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10여 분 만에 하나로마트 앞에 내린다.
다시 500여 미터를 걸어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 앞에 도착한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를 향하고 있다.
작은 나무 간판이 걸린 공간

나무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다.
출입문 오른쪽에는 길쭉한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커튼이 드리워진 커다란 창이 시원하게 시야를 연다.
따로 눈에 띄는 간판은 없다.
창가 한쪽에 놓인 작은 나무판에 '물빛나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조명 불빛이 그 글자를 비추고 있다.
미리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있던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는다.
수면 위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

차림표를 살핀다.
가게 이름인 물빛나무 아래 '수면 위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라는 짧은 설명을 읽으며 내부를 둘러본다.
작은 공간에는 갈색 나무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고 벽에는 그림 액자와 소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나무 등에서 흘러나오는 노란빛이 공간을 은은하게 감싼다.
열린 주방 수납대에는 찻잔과 접시, 주전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대부분 흰색이다.
다시 차림표로 시선을 돌린다.
필터커피, 지리산의 차, 무농약 오미자차, 청귤차가 설명과 함께 적혀 있다.
오월의 숲 세작 녹차

지리산의 차 가운데 '오월의 숲 세작 녹차'를 주문한다.
물빛나무는 당시 구례 1년 살이를 하던 친구가 머물던 집 1층에 있던 작은 카페였다.
친구는 사장님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나그네는 가방에서 당몰샘 물을 꺼내 친구에게 건넨다.
한국의 명수 100선 가운데 하나라며 맛보라고 권한다.
잠시 뒤 사장님은 녹차가 담긴 주전자와 찻잔, 모래시계가 담긴 소쿠리를 내어준다.
친구는 명수를 마시고 나그네는 녹차를 따른다.
세작 녹차는 섬진강과 지리산을 품은 하동 화개 지역의 오래된 야생 차밭에서 자란 찻잎을 전통 방식으로 덖어 만든 차다.
조금씩 나누어 마시며 향과 풍미를 천천히 즐긴다.
신록이 짙어지는 지리산 오월의 기운을 담은 듯 풋풋하고 청량하다.
은은한 단맛과 감칠맛이 함께 어우러진다.
지리산 물과 녹차가 머무는 자리

친구에게 당몰샘 물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친구는 무미라고 답한다.
무색, 무취, 무미.
하지만 오랜 시간 지리산 약초 뿌리를 지나 흘러온 샘물이라고 말하자 친구는 몇 번 더 컵에 따라 마신다.
나그네도 남은 녹차를 천천히 마신다.
맑은 연둣빛.
은은하고 부드럽다.
혀끝을 스치는 떫은맛은 약하고 산안개처럼 옅은 단맛이 길게 남는다.
지리산 좋은 물과 녹차는 깊은 산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누려는 마음이 있는 곳에 오래 머문다.
마지막으로 남은 물빛나무의 기억

다음 날, 친구와 다시 물빛나무를 찾았다.
여사장님은 나그네의 얼굴을 기억하고 계셨다.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강릉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수제맥주를 주문했다.
작은 접시에 산딸기도 함께 내어주셨다.
차가운 한 모금과 산딸기의 붉은 향이 겹쳐지며,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계절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이 물빛나무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구례의 오래된 길과 사람의 이야기는 구례 맛집 허브에서 계속 이어진다.
함께 읽기
구석구석 백반 1_나그네는 금요일 구례를 찾는다, 구례 금요순대 한우식당
구석구석 백반 2_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밥상, 구례 가야식당
구석구석 백반 3_국수에서 국밥으로 이어진 길, 구례 봉성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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