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으로 기억된 간짜장

2023. 12. 13. 08:29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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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강춘은 ​제천관광호텔 건너편 대로변에 있다. 연세 계신 노부부가 운영하시는 중국집이다. 30여 년 되셨다고 한다. 

 

오후 3시를 넘어 어중간한 시간에 들렸다. 마침 막 식사를 하려고 하신다. 늦은 점심을 드시는 거 같다. 간짜장을 주문하니 남 사장님이 식사를 멈추시고 음식을 만드시러 주방으로 가신다. 여사장님은 홀로 늦은 점심을 먼저 하신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 주방에서 웍에 채소와 짜장을 볶는 소리가 들린다. 듣기 좋은 소리다. 간짜장은 적잖이 시간이 걸려 나왔다. 맛과 수고스러움이 담겼다. 


영강춘’이 쓰인 그릇엔 첨가제 사용 없어 보이는 뽀얀 면을 담고 푸른 완두콩, 노란 옥수수알을 올렸다. 주문 후 채소와 춘장을 넣어 볶아낸 간짜장 양념에선 모락모락 김이 올라온다. 갓 만든 음식의 따뜻함은 코로 향을 전한다. 향은 뇌로 전해지고 뇌는 침샘을 자극한다. 손은 뇌의 명령을 재빨리 눈치채고 간짜장 양념을 면에 들이붓는다. 손으로 만든 즉석 음식은 손님의 오감을 자극한다.


면은 수타면은 아니고 기계면이다. 아기 엉덩이 같은 새뽀얀 면은 매끈하다. 한 가닥 먹어 보니 질척거리지 않고 입술에 살짝 달라붙는다.

간짜장 양념은 주문 후 웍에 당근, 부추, 호박, 양배추, 양파 등 신선한 채소와 돼지고기, 춘장을 넣어 볶아낸다. 적당량의 기름을 사용한 듯 기름짐도 적고 간도 짜거나 달지 않다. 알맞음은 만든이의 연륜의 힘이다. 고소한 춘장과 아삭하게 씹히는 채소들의 식감이 잘 어우러진다.

적당량의 간짜장 양념을 면에 붓고 잠시 눈으로 즐긴다. 하얀 면, 검은 양념, 노란 옥수수, 푸른 완두콩 등 색감이 곱다. 하얀 그릇에 새겨진 '영강춘' 푸른 글씨는 음식을 보듬으며 멋과 맛을 담는다.

고춧가루를 뿌리지 않는다. 자극적인 빨간색 매운맛은 꾸밈없는 아기 엉덩이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면에 양념이 잘 섞이게 비빈다. 아기 엉덩이를 까맣게 덮어버린다. 순수함은 깨끗함을 잃어버리고 흐려졌다. 입으로 넣을 때까진 그랬다.

혼탁해진 면을 한 젓가락 크게 떠 씹는다. 볶은 춘장의 고소함이 코와 입술, 혀를 먼저 자극하고 뒤이어 어금니에 면이 쩍쩍 붙는다. 면은 어금니에 맞서지 않고 끊어지며 식도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알맞게 기름을 머금은 채소들은 제 식감을 싱싱함을 포함한 '아삭아삭'이란 부사로 표현한다. 중간중간 장식용으로 생각했던 완두콩과 옥수수도 제 식감을 뽐낸다.

혼탁은 순수함으로 스며들어 제3의 풍미를 만든다. 젓가락을 잡은 손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어느새 하얀 접시 바닥엔 제3의 맛이 만든 검은 빛 흔적만이 남고 '영강춘' 파란 글씨는 더 또렷하게 먹는 이 가슴에 스며든다. 순수와 혼탁은 그렇게 파란 마음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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