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2020. 7. 5. 18:02뚜벅뚜벅 대한민국 세계유산/경주역사지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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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2000년)

[요약]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조각, 탑, 사지, 궁궐지, 왕릉, 산성을 비롯해 신라 시대의 여러 뛰어난 불교 유적과 생활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의 유적이 많으며 이들 유적을 통해 신라 고유의 탁월한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의 1,0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인의 생활 문화와 예술 감각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총 5개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불교 유적을 포함하고 있는 남산지구, 옛 왕궁 터였던 월성지구, 많은 고분이 모여 있는 대릉원지구, 불교 사찰 유적지인 황룡사지구, 방어용 산성이 위치한 산성지구가 이에 해당한다.


[영문명]

Gyeongju Historic Areas


[등재기준]

기준 (ⅱ) :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불교건축 및 생활 문화와 관련된 뛰어난 기념물과 유적지가 다수 분포해 있다.

기준 (ⅲ) : 신라 왕실의 역사는 1,000년에 이르며, 남산을 비롯해 수도 경주와 그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은 신라 문화의 탁월함을 보여 준다.


[진정성]

경주역사유적지구의 5개 지구는 각기 다른 종류의 유산이 원래의 위치에 남아있어 진정성이 높으며, 건축, 조각, 탑, 왕릉, 산성은 모두 그 원형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사지 또는 궁궐지의 경우에는 그 터만이 남아 있으며 건물의 원래 배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 기존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보존 및 관리체계]


경주역사유적지구는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 명활산 지구 등 5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산 전역과 지역 안의 많은 문화재들이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국가 지정 문화재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또한 문화재 및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500m 이내 지역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해당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건설 행위에 대한 사전 심의가 의무화되어 있다. 또한 매장 문화재가 풍부한 지역 특성상, 경주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토목, 건축 행위에는 문화재 영향 검토가 의무화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경주역사유적지구 보존을 위한 예산을 배분하고 보수 및 유지 관리, 주변 지역 현상 변경과 관련된 심의와 허가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다. 경주시는 구체적인 보존 관리 및 정비 사업을 담당하며, 남산의 경우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관리한다. 상시 모니터링과 함께 3, 4년 주기로 전문가의 정밀 모니터링이 실시되고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의 보존 관리 상태는 매우 좋다. 유산의 문화재 수리는 해당 분야별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시험에 합격한 공인된 문화재수리기술자가 담당한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지정된 유산 주변의 토지를 꾸준히 매입해 관련 유산을 보다 잘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각 유적 지구 사이의 연결성을 높여 왔다. 등재 당시 동해남부선 철로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권장되었으며, 철로는 2014년에 철거될 예정이다.


[본문]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7세기~10세기에 절정을 이룬 한국 불교예술의 뛰어난 전형들이 조각, 부조, 탑파(塔婆, stupa), 사찰 및 왕궁 유적 등의 형태로 집중되어 있다. 한반도는 약 1,000년 동안 신라 왕조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경주와 그 주변에 있는 기념물과 유산들은 신라의 문화적 업적을 웅변해 주고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한국의 불교 건축 및 일반 건축 발달에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 다수의 기념물과 유산들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유적과 기념물이 있는 경주 일대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살던 곳이었다. 신라의 씨족은 기원전 57년, 한반도 남동쪽을 지배했다. 이후에 한반도 내에서는 오랫동안 경쟁하는 왕국들 사이에 투쟁이 있었으며, 신라는 7세기에 중국의 당(唐)과 손잡고 경쟁국을 물리치고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했다. 통일신라는 10세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왕조를 유지하였다. 신라의 지배층은 도시에 많은 공공건물, 궁궐, 사찰과 성채를 건설했다. 지배층의 무덤은 이 고대 도시의 인근에 남아 있다.

7세기에 중국에서 대승불교가 한반도에 전파되었고 신라는 이를 받아들였다. 기존의 여러 토착 신앙을 숭앙하였던 장소인 남산은 불교의 성산이 되어 신도들을 끌어 모았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과 장인들이 사찰, 사당, 수도처를 지었다. 신라의 멸망과 함께 한반도는 또 한 차례 내부 투쟁의 시기를 겪었다. 한반도는 조선에 의해 다시 통일되어 1910년까지 유지되었다. 하지만 16세기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18세기에는 만주족의 침략을 받아 황폐화되었다. 조선은 1910년, 일본에 합병되었다. 이 긴 기간 동안 많은 주요 건축물이 쇠락하고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그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세 군의 주요 지구로 구분된다. 더욱이 세계유산에는 황룡사(皇龍寺)와 산성이 포함된다. 남산지구는 경주시의 북쪽에 있고, 지정된 지역에 수많은 선사시대 유적과 사적들이 있다. 월성지구의 주요 기념물은 황성옛터, 경주김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전설의 계림(鷄林), 임해전지(臨海殿址)에 있는 안압지(雁鴨池)와 첨성대(瞻星臺)이다. 고분 공원 지구는 세 그룹의 왕실 무덤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고분들은 돔 형태지만 몇몇은 반달 모양, 조롱박 모양이다. 고분에는 자갈로 덮인 이중 목관이 안치되어 있다. 풍부한 금제 부장품, 유리, 질 좋은 도자기들이 발굴되었으며, 초기 고분 중 한 군데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에 날개 달린 말을 그린 말다래 천마도(天馬圖)가 발굴되었다.

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신라의 미소, 보물 제2010호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慶州 人面文 圓瓦當)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손으로 빚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의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 작품으로서, 당시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 

출처:문화재청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 남산지구]

경주 남산은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신라 건국설화에 나타나는 나정(蘿井), 신라왕조의 종말을 맞게했던 포석정(鮑石亭)과 미륵곡 석불좌상, 배리 석불입상, 칠불암 마애석불 등 수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 

출처:문화재청

1.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우물, 사적 제245호 경주 나정 (慶州 蘿井)


2. 신라인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 사적 제1호 경주 포석정지 (慶州 鮑石亭址)


3. 남산지구 불적중 가장 규모가 크고 뛰어난 솜씨, 국보 제312호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慶州 南山 七佛庵 磨崖佛像群)


4. 구름을 나는 듯한 보살상, 보물 제199호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慶州 南山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5.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는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불상, 보물 제136호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6. 신비한 미소를 간직한 삼존불상, 보물 제63호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7. 남산에서 가장 나이 많은 부처님, 보물 제198호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慶州 南山 佛谷 磨崖如來坐像)


8. 불교세계의 모든 형상을 새겨 놓은 부처바위, 보물 제201호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慶州 南山 塔谷 磨崖佛像群)


9. 왕을 구한 글이 나온 연못, 사적 제138호 경주 서출지 (慶州 書出池)


10. 형식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쌍탑, 보물 제124호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慶州 南山洞 東·西 三層石塔)


11. 향기로운 소나무 숲 신라 왕들의 안식처, 사적 제219호 경주 배동 삼릉 (慶州 拜洞 三陵)


[경주역사유적지구, 월성지구]

월성지구에는 신라왕궁이 자리하고 있던 월성,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鷄林), 신라통일기에 조영한 임해전지, 그리고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시설인 첨성대(瞻星臺)등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1.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시림(始林), 사적 제19호 경주 계림 (慶州 鷄林)


2.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국보 제31호 경주 첨성대 (慶州 瞻星臺)


3. 궁궐다운 면모를 갖춘 신라 최초의 궁궐터,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 (慶州 月城)


4. 신라 별궁터와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 사적 제18호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과 月池)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지구]

대릉원지구에는 신라 왕, 왕비, 귀족 등 높은 신분계층의 무덤들이 있고 본래 사적 38호 경주노동리고분군(慶州路東里古墳群), 사적 39호  경주노서리고분군(慶州路西里古墳群), 사적 40호 경주황남리고분군(慶州皇南里古墳群), 사적 41호 경주황오리고분군(慶州皇吾里古墳群), 사적 42호 경주인왕리고분군(慶州仁旺里古墳群)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경주 평야 한복판에 서로 인접해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을 통합하고 사적 제512호로 재지정하였다.

무덤의 발굴조사에서 신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1. 신라 왕과 왕비, 귀족들의 고분군(古墳群), 사적 제512호 경주 대릉원 일원 (慶州 大陵園 一圓)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土偶裝飾 長頸壺)


노동동 11호 북쪽 무덤 출토 목항아리,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土偶裝飾 長頸壺)


2. 대릉원이라는 이름의 유래.신라 최초의 김씨 왕, 사적 제175호 경주 미추왕릉 (慶州 味鄒王陵)


3. 신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이 출토된 황남대총, 천마총

황남대총


국보 제191호 황남대총 북분 금관 (皇南大塚 北墳 金冠)과 국보 제192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皇南大塚 北墳 金製 銙帶)


국보 제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천마총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慶州 天馬塚 障泥 天馬圖), 천마총 영상 사진


국보 제188호 천마총 금관 (天馬塚 金冠)과 국보 제190호 천마총 금제 허리띠 (天馬塚 金製 銙帶)


국보 제189호 천마총 관모 (天馬塚 冠帽)


[경주역사유적지구, 황룡사지구]

황룡사지구에는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으며, 황룡사는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40,000여 점의 출토유물은 신라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1. 4대왕 93년에 걸쳐 완공된 동양 최대의 사찰, 사적 제6호 경주 황룡사지 (慶州 皇龍寺址)


신라 최고의 국보로 숭앙되었던 황룡사지 중금당 금동삼존장륙상대좌


황룡사 목탑지


황룡사 9층 목탑터 심초석(거대한 구층목탑의 무게중심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아비지가 이 심초석 위에 중심기둥을 세우던 날 밤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2. 신라 최초의 품(品)자형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 칠처가람(七處伽藍, 사적 제548호 경주 분황사지 (慶州 芬皇寺址)


현존 가장 오래된 신라 석탑의 걸작품,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분황사 석정과 분황사 모전석탑


호국룡의 전설(호국룡변어정)이 전해지는 현존 통일신라시대 가장 크고 우수한 돌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호 분황사석정 (芬皇寺石井)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의 받침돌,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 분황사화쟁국사비부 (芬皇寺和諍國師碑趺)


[경주역사유적지구, 산성지구]

산성지구에는 A.D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이 있는데 신라의 축성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영향을 끼쳤다.

출처:문화재청

1. 신라 수도(금성)를 지키는 중요한 전초기지, 사적 제47호 경주 명활성 (慶州 明活城)


성을 쌓아 전쟁에 대비하다(진흥왕 시기 개축), 명활산성작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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