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창경궁 통명전

2023. 7. 17. 05:23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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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내전의 으뜸전각"

[보물 창경궁 통명전 (昌慶宮 通明殿) Tongmyeongjeon Hall of Changgyeonggung Palace]

통명전은 창경궁 내전의 으뜸전각으로 왕비의 침전으로 사용되었지만,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주로 왕대비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484년(성종 15)에 처음 지었다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것을 광해군 대에 다시 지었고, 1790년(정조 14)에 다시 불에 탔으나 1833년(순조 33) 통명전 오른쪽에 있는 양화당(養和堂)과 함께 다시 지었다.

규모는 앞면 7칸, 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고, 지붕 위는 용마루가 없는데 현재 창경궁에 남아 있는 건물 중 유일하다.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뻗쳐 나온 재료 구성이 조선 중기 양식의 특징과 정결한 건물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월대 위에 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잔치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넓적한 박석(薄石)을 깔았다. 건물 왼쪽에는 동그란 샘과 돌난간을 두른 네모난 연못을 두었고, 건물 뒤쪽에는 작은 정원을 두었다.

통명전은 창경궁에 있던 내전 건물 중에서 가장 잘 남아 있는 건물로 19세기 건축 양식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통명전과 양화당 通明殿, 養和堂 Tongmyeongjeon and Yanghwadang]

통명전(보물)은 1834년에 다시 세운 일상 생활공간인 내전의 중심 건물답게 넓은 월대를 쌓고 지붕 가운데 용마루가 없다. 가운데 세칸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 옆에 온돌방을 두어 왕과 왕비의 침실로 썼다. 서쪽 마당에는 동그란 샘과 네모난 연못이 있고, 그 사이의 물길을 돌로 공들여 만든 정원이 있다. 1834년에 다시 지은 양화당은 대비의 침전이지만,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던 인조 임금이 돌아와 거처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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