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신장절공묘역&방동리고구려고분

2024. 2. 6. 05:44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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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방동리고구려고분 (芳洞里高句麗古墳)]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의 무덤 남쪽에 있는 2기의 무덤이다.

 

내부는 크고 작은 깬돌을 포개서 만든 돌방무덤(석실묘)이고, 외부의 봉토는 거의 유실되었다. 천장은 34단의 벽을 쌓아 올리면서 모서리를 죽이고 하나의  판돌을 올려 마무리한 모줄임식천장(말각조정천장)이다.

 

방동리 무덤은 고구려 무덤의 후기 양식이 지방화  형태로, 춘천 지방이 신라가 북상하기 이전인 6세기 중엽에는 고구려 영역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문화재청


"장절공 신숭겸 동상"


[사안도]

 

고려 태조가 평주 삼탄으로 사냥을 나갔을때 낮참에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태조가 누가 저 기러기를 쏘겠는가 라고 하자 장절공이 선뜻 나서 태조가 명한대로 셋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혀 떨어뜨라는 장면, 이리하여 장절공은 평산신씨로 사직되었다.


[충렬도]


서기 927년 9월 신라를 침략하고 돌아가는 후백제 왕 견훤을 대구 동수에서 맞아 싸울 때 고려군이 전세가 불리하매 장절공이 고려 태조를 피신케한 뒤 어가에 올라 적진에 나아가 분전하는 장면, 장절공은 마침내 이 싸움에서 태조를 대신하여 순절하셨다.


 

"충열문과 장절사"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춘천 장절공 신숭겸 신도비 (春川 壯節公 申崇謙 神道碑)]

 

1805(純祖 5) 건립한 신숭겸(申崇謙) 신도비는 비각을 건립하여 보관하고 있다. 비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형태인 팔각지붕형 갓석과 비신, 비대석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金祖淳이 썼으며, 글씨는 申緯가 썼고, 篆字는 徐邁修가 썼다. 신위는 조선시대 4 명필가였으며, 서매수는 당시 좌의정이었다. 

 

비의 규모는 비신의 높이 228cm, 106cm, 두께 39cm이다.

 

춘천시 서면 방동리 821-1번지내에 위치하고 있는 신숭겸 신도비는「신장절공 묘역」(강원도 기념물 21, 1967.6.17 지정) 인접하여 있으며 주변의 금산리에는「춘천 한백록 묘역 정문」(강원도 문화재자료 131, 2000.11.18 지정) 위치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장절공 신숭겸 묘역 소나무 길"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신장절공묘역 (申壯節公墓域)]

 

고려의 개국공신 장절공(壯節公) 신숭겸 장군의 묘소이다. 평산 신씨의 시조로서, 918 배현경·홍유·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이바지하였다. 

 

태조 10(927) 대구 공산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와 싸우다가 태조가 적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해지자 태조의 옷을 입고 변장하여 맞서다가 전사하였다. 적군이 신숭겸을 태조로 오인하고 그의 목을 베어가자 태조는 머리없는 시신에 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례식을 치루었다고 한다. 

 

도굴을 막기 위하여 묘는 하나인데 봉분을 3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묘에는 3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 묘역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 묘비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장절공 신숭겸 묘역"


"장절공 신숭겸 묘역에서 바라본 전경"


"홍살문과 충열문"


"비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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