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옛 단양! 단성!

2024. 4. 28. 06:37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반응형

"오랜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옛 단양! 단성!"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단양대교, 옛 단양 단성면, 사적 단양 적성 전경


"단성면 하방리 버스 정류장 옛 단양"


신라적성비쪽에서 내려 오신 노부부가 문화유산 보고 계신다.

단성면 선정비, 단양 복도별업 암각자, 단양 우화교기사비, 석탑재, 단양 탁오대 암각자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단양 탁오대 암각자 (丹陽 濯吾臺 岩刻字)]

 

자연 암석에 ‘탁오대’라는 글씨를 전서체로 새긴 것이다.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은 나랏일에 시달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자 매일 이곳에 와서 손발을 씻었다고 한다. 이황은 이곳이 사람의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탁오대라고 이름 짓고 손수 이곳에 글씨를 새겼다. 

 

출처:문화재청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단양 복도별업 암각자 (丹陽 復道別業 岩刻字)]

 

자연 암석에 ‘복도별업’이라는 글씨를 새긴 것으로,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이황의 친필이라 전한다. 

 

이곳 복도소(復道沼)는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저수지이다. 물이 맑고 깨끗하며 경치가 좋을 뿐만 아니라 목욕을 하면 몸과 마음까지 깨끗해질 만큼 훌륭하여 이황이 이곳에서 별업(別業)을 이루었다고 한다.

 

 

출처:문화재청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단양 우화교기사비 (丹陽 羽化橋記事碑)]

 

조선 영조 29년(1753) 단양군수였던 이기중이 단양천에 돌다리를 만든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다리는 ‘우화교’라 이름지었는데, 큰 홍수로 인해 파괴되고 현재는 이 비만 남아 있다. 비는 네모진 받침 위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비몸을 세웠다. 비문에는 다리를 설치할 때 참여한 사람들과 목공, 토공, 석공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다리를 놓은  이듬해인 영조 30(1754)  비를 세웠다.

 

출처:문화재청


"청풍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단양향교 (丹陽鄕校)]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태조 15년(1415)에 세운 단양향교는 명종(재위 1545∼1567) 초기 이황이 군수로 있을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영조(재위 1724∼1776) 때 두 차례 고쳤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 등과 부속건물이 있다.

 

내삼문을 경계로 앞쪽에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을 두고, 뒤쪽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제사공간을 이루고 있어 향교의 일반적 배치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출처:문화재청

728x90
반응형

'바롱이의 쪽지 > 충청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양 만천하스카이워크  (0) 2024.05.01
단양강잔도  (0) 2024.04.30
청주의 화려한 봄날…  (0) 2024.04.08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1) 2024.04.06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  (1) 202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