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3. 04:53ㆍ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영동 천태산 영국사]
양산팔경이 이곳 천태산 영국사를 제 1경으로 시작되고 많은 문화유적들이 그 신비함을 더해주는 곳이다.
천태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영국사는 풍광 좋은 절로서 양산팔경의 정수 이다. 그래서 영동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영동 제1관광지로 천태산과 영국사를 꼽는다. 영국사는 100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는 영국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덕에 가을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절이기도 하다.
영국사는 큰 절은 아니지만 사찰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멋진 은행나무가 있어 전국적으로 이름난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주차장에서 사찰까지의 오솔길 산책이, 가을에는 은행나무와 더불어 천태산 단풍구경이 즐겁다.
출처:영동군
영동읍내에서 양산행 버스를 함께 타고 온 할머님과 누교리에 내린다. 우측 영국사 방향으로 걸어간다.
"천태산 영국사 표석 2.5km"
"지력1교"
"누교리 농촌소경"
"벽화"
"천태산 정류장"
"영동의 가을 임윤"
"길 안도현"
"충북의 설악 천태산계곡 "
"진주폭포"
사람들이 밟아 닳은 소나무 뿌리의 흔적이 보인다.
[보물 영동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永同 寧國寺 望塔峰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at Mangtapbong Peak of Yeongguksa Temple, Yeongdong]
영국사는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명종 때인 12세기에 원각국사에 의해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고종 때 안종필이 왕의 명을 받아 탑, 부도, 금당을 새로 짓고 절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하였다. 뒤에 다시 공민왕에 의해 영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이 탑은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500m 되는 곳의 망탑봉(望塔峰)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커다란 화강암을 기단(基壇)으로 삼고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은 암석 윗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그 중앙에 돌출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기단은 기둥모양과 안상(眼象)을 조각하여 형태를 완성하였다. 그 위에 아무런 받침없이 그대로 탑신이 놓여있다. 탑신은 윗부분이 아래부분보다 좁아지는 몸돌을 쌓아올렸다. 1층 몸돌에는 네 면에 무늬없는 문짝모양을 돋을새김하였는데 위·아래가 돌출된 액자형이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며, 추녀는 수평의 직선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이 5단이고 2·3층은 3단이다.
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일정하지 않지만, 몸돌의 상부를 좁게함으로써 비교적 안정감이 있다. 기단을 한 층으로 하고 기단의 맨윗돌을 생략하는 등 부분적으로 간략화된 고려석탑의 유형을 보여준다. 각 부 양식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인 12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영동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망태봉 천태산주차장 방향 전경"
"흔들(상어)바위"
"영동 천태산 영국사 일주문"
"천연기념물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
"영국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영동 영국사 대웅전 (永同 寧國寺 大雄殿)]
천태산에 위치한 이 사찰(寺刹)은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명종때인 12세기에 원각국사에 의해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高麗) 고종(高宗)때에는 금당(金堂)을 건립하고 국청사(國淸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공민왕(재위1351∼1374) 때 홍건적의 침략을 피하여 이곳에서 나라의 안정과 국민의 평안을 기원하였으므로 이름을 영국사라 고쳤다고 한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상을 모시는 법당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의 건물이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영동 영국사 삼층석탑 (永同 寧國寺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of Yeongguksa Temple, Yeongdong]
영국사는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명종 때인 12세기에 원각국사에 의해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고종 때 안종필이 왕의 명을 받아 탑과 부도와 금당을 새로 짓고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하였다. 뒤에 다시 공민왕에 의해 영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이 탑은 영국사 대웅전 앞에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완전한 형태이다. 위·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특히 위층 기단의 무늬는 모서리까지 침범할 만큼 크고 넓다. 기단 맨윗돌에는 네 모서리 끝부분에서 약간의 치켜올림이 있어 주목된다. 탑신부는 각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놓았으며, 1층 몸돌 정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까지 있는 문짝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네 귀퉁이는 바짝 치켜올려진 상태이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각 4단씩이다.
이 탑은 기단과 탑신부가 간결하여, 조형 미술품의 규모가 작아지고 양식도 간략화되던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영국사 삼층석탑과 보리수"
"불상과 영국사"
[보물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 (永同 寧國寺 圓覺國師碑) Stele of State Preceptor Wongak at Yeongguksa Temple, Yeongdong]
영국사 경내에 있는 비로,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원각국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선사·대선사가 되었던 명승으로, 명종 4년(1174)에 입적하자 왕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였다.
비의 형태는 거북 모양의 비받침인 귀부(龜趺) 위에 비몸을 세우고, 비머릿돌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을 보인다.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거북 머리는 퇴화되었고, 거북등의 6각형 무늬와 비를 끼워두는 곳의 덩굴무늬는 생략되었다. 비몸은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하다. 비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고, 앞면 중앙에는 ‘원각국사비명(圓覺國師碑銘)’이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시대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몸에 비하여 비받침이 커서 안정감을 주는 반면, 비머릿돌이 지나치게 커서 중압감을 주고 있다.『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문을 지은 이는 한문준이고, 건립연대는 고려 명종 10년(1180)이다.
출처:문화재청
돌거북은 전형적인 고려 거북이다. 씩씩하고 뚝심 있게 생긴 한편 조각 솜씨는 간략하고 둔중하다. 등껍데기에 큼직한 육각 귀갑문이 새겨졌고 비늘과 주름이 새겨진 굵은 목을 곧추세웠으며 선이 굵은 눈과 콧마루가 역사(力士)와 같은 강한 인상을 준다. 등 가운데 마련된 얕은 비좌 옆면에는 당초문이 새겨졌다. 꼬리가 큼직하게 두드러진 반면에 네 발은 덩치에 비해 우스울 정도로 자그맣게 옹그린 모습이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비석머리 측면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에 전액을 파고 원각국사비명이라는 글자를 넣었다. 윗부분에는 양쪽 끝에 한 쌍씩 모두 네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 보주는 없어졌다. 조각 솜씨는 돌거북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형식적이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비석은 돌거북이나 비석머리의 규모에 비해 아주 얇고 낮은데 아랫부분과 모서리들이 많이 깨져나갔다. 비에는 명종 때 문신인 한문준이 지은 비문이 부드러운 해서체로 새겨져 있고 그 둘레에 보상당초문 띠가 둘러져 있으며 뒷면에 원각국사 문도들의 직명이 적혀 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영동 영국사 구형승탑 (永同 寧國寺 球形僧塔)]
영국사 내의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사리탑으로, 사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수가 없다.
탑의 기단부(基壇部)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8각의 아래받침돌을 세우고, 역시 8각의 윗받침돌을 올려놓은 구조이다.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고, 위가 반듯한 윗받침돌은 밑으로 한겹씩의 연꽃무늬를 둘렀다. 탑신(塔身)의 몸돌은 둥근 공모양이며, 지붕돌은 8각으로 여러 조각들이 생략되어 밋밋하고 투박하다. 지붕돌 위로는 꽃봉오리모양을 한 머리장식을 올려 놓았다.
각 부분의 조각들이 생략되거나 간략화되고, 연꽃잎이 한겹으로 되어 있어 고려말·조선초의 작품으로 보인다. 원각국사비 뒷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원각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문화재청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영동 영국사 석종형승탑 (永同 寧國寺 石鍾形僧塔)]
영국사 내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뒤쪽에 서 있는 승려의 사리탑으로, 모셔진 사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마련된 기단(基壇)은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8각이다.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아래·윗받침돌에는 각기 연꽃을 조각하여 둘렀는데 꽃잎은 모두 한겹씩이다. 그 위로는 종모양의 탑신(塔身)이 올려져 있는데, 그 위의 머리장식조차 종을 매달 때 쓰이는 고리를 떠올리게 하여 실제의 종과 거의 비슷하다.
바닥돌에서부터 머리장식까지 모두 6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종형 부도이면서도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다. 연꽃잎도 모두 한겹으로 표현되어 있어 고려말·조선초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뒷편으로는 원각국사비가 서 있어서, 원각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문화재청
"소나무 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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