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3. 05:28ㆍ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
[국가등록문화유산 군산 해망굴 (群山 海望堀) Haemanggul Tunnel, Gunsan]
해망굴은 구 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기 위해 1926년 건립한 반원형 터널(높이 4.5m 길이 131m)로서 근대 도시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토목 구조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산신사와 신사광장(현 서초등학교), 공회당, 도립군산의료원, 안국사(현 흥천사) 등이 인근에 있어서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 주둔 북한군 지휘본부가 터널 안에 자리하여 연합군 공군기의 공격을 받았던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출처:국가유산청
[국가등록문화유산 군산 해망굴]
이 시설물은 식민지 수탈의 기지가 된 군산이 최고의 무역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해망동과 중앙로를 연결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군산신사와 신사광장, 공회당, 도립군산의료원, 은행사택, 안국사(현 흥천사)등이 인근에 자리하고 있어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북한군 지휘본부가 터널안에 자리하게 되어 연합군 공군기의 공격을 받았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군산 해망굴"
[군산 해망굴(海望堀)]
해망굴은 구 군산시청 앞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 그러니까 지금의 해신동을 연결하기위해 만들어진 터널이다. 정면에서 보면 반원 형태이고, 터널의 높이는 4.5m, 전체 길이는 131m 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군산에서는 제3차 군산항 축항공사를 하며 화물하차장 확대, 부잔교 추가 설치, 창고 추가 건설 등 여러 사업이 함께 이루어졌으며, 해망굴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터널이 개통된것은 군산항을 기지로 한 식민지 수탈이 최고조를 향해 달려가던 시기였던 1926년 10월이다.
당시 이 일대는 군산신사와 공회당, 도립군산의료원, 은행사택 등이 위치한 번화가로, 사람의 통행과 물자의 유통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일제는 시내와 군산항을 곧바로 연결하는 해망굴을 뚫어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시내의 물자를 항구로 나르고자 했다.
이 터널은 돌산을 깨서 만들어야했기 때문에 건설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공사 도중 조선인 인부 십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때 당국에서는 이들의 시신도 제대로 수습해주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느라 바빴다. 그러자 군산의 사회운동가로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조용관 선생이, 위험을 무릅쓰고 투쟁을 벌여 이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해망굴은 한국전쟁 중에 군산에 진주한 인민군의 지휘소가 들어섰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연합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는데, 지금도 입구 주변을 살펴보면 곳곳에 이때의 상황을 말해주는 총탄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야말로 굴곡진 역사의 부침을 온몸으로 겪어냈던 유적이 아닐 수 없다.
[해망굴 따라 흘러간 인생길]
고기잡이배 타러 가는 어부
쌀을 선적하러 가는 아빠의 수레에 올라탄 아이
머리에 개나리 봇짐을 이고 시내 장터로 가는 아낙네
해망굴은 비바람 몰아치던 그 새벽 우리들의 휴식처였다.
해망굴은 뙤약볕 내리쬐던 그 여름 우리들의 그늘이었다.
해망굴은 눈보라 치던 그 겨울 우리들을 지켜주던
희망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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