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소, 사유의 방(반가사유상)

2021. 12. 2. 08:03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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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험의 여정]

사유의 방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사유의 방'에는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둡고 고요한 사유의 방을 걸어 들어가면 끝없는 물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시공을 초월한 초현실의 감각을 일깨우며 반짝임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1,40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 앞에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됩니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듯, 고뇌하는 듯,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고, 치유와 평안이 다가옵니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사유의 방'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여정은 우리 시대의 특권입니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나의 경험, 나의 여정,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출처:국립중앙박물관


2021년 11월 12일 (금), 새로운 전시 공간에서 국보 반가사유상과 함께하는 사유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사유의 방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공간입니다. 사유의 방에서 나만의 경험, 나의 여정,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 이하‘중박’)은 대표 소장 유물인 반가사유상 2점(국보 제 78호, 83호)를 선정해「‘한국의 미소’ 반가사유상 애칭 공모전」을 개최해 총 21점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유물인 반가사유상은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고 국외전시 중, 찬사를 받은 유물을 대표 브랜드화해 내·외국인의 관심을 유도하고 한국 대표 유물의 상징성을 부여할 목적으로 그 의미가 뜻깊다.

중박은 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 제83호)을 대표 브랜드로 정하고 상설전시 공간(사유의 방)을 건립·조성을 계기로 반가사유상을 쉽게 부르고 기억할 수 있는 친근감 있는 이름(애칭)을 지어 주기 위해 지난 8월 23일(월)부터 9월 30일(목)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의 미소’ 반가사유상 애칭 공모전」을 추진했다. 동 공모전은 6천 여명이 응모하여 6,034건에 이르는 작품(애칭)이 접수되었다.

중박은 동 공모전에 응모한 애칭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하기 위해 박물관 내부 및 외부(전문가) 심사와 문체부 전 직원(4,100여명) 대상 설문조사 등 4차례 심사를 거쳐 최종 21점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최종 심사결과, 대상은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며 ▲금상(3점)은 반디·반야, 해아림·별아림, 금비·신비, ▲은상(3점)은 혜윰·나린, 혜윰·휘호, 보듬·다듬, ▲동상(6점)은 반가미·반가온, 헤윰·자늑, 완이·온이, 반가온·사유람, 해달·연화, 화비미르·다비미르, ▲입선(9점)은 선미·은미, 일월무아상·염화미소상, 달사유·해사유, 해소·해연, 해달미소·연화미소, 화미·온미, 수려·유려, 온화·고요, 자미·온미)으로 선정되었다.

이번 반가사유상 애칭 공모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반가사유상을 대표 브랜드로 한 상설전시실(11.12. ) 개관을 계기로 전 국민 홍보를 위해 추진하였으며, 당선작으로 선정된 애칭(비공식 명칭)은 반가사유상 전시실(사유의 방) 입구에서 ‘사유의 방’관람객을 대상으로 안내할 계획입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사유의 방(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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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의 공간]


두 국보 반가사유상을 전시한 공간으로 건축가 최욱(원오원 아키텍스 대표)이 디자인하였습니다. 건축가는 반가사유상의 에너지와 공간이 일체화된 느낌으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관람객과의 거리를 고려하여 소극장 규모로 전시실을 설계하였습니다.

관람객은 어둠을 통과하는 진입로, 미세하게 기울어진 벽과 바닥, 반짝이는 천정 등 추상적이고 고요한 전시 공간에서 반가사유상을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사유의 방"


[두 반가사유상]

사유의 존재, 반가사유상의 의미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을 살짝 뺨에 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상(像)의 자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가(半跏)'는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결가부좌 (結跏趺坐)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입니다. '사유(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를 나타냅니다.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반가사유상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태자 시절부터 인간의 생로병사를 깊이 고뇌했고, 출가를 결심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도 깊은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이처럼 깊은 생각에 빠진 석가모니의 모습이면서, 깨달음을 잠시 미루고 있는 수행자와 보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반가의 자세는 멈춤과 나아감을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움직임 가운데 있습니다. 한쪽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려는 것인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가의 자세는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진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영원한 깨달음의 찰나를 그려 보게 합니다. 이 찰나의 미소에 우리의 수많은 번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무게 37.6kg, 국보, 국립 중앙박물관 본관 2789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무게 112.2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3312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의 미학 : 조화와 균형]

반가사유상은 단독 예배상으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중에서 신앙의 경지를 최고의 예술로 승화시킨 두 점의 국보 반가사유상은 세속의 감각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표정과 옷차림, 크기와 무게, 제작 시기도 모두 다릅니다.

전시실 왼쪽의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습니다. 날카로운 콧대와 또렷한 눈매, 그리고 화려한 장신구와 정제된 옷 주름 등이 특징으로 꼽힙니다. 양옆으로 휘날리는 어깨 위의 날개옷은 생동감을 주고, 옷 사이로 살짝 드러난 목걸이와 팔 장식은 화려함을 더합니다.

이보다 조금 늦게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전시실 오른쪽 반가사유상은 단순하고 절제된 양식을 보여 줍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 세 개의 반원으로 이루어진 보관(寶冠)의 형태와 두 줄의 원형 목걸이는 간결함을 더합니다. 반면, 무릎 아래의 옷 주름은 물결치듯 율동감 있게 표현되어 입체적으로 흘러내리며 역동성을 보여 줍니다. 양손의 손가락들에선 섬세함이 느껴지고, 힘주어 구부리고 있는 발가락에는 긴장감이 넘쳐흐릅니다.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무게 37.6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무게 112.2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의 제작 기술]

두 점의 반가사유상에는 삼국시대의 최첨단 주조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주조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수직과 수평의 철심으로 불상의 머리에서부터 대좌까지 뼈대를 세운 뒤에 점토를 덮어 형상을 만듭니다. 거기에 밀랍을 입혀 반가사유상 형태를 조각한 다음, 다시 흙을 씌워 거푸집(외형)을 만듭니다. 거푸집에 뜨거운 열을 가하면 내부의 밀랍이 녹아 반가사유상 모양의 틈이 생깁니다. 여기에 청동물을 부어 굳힌 다음 거푸집을 벗기면 반가사유상이 완성됩니다.

이때 청동물이 굳으면서 거푸집이 깨질 수도 있기에, 매우 세심한 제작 기술이 필요합니다. 두께 0.2~1.0cm 정도, 크기 1m에 가까운 금동 반가사유상을 만들어 낸 삼국시대 주조기술과 그 수준은 세계인이 놀랄 만큼 돋보입니다. 주조 후 거푸집을 고정했던 장치나 못을 제거한 흔적도 보이지 않아 그 당시 금속 가공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제작 당시에 보수했거나 후대에 수리를 했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무게 37.6kg, 국보, 국립 중앙박물관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무게 112.2kg,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의 소장 경위와 제작지]
두 점의 국보 반가사유상을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고,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국보 반가사유상(전시실 오른쪽) 한 점은 1912년 이왕가(李王家)박불관이 일본인 고미술상 가지야마 요시히데(楣山義英)에게 2,600원이라는 큰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또 다른 한 점(전시실 왼쪽)은 같은 해에 조선총독부가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인 후치가미 사다스케(淵上貞助)에게 4,000원을 보상해 주며 구입했고,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입수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45년 국립박물관이 인수하였고, 이왕가박물관(덕수궁미술관) 소장품은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보존하고 있던 사찰과 만든 곳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며, 옛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전해질 뿐입니다. 보관 상태, 장신구, 옷 주름 등의 모양으로 살펴볼 때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전시실 오른쪽)은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두 반가사유상"


"두 반가사유상"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과 함께 국내에서는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높이가 93.5㎝이다. 1920년대에 경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으며,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삼산반가사유상(三山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얼굴은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고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고, 목에 2줄의 목걸이가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꽃무늬 대좌(臺座)를 밟고 있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왼손으로는 오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하반신을 덮은 치맛자락은 매우 얇게 표현하여 신체 굴곡이 잘 드러나며, 연꽃무늬 대좌를 덮은 옷자락은 깊고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왼쪽으로 옥을 꿴 치마의 띠가 내려가고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긴 촉이 달려 있어 광배(光背)를 꽂았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 표현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으로서의 완벽한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잔잔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반가상의 자비로움은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준다.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시대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영문 설명]

As one of the two largest gilt-bronze statues of Buddha in meditation made before the modern period -- the other being the gilt-bronze statue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 No. 78 and store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 Seoul -- this pensive Maitreya is 93.5 centimeters tall and was presumed to have been found in Gyeongju during the 1920s. Wearing a crown of three peaks, it is also called the Tri-peak Pensive Buddha.

The Buddha has a plump, round face wearing a benign smile and a naked slender upper body with two loose rings around the neck. He is seated with his right leg crossing the left leg -- which is pendent -- on a tiny lotus mat, his right hand placed over the right ankle and the fingers of his right hand gently touching his right cheek. The skirt covering the lower body is as light as a veil that it reveals the shape and curves of the body; the fabric covering the lotus pedestal on which the deity is seated is draped down heavily, creating many folds. His outfit is complete with a fabric sash around the waist and is draped down with a jade disk chained in the middle. There is a peg behind the head, showing that the deity once had a mandorla (Buddhist halo of light).

With the simple, balanced body, realistic rendering of the veil skirt and fabric pedestal cover, and elaborately carved facial features, the statue is widely regarded as a clear example of advanced metal molding techniques. The dim, blissful smile on the face also contributes to its reputation as a great masterpiece representing the artistic achievement of Korean Buddhist sculpture. Art historians believe that the statue was made later than the Gilt-bronze Pensive Maitreya Bodhisattva of National Treasure No. 78, probably during the late Three Kingdoms Period (57BC-668).

출처:문화재청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오른쪽"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오른쪽"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오른쪽"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의자 위에 앉아 오른발을 왼쪽다리 위에 올려 놓고,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손가락을 뺨에 댄 모습의 보살상으로 높이는 80㎝이다. 1912년에 일본인이 입수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했던 것을 1916년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여기에서 나온 2가닥의 장식은 좌우로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네모꼴에 가까운 얼굴은 풍만한 느낌을 주며, 광대뼈를 나오게 하고 입가를 들어가게 하여 미소 띤 얼굴을 만들었다.

상체는 당당하면서도 곧고 늘씬한 모습이며, 하체에서는 우아한 곡선미를 느낄 수 있다. 늘씬한 팔이나 체구에 비해서 손이나 발은 상대적으로 큼직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탄력이 있고 매끄러우며 부드럽고 율동적이어서 보살상의 우아한 모습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목 뒤로 돌아 양 어깨를 감싼 천의(天衣)는 새의 깃털처럼 치켜 올라갔다가 다시 가슴쪽으로 흘려내려 왼쪽 다리에서 교차한 다음, 양 무릎을 지나 두 팔을 감아 내렸다. 하체에 입은 치마는 다소 두툼해 보이는데 U자형 주름이 능숙하게 새겨져 있다.

왼발을 올려 놓은 타원형의 대좌(臺座)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 흔적만 있을 뿐 광배(光背)는 없어진 상태이다.

1963년 방사선 투과법으로 촬영한 결과 내부의 결함이나 고친 흔적이 없으며, 재질이나 만든 기법이 매우 특이함이 밝혀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자세, 아름다운 옷주름, 명상에 잠긴 듯한 오묘한 얼굴 등으로 보아 한국적 보살상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6세기 중엽이나 그 직후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영문 설명]
This 80-centimeter high gilt-bronze pensive Maitreya Bodhisattva is seated on a stool-like pedestal with his right leg crossed over his left, the fingers of his right hand gently touching his cheek. It was acquired by a Japanese collector in 1912 and donated to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before being turned over to its museum in 1916.

Currently, the statue is on display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The bodhisattva is wearing a lavishly decorated headgear from which two strands are drawn over to both shoulders. He has a rather squarely, plump face wearing a benign smile and a sleek, imposing body with slender limbs and comparatively large hands and feet, all of which highlight his elegant physical appearance.

He is clothed in a celestial veil robe that covers both shoulders before being draped down to cover the knees. The lower garment, made of a rather thick fabric, has many U-shaped folds exhibiting excellent workmanship. The oval pedestal on which the bodhisattva places his left leg is decorated with a lotus motif, but the mandorla (Buddhist halo of light) is missing.

An X-ray inspection carried out in 1963 revealed that it has no trace of defect or repair either inside or out, and that it was made of a rare material using unique techniques. Art historians believe, based on the statue’s balanced physique, beautifully rendered robe folds, and pensive look, that it was made in the mid- or late 6th century during which the Korean style of bodhisattva images emerged.

출처:문화재청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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