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3대 사찰, 부산 금정산 범어사

2022. 5. 13. 04:47바롱이의 쪽지/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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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 범어사]

부산 금정구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로 꼽힌다. 신라 문무왕 때 건축됐으며 역사적으로도 많은 고승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유명하다. 특히 아름다운 계곡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금정산 자락에 위치해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츨처:비짓부산


"등나무군락지 수형 좋은 소나무"


"돌구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범어사 당간지주 (梵魚寺 幢竿支柱)]

산지를 이용한 특이한 가람배치로 잘 알려진 범어사는 숲으로 둘러싸인 자연조건이 아름다운 곳이다. 숲 한가운데 수많은 비석과 유물들이 있는데, 이 당간지주도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우뚝하게 자리하고 있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둔다. 깃발을 다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옆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은 두 기둥만 남아 있다. 

이 당간지주는 현재 기단(基壇)과 당간의 받침돌이 모두 사라지고 양쪽의 두 기둥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기둥 윗부분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켰던 네모난 홈을 두고 양 기둥 끝은 곡선으로 처리하였다. 

돌을 다듬은 흔적이 고르지 않아 둔중한 감이 있으나, 장식이나 조각이 전혀 없어 소박한 모습이다.

출처:문화재청


[하마비]

조선 후기 관리들의 공물 요구에 괴로워했던 승려들의 고충을 죽어서라도 해결하고자 한 마음이 깃든 석상이라고 한다. 하마석은 서원이나 유명 종택 앞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데, 사찰에 있는 건 매우 드문 경우다.

출처:비짓부산


[보물 부산 범어사 조계문 (釜山 梵魚寺 曹溪門) Jogyemun Gate of Beomeosa Temple, Busan]

경상남도 3대 절 중 하나로 유명한 범어사는『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처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한 옛날 일본인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의 승려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던 곳 가운데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을 세운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조선 광해군 6년(1614)에 묘전화상이 절내 여러 건물을 고쳐 지을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추측한다.

정조 5년(1781)에 백암선사가 현재의 건물로 보수했다. 앞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은 높은 돌 위에 짧은 기둥을 세운 것이 특이하며 모든 나무재료들은 단청을 하였다. 부산 범어사 조계문은 모든 법이 하나로 통한다는 법리를 담고 있어 삼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부산 범어사 조계문은 사찰의 일주문이 가지는 기능적인 건물로서의 가치와 함께 모든 구성 부재들의 적절한 배치와 결구를 통한 구조적인 합리성 등이 시각적으로 안정된 조형 및 의장성을 돋보이게 한다. 한국전통 건축의 구조미를 잘 표현하여 우리나라 일주문 중에서 걸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영문 설명]

The exact construction date of Jogyemun Gate of Beomeosa Temple is unknown, but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1614 (the 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of the Joseon Dynasty) when Buddhist monk Myojeon in charge of the temple initiated the repair and restoration of several halls at the temple.

Beomeosa Temple itself is one of the three major temples located in Gyeongsangnam-do. According to the Samguk 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the temple was founded by Buddhist monk Uisang in 678 (the 1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Munmu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It is said that the Buddhist monks of Beomeosa Temple fought in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Jogyemun Gate was repaired in 1781 (the 5th year of the reign of King Jeongjo) by Master Baegam. The gate measures three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at the front, and has a gabled roof resembling the Chinese character 人 when viewed from the side. The eaves of the roof are supported by a system of brackets placed on and between the pillars in the dapo (multi-bracket system) style. The gate’s distinctive features include the short wooden pillars placed on top of the tall, large foundation stones. All the wooden surfaces of the gate are painted in a variety of colors and designs.

Jogyemun Gate represents the Buddhist principle that all the laws of the world lead to one path, and is therefore called the “gate to the three ways of nirvana.” Situated at the entrance to the temple, the gate serves as the Iljumun Gate of temples, being the first gate through which one must pass to enter the temple.

The structural balance of the gate’s individual parts and components lends overall stability to its form and is aesthetically pleasing at the same time. The gate is both a masterpiece of the Iljumun type of gate and an exemplar of the structural beauty of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출처:문화재청


[보물 부산 범어사 조계문]

한 줄로 늘어선 기둥 위에 지붕을 올린 이름 그대로의 일주문이다. 높낮이가 서로 다른 튼실한 주춧돌 위에 짧은 기둥, 그리고 화려한 다포가 무거운 지붕도 가볍고 안정되게 받치고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일주문을 대표하는 데 손색이 없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천왕문]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며, 정면 어칸은 통로가 되게 꾸며졌다. 내부에는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불이문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으로, 세 칸 모두 문을 달았다. 기둥 위 공포와 공포 사이를 장식한 화반이 눈길을 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불이문]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에는 화엄사찰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선종사찰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범어사는 화엄사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가람배치의 기본 정신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일주문에서부터 일직선상으로 천왕문과 불이문·보제루·대웅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단으로 높이를 높여가고 있는데, 이는 화엄십찰 가운데 큰절인 해인사·화엄사·부석사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가람의 방식이다.

현실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문에서부터 일직선상으로 수많은 계단을 거쳐야 불국의 주인인 석가모니불을 모신 세계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일주문에서부터 천왕문과 불이문이 일직선상에 놓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일주문 - 천왕문 - 불이문이 만드는 진입축은 각 구간이 약간씩 꺾여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길은 더욱 깊어지는 효과가 생겨난다.

일주문에서 천왕문, 불이문, 보제루로 오르면서 각각의 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면 그 효과가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천왕문에서부터 보제루에 이르기까지는 양옆에 낮은 담이 쌓여 있다. 이 담이 없었더라면 이렇듯 고요함과 동시에 부처님의 세계로 몰입하는 듯 집중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 게다가 일주문 - 천왕문 - 불이문을 거쳐 보제루에 이르는 공간은 진입할수록 경사가 가파르고 계단이 많아진다. 상승감이 강조되는 것이다. 결코 길지 않은 범어사의 진입 공간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이유이다.

츨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제루]

불이문을 통과하면 하단 구역은 여기서 마무리되고, 정면으로 보제루가 가로막고 나선다. 가파른 경사 위에 높직한 계단을 올라 닿게 되는데 이름으로는 누각이어야 마땅하지만 실제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매우 큰 팔작지붕집이다. 보제루를 통과하는 게 아니라 옆으로 돌아들어야 경내로 들어가게 된다.

보제루와 오른쪽의 종루 사이로 보제루를 돌아들면 하단 구역에서 수직 상승해 이동해오던 분위기와 달리 너른 마당이 공간감 있게 확대된다.

중단 구역이면서 대웅전 앞마당이 되는 셈이다. 대웅전은 이 마당에 보제루와 서로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높직한 축대 위에 올라서서 경내를 굽어보는 모습이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범어사 석등 (梵魚寺 石燈)]

범어사 안에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보통 금당이나 탑 앞에 두는데, 이 석등도 원래는 용화전(龍華殿) 앞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절내의 종루와 그 자리를 바꿔놓은 것이다. 

석등은 3단의 받침 위에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형태로, 각 부재가 8각을 이루고 있다. 받침부분은 가운데기둥을 사이에 두어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아오르는 연꽃무늬를 새겨 대칭적으로 표현하였다. 화사석은 4면에 네모난 창을 두었는데 창의 가장자리마다 창문을 달았던 10개의 구멍흔적이 남아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고, 꼭대기에는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위로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후대에 보수한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빈약하고, 윗받침돌이 두터워서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범어사삼층석탑(보물 제250호)을 세운지 3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만들었다고 하나 양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9세기경인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 (釜山 梵魚寺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of Beomeosa Temple, Busan]

범어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이 탑의 특징은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위·아래층 기단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대신 안상(眼象)을 큼직하게 조각한 것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평평하고 얇은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어졌다. 

통일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에 세운 탑으로, 일제시대에 크게 수리를 할 때 기단 아래부분에 돌 하나를 첨가하는 바람에 기단부가 너무 크고 높은 느낌을 준다. 밑에 둘러진 난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문 설명]

This pagoda located in front of Daeungjeon Hall, the main hall of the Beomeosa Temple, is believ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reign of King Heungdeok (826-836) of the Silla Dynasty.

This three-story on a double-foundation stone pagoda follows the general style of stonework of Silla Period. It is decorated with the "panel design" rather than the usual pillar-shaped carvings. The second and third stories are disproportionately small compared to the first story. The roofs rest on rather flat, thin four-tiered cornices and the eaves are horizontal reflecting the unique style of late Silla masonry. The only remaining parts of the pagoda's finial are the lowest part of the ornament, although the pearl-shaped sacred jewel was added later.

During the repair work executed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the base part was repaired to be too tall and large. A railing was also provided at the time.

출처:문화재청


[보물 부산 범어사 대웅전 (釜山 梵魚寺 大雄殿) Daeungjeon Hall of Beomeosa Temple, Busan]

경상남도 3대 절 중 하나로 유명한 범어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처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한 옛날 일본인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의 승려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던 중요한 곳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1993년 문화재연구소 정밀실측 중 대웅전 종도리 묵서명에서 효종 9년(1658) 상량식을 거행한 내용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대웅전이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602년 당시 현감이 임시 복구하였으며 1658년 효종 9년에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암막새 명문과 기단 각자, 목부재 기록 등으로 볼 때 현재 대웅전은 17세기에 중건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는 일반 대웅전과는 달리 이곳 범어사 대웅전에는 미륵보살과 가라보살을 각각 석가모니의 왼쪽과 오른쪽에 함께 모시고 있다.

앞면·옆면 3칸 크기를 가진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또한 건물 안쪽에 불상을 올려놓는 자리인 불단과 불상을 장식하는 지붕 모형의 닫집에서 보이는 조각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조선 중기 불교건축의 아름다움과 조선시대 목조공예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영문 설명]

Unlike other Daeungjeon halls in which Sakyamuni statues are enshrined, Daeungjeon Hall at Beomeosa Temple* enshrines a Sakyamuni statue, flanked by statues of Maitreya (Maitreya Bodhisattva) and Gara Bodhisattva.

This Daeungjeong Hall was burnt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but was rebuilt in 1602 (the 35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of the Joseon Dynasty) and repaired again in 1631 (the 5th year of the reign of Prince Gwanghae of Joseon).

The building measures three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at the front and three kan at the sides, and has a gable roof resembling the character 人. The eaves of the roof are supported by a system of brackets placed on and between the pillars. In addition, the interior altar in which a Buddhist statue is placed, and the roof-shaped canopy decorating the altar display the delicate and refined carving style of Buddhist architecture and the woodcraft of the Joseon Dynasty.

According to Ilyeon's Samguk 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Beomeosa Temple, one of the three renowned temples of Gyeongsangnam-do (the southeastern part of Korea), was built in 678 (the 1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Munmu) by Uisang, the greatest Buddhist figure of the Unified Silla Period.

It is also known as an important temple site where monks stayed and participated in the wa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98. It is also known as an important temple site that the temple’s monks participated in fighting against the Japanes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98.

출처:문화재청


[대웅전 계단과 소맷돌]

중단 영역과 대웅전을 연결하는 계단은 본래 한 칸이었으나 후에 증축하여 세 칸을 만들었다. 계단 가운데 소맷돌 아랫부분에 一자 눈썹에 귀가 앞으로 쏠려 마치 투구를 쓴 것같이 우스꽝스럽게 생긴 사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대웅전의 기단과 계단 역시 창건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듯, 고졸하면서도 멋스러운 장식이 세월을 견디고 있다. 기단면석 곳곳에 장식된 꽃하며 정면 가운데 소맷돌에 가지 굽은 꽃을 장식한 모습이 통도사 대웅전을 떠올리게 한다.

츨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웅전 앞 금고"

1862년(철종 13)에 만들어진 이것은 바깥 지름이 90㎝에 달하는 대형 금고이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 (梵魚寺 捌相·獨聖·羅漢殿)]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에 겹처마, 맞배지붕인 본 건물은 현재 범어사 대웅전 서쪽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부속 불전의 하나로, 적어도 1706년 이래로 존속했던 위치에서 변함없이 존속해 온 건물이다.

1902년에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당시까지는 중앙의 천태문(天台門)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팔상전과 나한전이란 별개의 건물이 서 있다가, 1905년 11월~1906년 11월까지 약 1년에 걸친 공사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따라서 서측의 팔상전 부분과 동측의 나한전 부분의 건축 형식은 변형되거나 고쳐지지 않고 1906년 중건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 지며, 다만, 팔상전과 나한전의 노후화 된 부재의 교체와 내부 가구(架構)가 수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906년에 단장된 독성전(獨聖殿) 부분은 문틀을 하나의 통재를 사용해서 반원형으로 구부려 만든 독특한 모습이고, 창방 사이의 삼각형 벽체 부분에는 통판(通板)으로 넝쿨 형상을 초각하였으며, 창호도 팔상전과 나한전이 교살창인데 비해 독성전은 화문살로 아름답게 꾸미는 등 장식수법이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

이처럼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은 1906년에 중건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간살, 가구(架構)와 평면, 입면 구성 등에서 1706년 이래의 건축 형식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고, 특히 하나의 건물에 세 불전(佛殿)을 모신 점, 중아에 위치한 독성전 개구부(開口部)의 뛰어난 의장과 초각수법은 그 예가 극히 드문 만큼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건물로 평가된다.

출처:문화재청


[독성전]

독성전의 앞모습이 아취형인 점도 눈길을 끈다. 아취형 문틀 옆에는 남녀 한 쌍의 나뭇조각이 세워져 있다. 강화도 정수사 대웅전의 나녀들 같은 전설이 전할 법도 한데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조각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정작 독성전의 창문은 아취형 문틀 뒤쪽에 한 발짝 물러나 있는데, 화려한 꽃창살에 여간 정성을 들인 것이 아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호수 범어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후 노승 묘전 스님께서 옮겨 심은 것으로 수령이 약 580년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나무의 은행이 열지 않아 3백 년 전에 절에서 맞은편에 은행 수나무 한 그루를 심어줘 그 후부터 한 해 약 30여 가마의 은행을 따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90년 땅벌을 쫓기 위해 연기를 피운다는 것이 그만 나무에 불이 붙어 아직까지도 불에 탄 자국이 역력하다. 이 나무는 범어사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며 소원성취를 비는 수호목으로서 범어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장수목이며 사랑과 관심으로 보호해야 할 보호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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