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복천동 고분군&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

2022. 5. 28. 08:02바롱이의 쪽지/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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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부산 복천동 고분군 (釜山 福泉洞 古墳群) Ancient Tombs in Bokcheon-dong, Busan]

부산 복천동 일대의 구릉 위에 있는 가야 때 무덤들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로 4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나, 대부분의 무덤은 아직도 땅 밑에 남아있다.

무덤의 형태는 땅을 파서 넓은 방을 만들고 나무관을 넣은 덧널무덤(토광목곽묘), 땅속에 네모난 돌로 벽을 쌓고 천장을 덮어 만든 구덩이식 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 땅속에 시체를 바로 묻는 널무덤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식의 무덤들이 있다. 이 무덤들에는 도굴되지 않은 큰 무덤이 많아 2000점 이상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굽다리접시(고배), 목항아리(장경호), 토제등잔을 비롯한 토기류는 4∼5세기 낙동강 하류지역의 특징적인 토기들이다. 철제 갑옷·투구류도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특히 4호 무덤에서 나온 단갑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갑옷이다. 11호에서 출토된 괘갑은 부속장식까지 완전하게 갖춘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이런 완제품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되는 것이다. 10호 무덤에서 발견된 말갖춤(마구)는 완전히 갖추어진 실전용으로 처음 발견되었다. 이러한 갑옷·투구류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것과 같다.

복천동 무덤에서 보이는 새로운 무덤양식은 무덤의 변천과 흐름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영문 설명]

Concentrated on a hill in Bokcheon-dong, Busan, this is a large group of ancient tombs from the Gaya Dynasty. More than forty of them have been excavated over several stages of research, but this is just a part of the total number, and most of the tombs still remain buried under houses.

Various patterns of tomb building were found, such as earth pit and wooden coffin tombs, pit style stone burial chambers, and pit tombs. There are many bigger tombs that were not robbed so more than 2,000 pieces of various artifacts have been excavated so far. The earthenware, including mounted dishes, pots with long necks and lamps represent the specific character of earthenware used in the area of the lower Nakdonggang River, and this contributes to their accurate dating. It is found that the earthenware of Silla had a great influence on what was made here in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Various kinds of armor and helmets including single-ply armor made of iron, light armor, and hanging armor were found. In particular, the single-ply armor from the 4th tomb is of a unique kind that was found here for the first time in our country. The hanging armor was found in the 11th tomb with a complete set of accessories attached, for the first time in our country. In the 10th tomb, also for the first time, a fully equipped harness was found. It is possible to confirm that these kinds of helmets and armor came from Goguryeo as they were painted on the inside walls of tombs of that age. The discovery of a new pattern in the tombs at Bokcheon-dong is providing an important motive to study the changing trends of tombs.

Therefore this group of tombs at Bokcheon-dong is a very important site which is continuing to provide various materials to study the ancient history of our country.

츨처:문화재청


[복천동 고분군]

동래부 동헌, 동래향교, 동래읍성, 충렬사 등이 있는 부산의 구중심지, 곧 동래지역의 북쪽으로 이 지역을 반달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대포산이 있다. 복천동 고분군은 이 대포산이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낮은 구릉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모아 1996년에 문을 연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복천분관이 바로 옆에 있어 현장 답사와 학습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교육 장소가 되고 있다.

대포산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완만하게 낮아지면서 꼬리를 흐리며 낮은 구릉을 만드는데, 구릉의 가장 높은 곳은 62.5m, 길이는 약 700m, 폭은 80~100m 정도이다. 이곳에 복천동 고분군이 자리해 있으며, 고분군과 박물관은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야외의 고분군을 둘러보고 박물관으로 가서 고분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좋다.

야외의 고분군이 자리한 구릉은 그리 높지 않은데도, 구릉 정상에 서면 동래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매우 시원하다. 푸른 잔디 위에 회양목으로 낮게 구획된 네모들. 그 앞엔 각각 무덤 발굴기호와 무덤 형식, 시대 등을 간략히 적은 표지석이 자그맣게 놓여 있다.

복천동 고분군은 부산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분군이고, 경주 다음 가는 남부지방 최대의 고분군이며, 경주의 대형분 다음으로 많은 양의 유물이 나온 곳이다. 봉긋봉긋 솟은 봉분 무리가 펼치는 장관을 기대하고 구릉에 오르지만 고분군이 펼쳐놓는 풍경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도 그럴 법한 오랜 세월의 흐름을 깨닫고 나면, 앞으로의 보존이 더욱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고분군의 원형은 훼손되었지만, 고분군의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충분히 배려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구릉 가운데 유리돔이 설치된 곳은 제53호와 제54호 고분으로, 발굴 당시의 무덤 모습과 부장품을 고스란히 재현해놓고 있어, 다른 고분의 내부 모습이 어떠했을지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복천동 53호, 54호 고분군 야외전시관"


복천동 고분군 53호 고분 재현(복천동의 수많은 고분 중 내부를 볼 수 있게 야외 전시관으로 꾸며놓았는데 고분 안에 토기 등을 함께 놓아 마치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복천동 고분군 54호 재현"


[부산광역시 기념물 동래읍성지 (東萊邑城址)]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동래읍성은 마안산을 거쳐 구릉지와 동래 시가지의 평탄한 지역을 포함하여 쌓은 읍성으로,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현종 12년(1021)에 동래읍성을 수리하였으며, 그 뒤 우왕 13년(1387)에 왜구를 막기 위해 동래성을 크게 고쳐 쌓아 둘레가 3090자, 높이 13자라고 전한다.

왜적 방어의 제1관문인 이 성은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부산 진성과 함께 왜적의 1차 공격목표가 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조선 영조 7년(1731)에 다시 증축하여 당시 규모가 둘레 1729자였고, 4곳에 문을 만들었다.

동문을 지희루, 서문을 심성루, 남문을 무우루, 암문(적 또는 상대편이 알 수 없게 작게 꾸민 성문)을 은일루라 하였다. 남문에는 양 날개가 달린 듯 좌우로 뻗은 성벽인 익성이 있고, 나머지 3개의 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해, 성문밖으로 원형이나 방형으로 쌓은 옹성을 두어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고 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평지의 성벽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마안산을 중심으로 성곽의 모습만 겨우 남아있다. 현재 북문과 옹성, 동장대, 서장대 등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북천동 고분군과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


[영보단비]

1909년 중앙정부에서 호적대장을 거두어들이려 하자 주민들은 조상들의 성명이 적힌 호적대장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을 우려하여 마안산 기슭에 동래지역 13개면의 호적대장을 모아 불태우고 이 위에 단을 쌓아서 永慕壇이라 하였다. 이후 매년 음력 4월 23일 이 단에 모여 동래기영회 주관으로 제사를 지내며 잔치를 벌였으며 1915년 일제침탈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다짐하며 永報壇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칠두령 조형물"


"문화의 향기, 시간의 숨결을 느끼다"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


"복천동 38호분"


"복천동 21호.22호분"


"특이한 모양 토기"


"복천동 86호 오리모양토기"


"철의 왕국 가야"


[보물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 (釜山 福泉洞 二十二號墳 出土 靑銅七頭鈴) Bronze Seven-Headed Bell excavated from Tomb No. 22, Bokcheon-dong]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은 1980~1982년 부산 복천동 22호분 발굴 시 출토된 청동방울이다. 고조선시대 의례에 사용된 청동제 방울은 팔두령(八頭領), 쌍두령(雙頭領) 등 여러 점이 알려져 있으나 삼국시대 유물로는 지금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다. 따라서 ‘복천동 22호분 출토 칠두령’은 가야시대까지 관련 신앙과 제례가 지속되었음을 증명해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4~5세기 가야의 최고 수장급이 사용한 유물로서, 청동을 녹여 속이 빈 상태로 본체와 방울을 주조하였고 둥근 본체의 자루 부분에 나무로 손잡이를 끼웠으며, 표면을 매끈하게 처리하여 공예기술사적으로도 우수한 성취를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부산 복천동 22분 출토 청동칠두령’은 동아시아에서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가야시대 의례와 청동 공예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서 의미가 크다.

[영문 설명]

Bronze Seven-Headed Bell unearthed from Tomb No. 22, Bokcheon-dong Tumuli, Busan was unearthed in the middle of excavation work carried out in 1980 to 1982. This type of relics used for a ritual in the Gojoseon Period includes eight-headed/two-headed ones. And this one has been the first one unearthed among those dating back to the Three-Kingdoms Period. The one in the subject testifies that such a ritual continued until the Gaya Period and thus has a unique value. As one that was used by a supreme leader of Gaya during the 4th/5th Century, its body and bells were made of bronze with its inside empty. A wood handle was fitted into the body. The smoothly processed surface of the object displays an advance in the handcraft skills. The one in the subject displays a unique shape, the like of which cannot be found in this part of the world, and is thought to be a valuable item showing part of a ritual carried out during the Gaya Period and the bronze handcraft skills of the period.

출처:문화재청


"새모양 장식 갑옷"


[보물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 (釜山 福泉洞 三十八號墳 出土 鐵製甲冑 一括) Metal armor unearthed from Tomb No. 38, Bokcheon-dong, Busan]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은 1994~1995년 부산 복천동 38호분 제5차 발굴조사 시 출토된 4세기 철제 갑옷이다. 종장판주[縱長板冑; 투구], 경갑[頸甲; 목가리개], 종장판갑[縱長板甲; 갑옷]으로 구성되어 지금까지 유일하게 일괄품으로 출토된 사례이다. 출토지가 명확하고 제작시기 역시 뚜렷하여 삼국시대 갑옷의 편년에도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철제갑옷은 재료의 특성상 부식으로 인해 원형을 파악하기 어려운 반면 동 유물은 보존상태가 좋아 가야 철제 갑옷의 구성형식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철판을 두드려 가늘고 길게 만들었고 부재에 구멍을 뚫어 가죽으로 연결해 머리나 신체의 굴곡에 맞춰 제작하였다. 군데군데 보수해 사용한 흔적이 있어 가야 군사의 생생한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은 가야의 철기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서 출토지가 명확하고 가야 갑옷의 제작방식을 종합적으로 알려주는 유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영문 설명]

A set of metal armor unearthed from Tomb No. 38, Bokcheon-dong Tumuli, Busan was unearthed during the fifth excavation survey of the tomb carried out in 1994 and 1995. It dates from the 4th Century. Composed of helmet, neck protector, and armor, this has been the first case of a set of armor unearthed together. As it is clear where it was unearthed and when it dates from, it can serve as a reference point in dating such an object of the Three-Kingdoms Period. The metal armor has decayed seriously, but the other parts have been preserved well and thus provide valuable information. The parts were made long and thin by beating a metal plate. The parts were linked to each other, using a leather string inserted into holes made in them. The traces of repair found here and there also provide information on what the lives of troops were like. The one in the subject is a valuable item that provides information on the Iron Age culture of Gaya and how armor was made at that time.

츨처:문화재청


[보물 부산 복천동 출토 금동관 (釜山 福泉洞 出土 金銅冠) Gilt-bronze Crown Excavated from Bokcheon-dong, Busan]

부산 동래 복천동 10·11호분의 주석곽(1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현재 신라권에서 출토된 관 가운데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꼴에 해당한다. 금동관은 주실인 11호분의 피장자 우측에서 출토된 금동관으로, 5~6세기 신라의 출자형 금관과는 달리 대륜에 나뭇가지 모양의 수목형 입식이 연결된 古拙한 관이다. 특히 출자형 금관의 초기단계로 인정되고 있는 경주 교동 출토 금관과 가장 유사하지만 입식이 모아져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점, 입식 끝이 하향하고 있는 점, 영락이 없는 대륜에 파상문이 시문된 점, 革帶를 조여 관을 쓰는 장치가 있는 점에서 지역적 특수성이 있다. 이러한 형태는 5~6세기 신라관의 계보 및 가야의 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고고학적 가치가 크다. 제작기법은 판재를 잘라 정으로 단순한 문양을 시문하고, 영락을 단 매우 단순한 수법이지만, 삼국시대 古墳 금속공예 기법을 잘 대변해 주고 있어 공예사적 가치도 있다.

[영문 설명]

Discovered inside the main burial vault of Bokcheon-dong Tomb No. 11 in Dongnae, Busan, this gilt-bronze crown is made of cut bronze plates and decorated with simple designs and pendent ornaments, and is characterized by a unique form rarely seen in similar artifacts unearthed from other Silla (57 BCE-935) tombs. Due to the originality of its form, the crown is regarded as a valuable source of information on the crowns of Silla and Gaya (42-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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