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석굴암, 양산 천성산 미타암

2022. 6. 4. 06:58바롱이의 쪽지/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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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천성산 미타암]

원효대사가 창건한 88암자 중에 하나인 미타암은 심오한 아미타불입상과 원산폭포가 자랑거리다. 천성산 화엄벌을 시발점으로 동쪽을 내려오면 제법 용자(勇姿)를 갖춘 절이 있으니 여기가 바로 천하의 신비를 간직하고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면서 중생의 번뇌를 씻어주는 아미타불이 자리 잡고 있는 미타암이다. 평산동 쪽을 길을 잡아 덕계에서 큰길을 따라 들어가 평산리 계곡에 들어서면, 항상 물이 넘쳐흘러 가뭄에도 수량이 풍부할 뿐 아니라 주위의 경치 또한 매우 아름다운 평산저수지가 나타난다. 저수지 왼편의 낙엽송이 끝나면 계곡에 들어서게 되는데 10여분을 더 걸어 들어가 오른쪽 산등성이로 오르고 왼쪽의 무지개 폭포를 지나면 백동마을이 나타난다.

높이 30m 절벽에서 떨어지는 원산폭포(圓山瀑布, 일명 무지개폭포)의 서늘한 냉기로 구슬땀을 닦고 천성산을 향해 오르면 바로 미타암이다. 미타암은 신라 선덕왕 15년에 원효대사가 초건, 경명왕 4년 지공대사가 중건하고 고종25년 정진대사가 중수한 절이다. 미타암이 갖고 있는 보배는 제3의 석굴암이라 불려지는 아미타불입상이다. 아미타불처럼 희뿌옇고, 깨끗하게 보전되어 있다. 심산유곡의 암산절벽 석굴의 아래 낭떠러지 208m, 위의 봉우리 70m에 파묻혀 있는 아미타불입상의 석굴은 길이 30m, 높이 2~3m, 폭3~5m의 부정형으로 되어 있으며 인공을 가한 동굴로 추측되고 있다. 석굴의 입구는 동쪽을 바라보고 뚫려져, 아침 해가 떠오를 때면 아미타불은 밝은 햇살을 듬뿍 받게 되는데 이것이 경주 석굴암의 경우와 같다.

출처:양산시청


양산 웅진도서관 건너 동해고속LPG충전소에서 미타암 차량을 승차해 미타암 400m 주차장에 하차한다.


"미타암 700m 주차장에서 바라본 굴법당"


"쉿 불상과 계단"


"미타암 대웅보전"


"미타암 굴법당"


[보물 양산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 (梁山 彌陀庵 石造阿彌陀如來立像) Stone Standing Amitabha Buddha at Mitaam Hermitage, Yangsan]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미타암(彌陀岩)의 석굴사원 안에 모셔져 있다.

머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와 어깨까지 내려온 긴 귀, 원만하면서도 우아한 인상, 왼손을 몸에 붙여 곧바로 내리고 오른손을 가슴에 댄 모습, 그리고 둥근 어깨와 평판적인 가슴, 대좌 위에 곧바로 선 자세 등에서 719년에 만들어진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의 양식을 이어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주름을 형성하며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은 U자형의 옷주름을 이루면서 흘러내려 발목에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끝이 뾰족한 배(舟) 모양으로 안에 2줄의 굵은 선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였다. 그 사이에는 좌우대칭으로 꽃무늬를 배치하였으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대좌는 얇게 파낸 눈모양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는 사각형의 대석(臺石)위에 꽃무늬가 새겨진 이중의 연화좌(蓮華座)를 올려 놓고 있다. 

광배와 대좌, 옷주름의 양식과 수법이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서방 극락세계로 날아간 다섯 비구(比丘)가 수도하던 석굴에 모셔진 것이다. 또한 미타암이 자연동굴이지만 인공을 가한 흔적이 뚜렷하여 8세기 통일신라 불상양식의 한 계보를 살펴 볼 수 있다. 

신라 아미타사상의 전개과정은 물론 당시 성행하던 석굴사원 조영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문 설명]

This stone Amitabha Buddha is enshrined in a grotto of Mitaam Hermitage, which is said to have been established by Buddhist Monk Wonhyo of Silla.

All the characteristics -- such as the large usnisa on the head, long ears drooping to the shoulders, voluminous and polished look, left hand attached on the body, right hand on the chest, round shoulders, flat chest, and upright posture on the pedestals – follow the style of the Stone Standing Amitabha Buddha of Gamsansa Temple in Gyeongju (National Treasure No. 82) created in 719.

The sacerdotal robe draping the entire body while making soft U-shaped pleats hangs down and gets symmetrical at the ankle. The mandorla, which expresses the brilliance of the body, has the shape of a sharp-pointed boat. The two thick lines inside it express the head and body mandorlas. The flower patterns are symmetrically arranged between them, and the flame pattern surrounds the edge. The pedestal has a low-cut eye image carved on a rectangular base, on which double flower-patterned carved lotus seats are put.

The style and technique of mandorla, pedestal, and pleats are similar to those of the Stone Standing Amitabha Buddha of Gamsansa Temple, suggesting that this statue is a work created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This statue is enshrined in a grotto, where five monks trained themselves before going to the Western Paradise. Mitaam Hermitage is a natural cave, but there is clear artificial trace displaying the style of Buddha statues made in the 8th century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It is regarded as an important work for studying the development process of the Amitabha philosophy in Silla as well as the structures of the cave temple prevalent at that time.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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