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2. 05:12ㆍ바롱이의 쪽지/강원도
[평창 약수리 마을과 느릅나무]
약수리 마을에는 옥황상제가 보낸 아들 3형제 느릅나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그루는 오래 전에 죽어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31번 국도변에 자라는 한 그루와 약수리 마을로 가는 길 중앙에 느릅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남은 느릅나무 두 그루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보호수 평창 약수리 느티나무"
"보호수 수령 370년 평창 약수리 느릅나무"
"보호수 수령 370년 평창 약수리 느릅나무"
[약수리 약수 유래]
전설에 의하면, 약수리에는 샘물(약수)이 흘렀는데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이 이 샘물에 몸을 씻으면 나았고 나병환자 또한 이물을 먹으면 병이 나아 소문이 널리 퍼져 동네기 환자들로 들 끌어 어려운 시기에 약수로 인해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절박해진 마을 형편을 알고 힘센 장수가 큰 바위를 들어다가 약수를 덮어버려 그 이후 약수의 효력이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보호수 수령 370년 평창 약수리 느릅나무 원경"
[평창 약수리 느릅나무]
평창강은 오대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평창읍을 지나는 강이다. 평창강의 물길은 어린 단종의 한이 맺힌 '청령포’가 있는 영월 서강과 연결된다. 돌고 도는 평창강을 따라가거나 가로지르는 길이 있다. 포장이 잘 된 길이다. 31번 국도이다. 평창을 지나는 길이다. 그 길과 강 사이에 우뚝 선 나무가 있다. 약수리의 느릅나무이다. 높고 크고 풍채도 우람한 나무이다.
이 느릅나무는 오래 살아온 만큼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가장 널이 알려진 이야기는 옥황상제가 3형제를 보낸 약수리 마을의 구전이다. 이 느릅나무는 옥황상제가 보낸 아들 3형제 가운데 하나로 믿고 있다. 아들 모두가 약수리에서 느릅나무로 살았다. 한그루는 오래 전에 죽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다른 한 그루는 마을 안쪽의 들에 자라고 있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옥황상제는 아들 3형제 (느릅나무 3그루)를 약수리 마을에 보낼 때 아들 모두가 잘 살기를 바랐다. 3형제가 오래도록살면서 마을의 안녕과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느릅나무 3그루(3형제) 중 한 그루가 죽는 바람에 마을의 발전이 더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것이 아쉽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이야기는 단옷날에 이 나무에서 그네를 매고 놀이를 하면 마을이 평화롭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 느릅나무에 그네를 달고 놀았다. 단옷날에 쌍그네를 타며 놀았다. 요즈음은 나무 바로 옆으로 국도가 지나기에 위험하여 그네놀이를 하지 않고 있다. 이 느릅나무는 비교적 높은 곳에서 가지가 비스듬히 갈라지므로 갈라진 줄기에 맨 그네는 줄이 길어 높이 탈 수 있었다.
이 느릅나무가 있는 곳은 인가가 밀집한 곳이 아니다. 주변에 몇 채의 집이 있는 정도이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음식점이 있다. 이 나무의 도로 건너편에 있는 음식점이다. 간판이 '느티나무 가든'이다. 이 식당의 이름은 이 나무를 표식으로 하여 지어졌다. 잘못 이름하고 말았던 것이다. 식당 이름이 '느티나무 가든'일 정도로 마을 사람들은 이 느릅나무를 느티나무로 알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느티나무로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보호수로 지정할 만큼 크고 상징적인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나무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까지도.
출처:산림청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
"대한민국 보호수 100선 평창 약수리 느릅나무"
"대한민국 보호수 100선 평창 약수리 느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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