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무등산 증심사

2022. 10. 31. 06:22바롱이의 쪽지/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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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등산 증심사 일주문과 부도군"


"속이 빈 나무"


"증심사 안내도"


"사천왕문"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증심사 (證心寺)]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있는 절로, 기록에 따르면 철감선사 도윤(798∼868)이 신라 헌안왕 4년(860)에 지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려 1970년 대웅전을 시작으로 각종 부속 건물들을 차례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오백전, 지장전, 비로전을 비롯하여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다. 이 중 오백전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백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건물로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다. 안쪽에는 오백 나한상을 모시고 있는데 조선 세종 25년(1443)년 절을 고쳐 세울 때 지은 것이라 전하고 있다. 대웅전은 절의 중심 건물로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비로전에는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증심사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131호)을 비롯하여 삼층석탑(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과 석조보살입상(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대웅전"


"비로전, 삼층석탑, 오백전"


"오층석탑, 칠층석탑"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증심사오백전 (證心寺五百殿)]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있는 증심사는 9세기 중엽에 철감선사가 지었다. 고려 선종 10년(1094)에 혜조국사가 수리하였으며, 조선 세종 25년(1443)에 김방이 다시 지었다. 그 뒤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1년(1609)에 짓고,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백전은 대웅전의 뒤편에 세워진 법당으로, 현재 무등산에 남아 있는 절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오백나한과 10대 제자상을 모시고 있으며 이 고장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양식이다.

조선시대에 오백전이 지어진 절은 전남지방에서는 증심사가 유일한 것이어서 더욱 귀중하다.

출처:문화재청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증심사삼층석탑 (證心寺三層石塔)]

증심사의 오백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각 면에 가늘고 긴 안상(眼象)이 정교하게 조각하였으며, 위층 기단에는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 한 돌씩이다. 층마다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몸돌이 위로 오를수록 알맞게 줄어들어 안정감이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4단씩으로, 통일신라 후기∼ 고려 전기 즈음에 주로 나타나는 양식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가 경쾌하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위로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만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을 세운 시기는 증심사가 창건되었던 통일신라 후기로 추측되며, 1971년 탑을 해체, 복원하였다.

출처:문화재청

비로전, 삼층석탑, 오백전


"비로전"


[보물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光州 證心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Iron Seated Vairocana Buddha of Jeungsimsa Temple, Gwangju]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동계리에 있던 것을 1934년 증심사로 옮겨 온 것이다. 현재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잃어버렸지만 불상 자체는 완전한 편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유난히 높고 뚜렷하다. 눈·코·입 등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 있어서 온화하고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신체는 두꺼운 옷에 싸여 있어서 굴곡이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무릎 너비와 적절한 비례를 이루고 있어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가슴을 넓게 드러내고 있으며 양 팔에 걸쳐진 두꺼운 옷자락은 규칙적인 평행의 옷주름을 이루면서 흘러내리고 있다. 손모양은 왼손이 오른손 검지를 감싸 쥔 형태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형식과는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光州 證心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은 조각수법에서 볼 때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통일된 균형미를 보이는 점이 우수하게 평가되며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등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문 설명]

The Vairocana Buddha, which was believed to be the commander of spreading truth thoroughly around the world, was originally located in Donggye-ri, Seobang-myeon, Gwangju, and subsequently moved to Jeungsimsa Temple in 1934.

Although the mandorla (Buddhist halo of light) and the pedestal are missing, the statue itself is complete. The usnisa (protuberance on top of Buddha's head), which is shaped like a topknot on top of the wavy hair, is placed up high and shown clearly. The oval smiling face harmonized with the eyes, nose, mouth, and other features show a realistic expression of the human figure. The Beobui (sacerdotal robes) covering the shoulders as well as the wide chest is very thick that the curves of the body are hidden, but its well-proportioned sizes down to the knees give a sense of stability. The thick lower ends of the clothes covering two arms run down, making the regular folds parallel. The hand position is uniquely expressed such that the left hand holds the right index finger and is in contrast to the general style of Vairocana Buddha. Although this iron seated statue does not show outstanding carving methods, the balance of the statue is remarkable.

Along with the Iron Seated Vairocana Buddha of Dopiansa Temple in Cheorwon (National Treasure No. 63) and the Iron Seated Vairocana Buddha of Borimsa Temple in Jangheung (National Treasure No. 117), this iron seated Vairocana Buddha is assumed to have been built at the end of the Silla Dynasty in the 9th century.

출처:문화재청


"보물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산신각"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증심사석조보살입상 (證心寺石造菩薩立像)]

9세기 중엽에 철감선사가 창건한 증심사에 범자7층석탑과 나란히 서 있는 이 석상은 본래 담양군 남면 정곡리 서봉사터에 있던 것을 고(故) 현준호씨가 사재를 들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체 높이 2.05m의 이 석불입상은 머리에 높은 원통형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타원형으로 갸름하여 우아한 기품을 나타내고 있다. 목에 목걸이를 새겨 장식했으며, 옷은 왼쪽 어깨를 감싸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손은 왼손을 굽혀서 왼쪽 가슴에 올려놓았고, 오른손은 편 채로 내려뜨려 오른쪽 대퇴부 바깥쪽으로 붙이고 있다. 원형의 대좌(臺座)는 상·중·하대석 및 지대석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과 같이 높은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 이 석불입상은 세부표현이 간략해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증심사석조보살입상"


"소전대와 헌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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