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취가정

2022. 10. 28. 05:21바롱이의 쪽지/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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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취가정 (醉歌亭)]

충효마을 동쪽 북촌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환벽당과는 200m쯤 떨어져 있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중앙의 거실 한 칸을 제외한 좌․우양 칸은 모두 마루로 꾸며져 있다. 

취가정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병의 총수였던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서 그의 후손인 난실(蘭室) 김만식(金晩植)과 여러 문족(門族)들의 협력에 의해 1890년(고종 27)에 최초 창건하여 보존해 오다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졌으나 후손 김희준(金熙駿)이 여러 족인(族人)들과 함께 1955년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취가정’이라는 명칭으로 이 자리에 창건하게 된 데에는 충장공 김덕령과 같은 시대를 살다간 석주(石洲) 권필(權韠)의 드라마틱한 시에서 비롯되었다. 권필은 어느 날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에 김덕령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나 그의 원사(寃死)를 호소하는 한 편의 시를 읊었고, 권필이 이에 화답하는 한 수의 시를 지어 그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이 시가 ‘몽득일소책(夢得一小冊)’로 시작되는데, 이를 따서 ‘취가정’이라 명명하였다. 

이곳에는 설주(雪舟) 송운회(宋雲會) 쓴 제액(題額)이 걸려 있는 것을 비롯, 상량문, 중건기, 권필의 취시가와 화답시 등의 6편의 시가 걸려 있으며, 10여 개의 늙은 괴송(槐松)과 각종 화초가 주변에 가득하다. 정자 왼편에는 2001년 광산김씨 충효종중에서 세운 ‘충장공 김덕령 장군 취시가비’가 세워져 있다.

출처:문화재청문화재청)


[취가정]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김덕령 장군은 어느 날 석주 권필(1569~1612)의 꿈에 나타나 이 한 맺힌 노래「취시가」(醉時歌)를 불렀다. 꿈속에서 권필은 이렇게 답했다. “지난날 장군께서 쇠창을 잡으셨더니, 장한 뜻 중도에 꺾이니 천명(天命)을 어찌하리······.”

김덕령은 무등산 아래 석저촌(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에 무등산에서 무예를 닦았다. 지금도 무등산 곳곳에는 그와 관련된 전설이 많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고경명, 곽재우 등과 함께 크게 활약했는데 모함을 받고 억울하게 옥사했다. 취가정은 김덕령의 혼을 위로하고 그를 기리고자 후손인 김만식 등이 1890년에 지은 정자로, 정자의 이름은 권필의 꿈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큰 나무들이 서 있는 동그란 언덕에, 자미탄을 뒤로 하고 외따로 떨어져 자리잡았다. 부근의 정자들이 주로 자미탄을 내려다보는 데 비해, 취가정은 널리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고 있다. 앞쪽의 시원한 들판과 언덕 위로 부는 바람, 정자 앞의 ‘춤추는’ 소나무가 좋았는데, 아쉽게도 근래에 소나무 한쪽 팔이 부러져 버렸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충장공 김덕령 장군 취시가비"

한잔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듣는 사람 아무도 없네
나는 꽃이나 달에 취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공훈을 세우고 싶지도 않아
공훈을 세운다니 이것은 뜬구름
꽃과 달에 취하는 것 또한 뜬구름
한잔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이 노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네
내 마음 다만 바라기는 긴 칼로 밝은 임금 받들고자


"취가정 앞 나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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