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담양 개선사지 석등

2022. 11. 12. 07:00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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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명문이 새겨진 유일한 석등"

[보물 담양 개선사지 석등 (潭陽 開仙寺址 石燈) Stone Lantern at Gaeseonsa Temple Site, Damyang]

오랫동안 파묻혀 있었는데, 최근에 바닥을 파고 흩어진 부분을 정리하여 다시 세웠다.

높이 3.5m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 모양이 새겨졌고, 사잇기둥은 장고모양이며,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모양을 새겼다. 불을 밝히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은 8각이며 창이 8면에 뚫렸다. 지붕돌은 아랫면에 낮고 널찍한 괴임이 있고, 8각의 끝부분에는 꽃모양을 둥글게 조각하였다.

석등의 창 사이 공간에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5년(891)에 만들었다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시대 석등 가운데 글씨를 새긴 유일한 예로, 비슷한 시대의 다른 작품의 연대와 특징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표준이 되는 작품이다.

[영문 설명]

Buried underground for a long time, this 3.5 meter-high stone lantern was recently dug up and subjected to restoration work before being re-erected. The lower part of the lantern's pedestal is decorated with the carving of lotus petals facing downward, with the upper part decorated with upturned lotus petals. The middle part has an hourglass shape. The part forming a light chamber is octagonal, and it has eight “windows” for light on each facet. Each of the angled corners is decorated with carved flower.

The roof stone has a lower surface with a broad prop. The inscription made between the windows states that it was built in 891 (the 5th year of the reign of Queen Jinseong). As the only Silla lantern with such inscription, it is considered a very important material in the study of Korean stone lanterns.

출처:문화재청


"광주호"


[보물 담양 개선사지 석등]

광주호 상류를 오른쪽에 두고 크게 감아 돌면 산줄기에 아늑히 감싸인 개선마을이 나온다. 행정명은 담양군 남면 학선리이다.

개선사터 석등은 마을에 닿기 전에 길 오른쪽 밭 가운데에 있다. 이 부근에 개선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별다른 흔적이나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이 석등의 아랫부분은 오랫동안 땅에 묻혀 있었는데, 1989년에서 1991년까지 복원하면서 지금의 상태로 정리되었다. 간주석 위로는 비교적 원형이 남아 있고 간주석 중간 부분과 하대석, 하대하석 들은 복원 당시 손질을 거쳤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물 담양 개선사지 석등]

석등의 간주석이 짧아 주저앉은 듯하지만 안정감 있는 모습이다. 화창 둘레에 석등 조성에 관한 명문이 있어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으며, 다른 석등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 표준이 된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물 담양 개선사지 석등"


"개선사터 석등의 상대석 세부"

화사석을 받치는 상대석 앙련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 귀꽃]

지붕돌은 전각마다 귀꽃을 세우고 귀꽃과 귀꽃 사이에는 얕은 전각을 마련하여 살짝살짝 들어올렸으므로 16각형을 이루고 있다. 여덟 개의 귀꽃 가운데 지금은 한 개만 남아 있다.

츨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화창 둘레 명문]

화창 둘레에는 모두 136자의 해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신라 경문왕과 문의왕후, 그리고 공주의 발원으로 승 영판(靈判)이 석등 2기를 조성하여 함통(咸通) 9년(868)에 처음 불을 밝히고 용기(龍紀) 3년(891)에 승 입운(入雲)의 뜻으로 명문을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이 석등은 신라 시대 석등 가운데 유일하게 명문이 있어 제작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석등으로, 비슷한 다른 석등의 연대를 추정하고 비교하는 데 표준이 된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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