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객사리 석당간

2022. 11. 17. 05:13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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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 (潭陽 南山里 五層石塔) Five-story Stone Pagoda in Namsan-ri, Damyang]

담양읍에서 순창 가는 길을 따라 1㎞쯤 가다 보면 넓은 평지가 전개되는데 절터의 흔적은 없고 가운데에 석탑만이 서있다. 

탑은 1층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 올린 모습이며,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기단은 다른 탑에 비하여 높이가 매우 낮아 특이하고, 기단 맨윗돌의 너비가 1 지붕돌의 너비보다 좁은 또한 특이한 양식이다. 탑신은 알맞게 체감되어 안정된 느낌이며, 2 이상부터는 몸돌을 받치는 두툼한 괴임을 새겨 고려시대 석탑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돌은 두껍고 처마는 경사졌으며 귀퉁이는 가볍게 들려있다. 또한 귀퉁이에는 풍경을 달았음직한 구멍이 있어 초창기의 장식적인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백제의 안에 위치하고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영문 설명]

This five-story stone pagoda stands on the site of a former temple of which no traces remain, and is now in a wide field located 1 km away from Damyang Town along the road to Sunchang.

The pagoda consists of a single-layer platform and a five-story main body missing its finial. The platform here has a low height compared to other pagodas, and its top stone is smaller in width than the roof stone of the first story. The main body gradually tapers in size, giving a sense of stability. From the second story, each core stone is carved with a thick supporting stone, which is a typical characteristic of the stone pagodas built during the Goryeo Dynasty. The roof stones are thick, and the eaves slope and curve swiftly upwards at the four edges. In addition, each edge has a hole to hang a wind chime,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a decorative style of the early Goryeo Dynasty.

It is noted that this pagoda was built in imitation of the construction style of the Five-story Stone Pagoda at Jeongnimsa Temple Site, Buyeo (National Treasure No. 9) and it is itself situated in the territory of the Baekje Dynasty.

출처:문화재청


"보물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


"보물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 


[보물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

당간 근처에 있는 오층석탑은 고려 시대 탑으로 높이는 7m이며 보물 제506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 주변은 논과 밭인데, 특별한 흔적은 없지만 절터일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 시대에 이 부근에 절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 그 절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나 유래, 전설은 전해지지 않는다.

흙으로 얕은 단을 쌓은 후 하나의 돌로 된 지대석을 깔고 그 위에 단층 기단을 놓았다. 기단은 매우 낮으며 폭도 1층 탑신의 지붕돌보다 약간 좁다. 기단과 1층 몸돌 사이에는 기단 높이에 비하면 두꺼운 듯한 갑석이 놓였다. 지붕돌과 몸돌은 모두 한 개씩의 돌로 되어 있고 1층 탑신의 몸돌이 특히 높으며, 5층까지 모두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다. 2층 이상의 몸돌 아래에는 판석이 하나씩 끼워져 있는데, 이는 고려 시대 탑에서 볼 수 있는 특색이다. 지붕돌은 두꺼운 편이고 처마는 경사가 졌으며, 처마 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모서리에 이르러 가볍게 들려 올라갔고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지붕돌 층급받침은 3단인데, 위와 아래 단은 각이 서 있지만 가운데 단은 둥그스름하게 각이 죽어 있어서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 양식을 연상하게 한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백제의 옛 땅이던 충청남도와 호남 지방에 있는 것들은 이처럼 백제풍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기단부가 낮고 좁으며 거기에 비해 1층 몸돌이 훌쩍 높기는 하지만, 2층 이상은 알맞게 체감되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정돈된 인상을 준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물 남산리 오층석탑]

백제계 탑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고려 시대의 탑으로 1층 몸돌은 훤출하고 2층 이상은 알맞게 체감되어 차분한 안정감을 준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물 담양 객사리 석당간 (潭陽 客舍里 石幢竿) Stone Flagpole in Gaeksa-ri, Damyang]

절에 행사가 있을 입구에 ()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당간(幢竿)이란 깃발을 달아두는 () 말한다. 담양읍 석당간은 담양읍에서 순창행 도로를 따라 1㎞쯤 가다보면 한가운데에 높게 있다. 

연꽃잎이 새겨진 위에 당간을 세우고 옆에 기둥을 세워 지탱하고 있다. 당간은 가늘고 8 돌기둥 3개를 연결하고 연결부위에 철띠를 둘렀다. 꼭대기에는 쇠로 만든 둥근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 있는데 풍경같은 장식물이 달려있고 위에는 철침이 솟아있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석비(石碑) 내용으로 미루어, 현재의 석당간은 조선 헌종 5(1839) 중건한 것임을 있다.

[영문 설명]

Danggan were flagpoles on which flags (dang) were hoisted at the entrance of a Buddhist temple to mark special occasions such as ceremonies or prayers. The flagpoles were supported by two stone buttresses called dangganjiju. This stone flagpole stands in the middle of a rice field, 1 km away by car from Damyang Town along the road to Sunchang.

It is set on a base stone engraved with lotus petal patterns and is sustained by stone supports on both sides. The flagpole itself is actually composed of three thin, long octagonal stone poles, which are connected with iron rings. The upper part of the pole is decorated with an iron crown-and-ball and windbell-like objects. At the top, it is ornamented with iron rods.

According to the inscription of the stone monument standing next to the flagpole, it was re-erected in 1839, the fifth year of the reign of King Heonjong of the Joseon Dynasty.

출처:문화재청


[보물 객사리 석당간]

순창에서 담양으로 들어서다 보면, 읍내 조금 못 미친 곳 담양읍 객사리 국도변에 높다란 당간 한 기가 서 있고, 길 건너편 읍내 쪽으로 조금 비낀 곳에 오층석탑이 있다.

우선 당간을 살펴보면, 장방형 단층 기단 위에 역시 장방형의 굄을 둔 후 그 위에 당간과 지주를 세웠다. 당간의 높이는 15m에 이르고 지주의 높이는 2.5m이다. 네모진 두 지주가 80㎝의 간격을 두고 남북으로 마주 서 있고 그 사이에 당간이 끼워져 있다.

당간의 아랫부분은 팔각 돌기둥 세 개를 끝부분을 절반씩 깎아 내고 맞붙여 연결한 후, 구멍을 뚫고 지름쇠를 건너지르고 쇠테를 둘러 고정시켰으며, 그 위에 쇠로 된 원형의 당간을 이어 붙여 올렸다. 꼭대기에는 둥근 보륜이 얹히고 그 테두리에 풍경과 같은 방울이 달렸는데 지금은 두 개가 남아 있다. 맨 위에는 삼지창 모양의 장식이 달렸다.

담양읍의 지형이 행주형(行舟型)이라서 배의 돛을 상징하는 당간을 세웠으며, 고려 명종 2년(1172)에 읍지를 담주로부터 현재의 담양읍으로 옮겨올 때 세웠다는 말이 전해진다. 한편 이 부근에는 고려 시대 절이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당간은 찻길 건너편에 비껴선 오층석탑과 함께 그 절이 있었을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당간 옆에 있는 비석의 앞면에는 이 당간의 유래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건립 관계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원래 있던 당간이 영조 25년(1749)에 큰 바람을 맞고 넘어진 것을 나무로 대신 세웠다가, 헌종 4년(1837)에 또 부서져서 이듬해인 1838년에 처음 모양대로 중건했다는 내용이다. 보물 제505호로 지정된 이 당간은 기단과 지주, 당간이 온전할 뿐 아니라 보륜 등의 장식까지도 잘 남아 있어서 조선 시대 당간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담양 객사리 석당간]

기단·지주·당간뿐만 아니라 보륜 등의 장식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어 조선 시대 당간의 원형을 알 수 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당간 옆에 있는 비석]

앞면에는 이 당간의 유래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건립 관계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원래 있던 당간이 영조 25년(1749)에 큰 바람을 맞고 넘어진 것을 나무로 대신 세웠다가, 헌종 4년(1837)에 또 부서져서 이듬해인 1838년에 처음 모양대로 중건했다는 내용이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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