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산문(獅子山門)의 대표적 선종사찰, 화순 쌍봉사

2022. 11. 22. 05:17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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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기념물 화순 쌍봉사 (和順 雙峯寺)]

쌍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조선 시대에는 대흥사의 말사였다. 절이 있는 곳은 화순군 이양면 증리, 절 뒤의 산은 계당산(桂棠山)이다. 조선 시대의 기록이나 지도에는 중조산(中條山)이라고 되어 있는데 언제부터 계당산이라 부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쌍봉사는 동리산문(桐裏山門)의 개산조(開山祖)인 적인 선사(寂忍禪師) 혜철(惠哲)이 839년 2월에 중국에서 귀국하여 최초로 하안거(夏安居)를 지낸 곳이 무주(武州) 관내 쌍봉사라는 견해가 있어 이에 따르면 839년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철감 선사 도윤(道允)[798~868]이 주석하면서 사세가 크게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철감 선사는 중국 소주(蘇州)[창건 비문에는 소주(韶州)라 기록됨] 쌍봉사에서 도를 깨치고 돌아와 이 절에 주석하면서 절의 이름을 쌍봉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쌍봉사의 창건자나 연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가 않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화순군청

화순 쌍봉사 일주문 쌍봉사자문, 천왕문

[화순 쌍봉사 대웅전]

천왕문 앞에 서면 기둥 사이 네모칸 안에 대웅전의 모습이 딱 들어온다. 정면 1칸 측면 1칸에 3층 목탑 모양을 한 독특한 집이다. 추녀마루나 건물의 맵시에 어딘지 강풀을 먹인 두루마기처럼 버성긴 느낌이 있다. 이 집은 1986년 말에 복원된 것이다.

불타기 전에는 3층의 지붕이 팔작지붕이었는데, 1986년에 복원하면서 사모지붕으로 바꾸었고 그 위에 석반(石盤)을 얹고 상륜부를 보완했다. 1962년에 해체·수리할 때 본디 사모지붕이었던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옛 대웅전 지붕이 팔작지붕이었던 것은, 원래 탑이던 것을 대웅전이라는 전각으로 고쳐 쓰게 되면서 거기에 맞게 개조한 것이었으리라 한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해제 전 보물 화순 쌍봉사 대웅전과 내부모습]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 목탑의 원형을 가늠하게 하는 귀중한 목조건축물로서 보물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1984년 4월 초에 불이 나서 모두 타 버렸다. 1962년에 옛 대웅전을 해체·수리할 당시 3층 중도리에서 숙종 16년(1690)에 두번째로 중건했고 경종 4년(1724)에 세번째로 중건했다는 내용이 기록된 상량문이 나왔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해제 전 보물 화순 쌍봉사 대웅전과 내부모습(사진 출처:문화재청)

"쌍봉사 범종각"


[쌍봉사 호성전]

T자형 맞배지붕 건물로 우리나라에 유일무이한 형태의 전각이다. 원래는 세조의 위패를 봉안한 건물로 짐작되나 현재는 쌍봉사 창건주 철감 도윤선사와 중국의 조주 종심선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 절 가운데 최초로 조주선사 진영을 모시고 있는 까닭은 두 선사의 깊은 인연 때문이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쌍봉사극락전 (雙峰寺極樂殿)]

쌍봉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8년(868)에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절터의 경치가 좋은 것을 보고 세웠다고 한다.

극락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린 우물천장이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창문은 2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출처:문화재청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화순쌍봉사극락전목조아미타여래좌상 (和順雙峰寺極樂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

쌍봉사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 앉은 모습의 아미타여래상이다. 원래는 양 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협시불과 함께 삼존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으나, 1989년 8월경 양 협시불을 도난당하여 이후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아미타여래좌상은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으며 등이 약간 굽은 모습이다. 머리는 소라모양의 나발이고, 짧은 목에는 삼도가 얕게 그려져 있다. 양어깨를 모두 감싼 옷의 주름은 뚜렷하면서도 두툼한 느낌을 준다. 오른손은 올리고 왼손은 내린 모습인데 양손은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오른다리를 왼다리 위에 걸쳐 앉아 있다. 

이 불상은 숙종 20년(1694)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목조삼존불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과 조각형식이 매우 흡사하다.

출처:문화재청


[대웅전 뒤 석축과 지장전]

지금 대웅전으로 쓰이는 건물자리에 탑이 있었을 옛날에는 이 위에 원래의 대웅전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돌을 규격대로 반듯하게 잘라서 쌓는 요즈음의 석축과 달리, 크기가 제각각인 돌덩이들을 귀퉁이를 쪼아 내어 조각보 만들 듯이 이었다. 돌덩이들은 크고 작고 길고 짧고, 또 불그레하기도 하고 희거나 거무스름하기도 하다. 햇살 좋은 날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소박한 조화로움이 절실히 느껴진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물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和順 雙峰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Wooden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and Ten Underworld Kings of Ssangbongsa Temple, Hwasun]

화순 쌍봉사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과 「綾州地獅子山雙峰寺諸殿記文輯錄」과 「雙峰寺事蹟記」등을 통해 이 상은 1667년경 雲惠를 비롯한 그의 일파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작품의 경향은 조선후기 17세기 중·후반 전라도 일대에서 크게 활약했던 조각승 운혜의 조각 경향을 잘 간직하고 있고,더불어 과거에 시문된 고색 찬연한 채색문양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곧 이 시왕상과 권속상들은 회화와 조각이 잘 어우러진 불상으로 조선후기 채색불상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각승 운혜는 17세기 전반을 활약했던 守衍-靈哲의 계보를 잇는 조각승으로 그의 조각 경향은 敬林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특히 입체적이고 건장하면서도 중량감 넘치는 선 굵은 조각 경향을 선호하였는데,쌍봉사 지장시왕상에서도 이러한 조각 경향이 잘 나타나고 있다.특히 이 지장보살상에서 발견된 조성기를 통해 이 상은 1667년경에 조성된 것이 확실하므로 아직 제작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해남 대흥사 지장시왕상, 강진 백련사 지장시왕상,해남 미황사 지장시왕상,순천 동화사 지장시왕상,순천 정혜사 지장시왕상 등 운혜파의 조각으로 추정되는 조각상들의 조성연대 추정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귀중한 자료로 판단되고, 더불어 이 중에서 冥界彫刻이라는 종교적 엄숙성과 17세기 불교 조각계가 추구한 대중적 평담성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화순 쌍봉사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17세기 중·후반경 활발한 조각활동을 펼친 조각승 운혜의 불상양식 연구와 운혜파 조각승의 조각활동과 경향을 시기별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영문 설명]

The Wooden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of Ssangbongsa Temple in Hwasun, and the associated statues of the Ten Underworld Kings were carved in 1667 by Unhye and a number of other monk sculptors belonging to his coterie, according to the documents found inside some of the statues and the chronicles of Ssangbongsa. These statues mirror well the style of Unhye, this eminent monk sculptor of late Joseon, who were active in the mid- to late 17th century, in the Jeolla-do region. Meanwhile, painted motifs on the sculptures are excellently preserved, retaining their vibrant colors. The statues of the Ten Underworld Kings and their retinue, ideally marrying the art of sculpture with painting, are of great significance for research into late-Joseon color-painted Buddhist sculptures.

In terms of his influences, Unhye was an artist in the lineage of Suyeon and Yeongcheo, two leading monk sculptors of the early 17th century, and his style, in turn, influenced that of Gyeongrim. Sculptures by Unhye were characterized by a robust body conveying a massive feel and a rich sense of volume, and thick and forceful lines. These characteristics are very visible in the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and the statues of the Ten Underworld Kings of Ssangbongsa. Meanwhile, as its date of creation is clearly known (1667), this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offers important clues about ages of other undated sculptures of Ksitigarbha Bodhisattva and the Ten Underworld Kings, such as the ones in Daeheungsa Temple in Haenam, Baengnyeonsa Temple in Gangjin, Mihwangsa Temple in Haenam, Donghwasa Temple in Suncheon, and Jeonghyesa Temple in Suncheon which appear to be the works of monk sculptors affiliated to Unhye. Finally, these statues of Ssangbongsa are arguably the best examples among all of the above works, striking a fine balance between the depth of religious feelings and the sober, plebeian aesthetic of 17th-century Buddhist sculpture.

The statues of the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and the Ten Underworld Kings of Ssangbongsa Temple are invaluable for understanding the style of Unhye, a major monk sculptor of the mid- to late 17th century, and his evolution as an artist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and for precisely establishing his chronology.

출처:문화재청


"공양간에서 예불 음식 나르는 여불자님"


"부도탑 가는 길 대나무와 고양이"


"철감선사탑 부도탑 가는 길"


"감나무 한그루"


"보물 철감선사탑비, 국보 철감선사탑"


[보물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碑) Stele for Master Cheolgam at Ssangbongsa Temple, Hwasun]

신라 하대 때 고승인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道允, 798-868)의 탑비(塔碑)이다. 현재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받침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머릿돌 앞면 가운데에는 “쌍봉산고철감선사비명(雙峯山故澈鑒禪師碑銘)”이란 두 줄의 전액(篆額)이 새겨져 있다. 

철감선사 도윤은 한주(漢州) 사람으로 825년(헌덕왕 17) 당(唐)나라에서 유학한 뒤 847년(문성왕 9) 범일국사(梵日國師)와 함께 귀국하였으며, 그 후에 왕위에 오른 경문왕을 불교에 귀의하게 한 명승이다. 868년(경문왕 8) 71세의 나이로 쌍봉사에서 입적하자 경문왕은 ‘철감(澈鑒)’이란 시호(諡號)와 ‘징소(澄昭)’라는 탑 이름을 내렸다. 

탑비의 조각은 장식적이면서도 힘찬 기세를 지녔다. 특히 받침돌을 디디고 힘찬 모습으로 앉은 거북받침의 자세라든지, 오른쪽 앞발 끝을 웅켜쥔 모습은 형식적 표현에서 벗어난 새로운 수법이다. 

머릿돌은 용과 함께 구름무늬를 두루 새겼으며, 윗면 세 곳에 불꽃에 싸인 화염보주(火焰寶珠)를 새겼는데 현재 한쪽은 없어졌다. 탑비의 건립연대는 선사가 입적한 868년에서 머지 않은 때로 추정된다.

[영문 설명]

This stele at Ssangbongsa Temple was erected for Master Cheolgam Doyun, an eminent monk of the Unified Silla Period. Master Cheolgam (798-868) travelled to Tang China in 825 (the 7th year of the reign of King Heondeok) to study Buddhism, and returned together with Beomil, a State Preceptor of Silla.

Also, it is widely known that he helped King Gyeongmun to devote himself to Buddhism. When he died aged 71 in 868 (the 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yeongmun) at Ssangbongsa Temple, the king granted him the posthumous title of “Cheolgam”.

The stele consists of only a pedestal and a capstone as the main stone is missing. Reposing on a square foundation, the turtle-shaped pedestal features a dragon’s head with a cintamani held between its lips, while the capstone is engraved with a cloud design. In general, this is a masterful work of art, with the dynamic turtle-shaped pedestal in particular attesting to the splendid sculpting technique.

출처:문화재청


"보물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머릿돌은 용조각을 생략한 채 구름무늬만으로 채우고 있다. - 문화재청(잘 못 표현/이수의 앞면에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다투는 세마리 용의 형상을 현란하게 새겼다)


오른쪽 앞발을 살짝 올리고 있는 철감선사탑비(앞 오른발의 세 개 발가락을 땅에서 들어올린 표현은 귀부의 전체가 살아 음직이는 듯 하다.)


쌍봉산철감선사탑비명(雙峯山澈鑒禪師塔碑銘)이라는 전액이 두 줄로 새겨졌다.

용 조각과 구름무늬 조각한 이수


"국보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국보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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