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방화수류정

2022. 12. 18. 05:12바롱이의 쪽지/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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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수원 방화수류정 (水原 訪花隨柳亭) Banghwasuryujeong Pavilion, Suwon]

조선 정조 18년(1794) 건립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조선 헌종 14년(1848)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영문 설명]

Banghwasuryujeong, the northeast watchtower of Hwaseong Fortress, was constructed in 1794 (the 1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Jeongjo during the Joseon Dynasty). Although a tactical building created primarily for defense purposes, Banghwasuryujeong incorporates some features of a garden pavilion and is built using a combination of materials, including stone, wood and bricks.

The name “Banghwasuryu” was inspired by a verse by the Song-dynasty poet Cheng Mingda, which means “Around the noon time, with white clouds in the sky and light breezes in the air, walking along a willow-lined brook in search of flowers.” The calligraphy inside the frame is by Jo Yun-hyeong (1725-1799).

The building, with an L-shaped plan, has two sections, on the north and east sides, that jut out like a bay window, to afford a more sweeping view of the surroundings. The watchtower was renovated in 1848 (the 14th year of King Heonjong’s reign) and was repaired several times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Banghwasuryujeong greatly showcases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Joseon pavilion-watchtowers, always in harmony with the surrounding natural environment, while satisfying the functional demand as a military facility for surveillance and command. Its original plan and the peculiar design of its roof add further interest to this gem of 18th-century Joseon architecture.

출처:문화재청


"동북포루, 용연, 방화수류정"


[북암문(北暗門)]

북암문은 화성 북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북암문은 지형에 맞춰 좌우 성벽까지 벽돌로 둥글게 만들었다. 문 위에는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기 위해 여장을 세웠는데 반원형은 원여장, 장방형은 비예라고 부른다. 축성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동북각루(방화수류정), 東北角樓(訪花隨柳亭)]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이 있는 화산(花山)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 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 온돌방과 창문이 사라졌지만 원형의 건축물이 잘 남아 있다.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본 전경"


[동북포루(각건대, 東北鋪樓(角巾臺)]

동북포루는 방화수류정과 동장대 사이 치성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5곳의 포루가 있는데, 동북포루는 지붕의 모습이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쓰던 각건이란 모자와 비슷해 보여서 '각건대' 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동북포루는 다른 포루에 없는 시설을 갖췄다. 여장과 건물사이를 벽돌로 채워서 벽이라는 단을 만들고, 누각의 계단도 벽돌로 만들었다. 지붕 양 끝에 올린 용머리 모양의 장식 기와 역시 동북포루에서만 볼 수 있다. 동북포루의 특징을 살려 2019년에 다시 복원했다.


[북동포루(北東砲樓)]

북동포루는 장안문의 동쪽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님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포루는 벽돌로 만든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은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상층은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누각을 만들었다. 정약용은 중국의 제도를 두루 살펴 화성에 발전된 형태의 포루를 설계했는데, 그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북동적대(北東敵臺)]

북동적대는 장안문 동쪽에서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방어 시설이다. 화성에는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 적대를 설치했는데 현재 장안문에만 남아 있다. 안쪽은 성벽과 같은 높이로 대를 쌓아 군사들이 지키고, 바깥쪽에는 현안이라고 하는 세로 방향의 긴 홈을 냈다. 현안은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의 동향을 살피고 동시에 공격도 가능하도록 만든 시설이다 적대는 우리나라 성곽 중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다.


[북동치(北東雉)]

북동치는 장안문 동쪽 북동적대에 붙여서 세운 치성이다. 치성은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 쌓은 시설로,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북적대 위치에서 성곽이 급하게 꺾이기 때문에 북쪽을 방어하기 위해 적대에 치를 덧붙였다. 북동치는 장안문을 지키는 중요한 위치이므로 가장 크게 치성을 만들고,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총안과 타구1)를 설치했다.

1) 타구 : 성벽 위의 낮은 담장인 여장과 여자사이의 열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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