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부 읍성 신연자루&남문터광장

2023. 4. 2. 06:32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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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부 읍성 신연자루]

아름다운 옥천변에 웅장하게 솟은 연자루는 순천부 읍성의 남문 위 누각으로서 동천변 환선정과 함께 호남의 중심지 순천을 대표하는 건물이었다.

중국의 강남처럼 따스한 남녘 고을 순천에 제비[연자] 누각을 세우니, 순천부를 찾아오는 이들이 이곳에서 저마다 글솜씨를 뽐냈다. 일제강점기에는 박항래 의사가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지역의 청년들이 항일 의지를 다졌던 곳도 이곳이었다.

연자루에서 있었던 사랑 이야기로 미루어 고려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왜란으로 불타기도 하고, 수해로 허물어지면 이곳의 지방관들이 힘써 고쳐 세웠던 연자루를 일제는 1925년 시가지 정비를 한다면서 헐어버렸다. 

연자루가 갖고 있는 의미를 되살리고자 1978년 재일교포 김계선이 큰 돈을 기부하여 시민들이 많이 찾는 죽도봉에 옛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하였다. 여기 신연자루는 2020년 <순천부 읍성 남문터 광장>을 만들면서 연자루의 미적, 기능적 측면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옛 자리 근처에 철골 구조물 (가로 34m, 세로6m, 높이 8m)로 세운 것이다.

옥천과 신연자루


"죽도봉 연자루"


[순국의사 박항래상]

박항래 (朴恒) 의사(1861~1919)는 순천시 상사면 용암출신으로 일제 치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던 1919년(기미년) 4월 7일 순천 장날을 기하여 옥천을 가로지른 남문다리가의 연자루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쉴새 없이 외치다가 일본헌병에게 잔인하게 끌려가 1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광주 감옥에서 복역중 온갖 고문 등으로 7개월만에 향년 58세로 옥중에서 순국하셨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분의 구국정신을 기리고 희생이 우리의 귀감이 되도록 영원히 간직하여야 할 것이다

순국의사 박항래상과 신연자루


[順天府邑城 南門터]

순천부읍성은 1430년(세종 12)최윤덕(都巡問使)이 둘레 약 1,580m, 높이 약 7m의 석성(石城)으로 쌓았으며, 성의 부대시설로서 적대(敵臺) 6개소, 성문(城門) 4개소, 여장(女墻), 우물(井) 6개소, 못(池) 8개소, 해자(垓字) 등이 있었다. 옹성(甕城)은 2개소이며 1453년(단종 1)에 완성하였다.

성내에는 아사(衙舍), 객사(客舍), 내아(內衙), 공고(工庫), 형청(刑廳), 양사재(養士齋), 군기고(軍器庫), 진휼창(脈恤倉), 사령청(使令廳),
관노청(官奴廳), 옥사(獄舍)등 지방의 행정을 담당하였던 주요 시설들이 있었다.

남문인 연자루는 1930년에 없어졌으며, 1978년에 죽도봉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순천부읍성 남문터광장"


[순천부 읍성 스트링 아트]

Suncheonbu Eupseong String Art 3,600x1,600mm

1872년 순천부 읍성 고지도를 스트링 아트(실과 핀으로 만들어진 예술)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2021년 순천부 읍성 남문터 광장 개관을 기념해 순천시민들이 다채로운 색상의실을 함께 이어 완성하였다.

순천부읍성 남문터의 역사문화공간으로서 새로운 발걸음을 기대하는 시민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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