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서울 동관왕묘

2023. 10. 16. 08:10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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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장 규모가 큰 관왕묘"

[보물 서울 동관왕묘 (서울 東關王廟) Donggwanwangmyo Shrine, Seoul]

서울 흥인지문(보물) 밖에 있는 동관왕묘(東關王廟)는 중국 촉한의 유명한 장군인 관우에게 제사지내는 묘이다. 동관왕묘를 짓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가 왜군을 물리치게 된 까닭이 성스러운 관우 장군께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인데, 명나라의 왕이 직접 액자를 써서 보내와 공사가 이루어졌다.

동관왕묘는 선조 32년(1599)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601년에 완성되었다. 현재 건물 안에는 관우의 목조상과 그의 친족인 관평, 주창 등 4명의 상을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6칸이고 지붕은 T자형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지붕 무게를 받치는 장식은 새의 부리처럼 뻗어 나오는 익공계 양식이다.

평면상의 특징은 앞뒤로 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과 옆면과 뒷면의 벽을 벽돌로 쌓았다는 점이다. 또한 건물 안쪽에는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데, 이와 같은 특징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국의 다른 건축들과 비교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문 설명]

Located outside of Heunginjimun Gate, Donggwanwangmyo Shrine is a tomb for Chinese general Guan Yu of the ancient Chinese state Shu Han (3rd centur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Joseon's Army defeated the Japanese with the help of the army of the Ming Dynasty of China. The Wanli Emperor of Ming thought that they won the battle since they were guided by the spirit of General Guan Yu. He sent the plaque with his own calligraphy to Joseon in order to construct the shrine. 

The construction of Donggwanwangmyo Shrine started in 1599 (the 32nd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of the Joseon Dynasty) and ended two years later in 1601. Four statues including the wooden statue of Guan Yu and the statues of Guan Ping (Guan Yu’s eldest son) and Zhou Chang are currently enshrined inside the building. It has 5 rooms in front and 6 on the side. The roof is T-shaped. 

The building is shaped like a long rectangle from the front and the back. The side and the back wall were made of bricks. The luxurious decorations inside the building were influenced by the Chinese style. This shrine has some unusual features compared with other Korean buildings.

출처:문화재청


"동관왕묘"


"동관왕묘"

외삼문, 내삼문, 당간, 우물


"하마비"

금잡인, 대소인원개하마


"내삼문"

내삼문 벽화와 자물쇠


"동관왕묘"

좌측 재실, 정전, 우측 재실


[보물 서울 동관왕묘]

동관왕묘는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묘라는 뜻으로, 관왕묘는 중국의 장수관우(關羽:162~219)의 조각상을 두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다.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의 요청으로 1601년(선조 34)에 지었다. 

명나라에서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문묘(文廟)처럼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무묘(武廟)라 하여 크게 숭배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후기에 무묘를 많이 지었다. 동관왕묘의 중심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지붕은 높은 T자 모양과 -자 모양이 합쳐진 I자 모양이다. 실내 공간도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 벽의 바깥에는 다시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모두 지어졌는데 그 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모양, 조각상, 실내의 구성과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 주는 17세기 제사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정전 앞 수령 210년 향나무"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


"동관왕묘 석물과 향로석"

석제드므, 등롱석, 향로석


"동관왕묘 향로석"

성수만년, 백목전진상, 축조 명문(북관왕묘 건립 5년 후(1888년) 축조)


"정전 현판(현령소덕의열무안성제묘)"

중앙에 걸린 현판은 고종황제가 내린 것이고, 오른쪽 현판은 북관왕묘에서 옮겨왔다.


"복묘관우상"

영조 현령소덕무안왕묘/천고완인(千古完人) 천년을 이어어온 완벽한 사람, 만고표명( 만년을 이어 이름을 표명)


"복묘관우상"


"정전 내부 편액"


"동관왕묘 관평 조루"


"동관왕묘 주창 왕보"


"동관왕묘 정전"


"정전 뒤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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