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벽돌로 쌓은 교회, 서울 명동성당

2023. 10. 18. 05:10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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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벽돌로 쌓은 교회"

[사적 서울 명동성당 (서울 明洞聖堂) Myeongdong Cathedral, Seoul]

명동성당은 코스트(Coste) 신부가 설계하였고 파리선교회의 재정지원을 얻어 건립되었다. 본래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블랑주교가 김 가밀로라는 한국인 명의로 사들였다. 그후 1887년 한국과 프랑스사이에 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1898년 완성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로 쌓은 교회이며, 순수한 고딕식 구조로 지어졌다. 평면은 십자형이며 본당의 높이는 23m, 탑의 높이는 45m이다. 고딕양식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면서 그대로 본떴고, 공간의 고딕적 느낌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강하게 주어졌다.

건축에 사용한 벽돌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그 모양이 20여종에 달할 뿐 아니라 색깔도 붉은것과 회색 2종류가 있다. 이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조화있고 아름다운 건물을 완성하였다.

[영문 설명]

Myeongdong Cathedral was designed by Fr. Coste and constructed with the financial support of the Paris Mission Society. It had originally been the residence of martyr Kim Beom-u and was later bought by Bishop Blanc under a Korean name, Kim Camillo. The construction was completed in 1898 following the signing of a commercial treaty between Korea and France in 1887.

It is the first church in Korea to be built in bricks after the Gothic style. The floor plan shows a cross shape and the Mass Hall is 23m high and the tower 45m high. Although decorative elements have been excluded, it is a close assimilation of the Gothic style, though the Gothic quality can be felt more strongly on the inside rather than the outside of the building.

The bricks used to build the cathedral are wholly Korean products. Twenty kinds of bricks were used and their colors are either red or gray. Skilful use of these bricks has resulted in a well-proportioned and beautiful building.

출처:문화재청


명동성당

정호승 프란치스코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
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

홀연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
돌아왔다가 고요히 다시 떠날 수 있는 곳
죽은 꽃의 시체가 열매 맺는 곳
죽은 꽃의 향기기 기장 멀리 향기로운 곳

서울은 휴지와 같고
이 시대에 이미 계절은 없어
나 죽기 전에 먼저 죽었으나
하얀 눈길을 낙타 타고 오는 시나이
명동성당이 된 그 시나이를 따라
나 살기 전에 먼저 살았으나

어머니를 잃은 어머니가 찾이 오는 곳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가 찾아와 무릎 꿇는 곳
종을 잃은 종소리가 영원히
울려 피지는 곳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2022년 6월 5일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시비(詩碑)]

큰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해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하고, 작은 십자가는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며 새겨야 할 우리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명동성당을 상징화한 시비의 우측 큰 돌은 자모이신 성교회를 뜻하고, 좌측 작은 돌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신 김수환 추기경과 우리 자신을 뜻한다.

시비 양측면의 "성요셉상, 사도바울로상, 소화데레사상" 글자판은 명동성당의 역사와 함께 보존돼왔던 3개의 성상 명패를 상감으로 새겨넣은 것이다.

시비에 사용된 화강석은 명동성당 1단계 공사를 하면서 나온 석재를 보존해온 것으로써 금번 시비 제작에 뜻있게 활용하였다.

하단부의 검은 돌은 초창기 교회의 혼돈과 암흑기에서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교회(붉은색돌)와 그에 양분을 얻어 성장한 교회(초록색돌)가사랑과 희망의 선교로 계속 이어짐을 표현했다.


"성모 마리아상"


"성당 안내도"


[사적 서울 명동성당]

명동대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다. 이 자리는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가 있던 명례방 근처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에 귀국해 활동하던 돌우물골(현 중구 소공동) 인근이기도 하다.

1898년에 지어진 이 아름다운 성당은 본당 설립 이후 줄곧 한국 천주교회 신앙의 중심이 되어왔다. 고딕 구조에 가까운 본격적인 서양식 성당으로 프랑스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였다. 토지 매입은 1883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풍수지리설에 따른 정부와의 갈등, 청일전쟁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15년 만에 완공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 지원으로 1892년 착공했는데, 신자들이 무보수로 팔을 걷어붙이고 공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오랜 박해에서 획득한 신앙의 자유, 소외되고 가난한 민중의 안식처, 민주화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당 한편에 자리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은 성당보다 앞서 1890년 ‘주교관’으로 신축된 건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벽돌 건축물 중 하나이다. 주교관 및 경리부 건물로 사용되다가 2018년 6월 2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으로 새로이 문을 열고 한국 천주교회의 태동부터 오늘의 서울대교구가 있기까지의 변천사를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명동성당"

범우관 교육관/대성당/꼬스트홀


작품명 사형선고 받으심

작가 정동호

재료 Marbal of Carrara

규격 92x95x213cm


"대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이 동상"


[명동대성당 지하묘역 성해실(聖骸室)]

명동대성당 지하 묘역에는 기해박해(己亥迫害, 1839년)시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되심으로 순교하신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로써 초대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신 제2대 교구장 앵베르(范世亨, 1796-1839) 주교와 샤스탕(鄭牙各伯, 1803~1839) 신부, 모방(伯多祿, 1803~1839) 신부의 유해가 1901년 11월 2일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인 뮈텔(閔德孝) 주교에 의해 모셔졌다.

1991년 5월 29일 명동대성당 축성 93주년을 기념하여 묘역 단장을 마무리 하면서 유해포장이 부식된 것은 새로 포장하여 바느질한 후, 봉인을 하고 부식된 납관도 새로 교체한 다음, 모든 유해의 납관을 새로 제작한 석관에 모시고, 이를 각 현실에 안치하였고, 각 현실의 입구에는 성인 및 치명자의 성명과 연대를 기록한 석판으로 마무리 하였다.

현재 대성당 지하묘역에 모셔져 있는 성인(聖人) 및 치명자(致命者)의 유해는 기해박해(1839) 시 순교하시고 1984년 시성되신성 앵베르 주교, 성 샤스땅 신부, 성 모방 신부의 성해(聖骸) 일부와 역시 기해박해시 순교하시고 1984년 시성되신 성 김성우(金星禹, 1795-1841) 안토니오, 성 최경환(崔京煥, 1805~1839) 프란치스코 등 다섯 분 성인의 성해가 모셔져 있고, 병인박해시 순교하신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의 유해 및 기해박해시 순교하신 이 에메렌시아와 한 분의 무명 치명자 유해 등 모두 아홉 분의 성인 및 치명자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


"성모무염시태"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는 성모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원죄가 없었다는 성모무염시태(聖母無染始胎)를 교리로 선포했다.


"대성당"


"교구청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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