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실학의 효시, 토정 이지함 선생 묘

2024. 4. 3. 04:51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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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이지함선생묘 (李之函先生墓)]

 

◦ 이지함(李之菡)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호는 토정(土亭)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맏형 지번(之蕃)과 화담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공부하였음.

 

◦ 천문(天文)․지리(地理)․의약(醫藥) 등에 능통하였으며, 토정비결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벼슬하기 전 한때 마포강변의 흙집 위에 정자를 짓고 살면서 스스로 호를 토정(土亭)이라 하였고, 어염상고(魚鹽商賈)로 많은 곡식을 마련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였음.

 

◦ 평생 벼슬을 사양하다가 1573년(선조6)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되어 포천현감이 되어서는 백성의 가난해결을 위한 경제적 방안을 상소하였고, 임진강 범람을 예견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제하였으며,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지어 빈민을 구제하는데 힘쓰다가 1598년 재임 중 순직하였음.

 

◦ 그리하여 우리나라 실학(實學)의 효시(嚆示)로 알려지기도 하는데, 1686년(숙종12) 보령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주벽(主壁)으로 배향(配享)되었고, 1761년(영조37)에 문강공(文康公)의 시호(諡號)를 받았음.

 

◦ 고만(高巒)에 위치한 묘역은 선생과 그의 형제와 존․비속의 14기 묘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선생의 학문과 전해지는 여러 일화로 인하여 명당자리로 인식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곳임.

 

출처:문화재청


[토정 이지함 선생 표석과 넙적바위]

 

신비 속에 가리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두개의 돌 본래 연당자락 바닷가에 놓여 안산 솔섬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로 되었던 바위. 전설에 따르면 바다의 신선 토정선생이 타고 다니던 돌배로 이 돌의 존재로 인하여 항해의 영웅이라는 선생의 독자적인 인물상을 설화전통에 또 다른 영향의 요인으로 추가될 것 같다.

 

출처:충청문화연구 별쇄본에서


[토정 이지함 선생 묘]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토정비결』의 저자로 유명한 토정(土亭) 이지함(1517∼1578) 선생의 묘이다. 

선조 6년(1573) 주민의 추천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청하(지금의 포천) 현감이 되었는데, 이때 임진강의 범람을 미리 알아서 많은 생명을 구제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일생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어 ‘토정’이라는 호가 붙게 되었다. 토정이 의학·복술(卜術:점을 치는 술법)에 밝다는 소문이 점차 퍼져 신수를 보아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책을 지었는데 그것이『토정비결』이다. 

묘소는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에 있고, 묘의 앞에는 묘비·상석 등이 있다. 

 

출처:보령시


"토정 이지함 선생 묘와 서해 바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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