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 06:54ㆍ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임리정 (臨履亭)]
조선 인조 4년(1626) 사계 김장생(1548∼1631)이 지은 정자로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원래의 이름은 황산정이었으나 “깊은 못가에 서 있는 것과 같이, 얇은 얼음장을 밟는 것과 같이, 자기의 처신과 행동에 항상 신중을 기하라”라는 『시경』의 구절을 따서 임리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앞면 3칸의 기둥 사이를 같은 간격으로 나누어 왼쪽 2칸은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하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을 두었다. 뒤쪽으로는 사랑방을 2개 꾸며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게 하였다.
임리정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정자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출처:국가유산청
임리정
지정별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위치 :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8
1626년(인조 4년)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년)이 건립한 건물로 후학(後學)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원래는 '황산정(黃山亭)'이라 하였으나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에 의하면 시경(詩經)의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은 것같이 하라)"이라는 구절에서 임리정이라 하였다 한다.
즉, 항상 자기의 처신과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하라는 증자의 글에서 나온 말이며 이처럼 몸가짐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라는 선인들의 뜻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데 왼쪽 2칸은 대청이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이며 그 전면에는 반 칸을 안으로 들여 위는 누마루로, 아래는 불을 때는 아궁이로 만들었다.
앞마당에 있는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는 김상현(金尙鉉)이 이 글을 짓고, 김영목(金永穆)이 써서 1875년(고종 12년)에 세운 것이다.
[임리정]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가에는 임리정, 팔괘정, 죽림서원이 연이어 있다. 임리정(臨履亭)은 인조 4년(1626)에 사계 김장생이 건립하여 후학글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원래 황산정(黃山亭)이라고도 한다.
임리정이란 임리정기(臨履亭記)에 의하면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어름을 밟는 것같이 하라(如臨深淵, 如履薄氷)"의 구절에서 연유하고 있다고 한다.
금강에 면한 낮은 야상 위에 서향으로 세워졌으며, 정면 3칸 기둥사이를 동일한 간격으로 나누고, 그중 왼쪽의 2칸을 마루로 깔아 대청으로 하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이 온돌방 전면에는 반칸을 안으로 들여 상부는 누마루로, 하부는 함실 아궁이로 만들어져있다. 기둥은 둥근 기둥이고, 그 위에 기둥머리를 배치하였고 초익공식 공포를 짜올렸다. 창방위에는 기둥 사이마다 5개의 소로 받침을 두고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지붕의 가구방식은 앞뒤 평기둥 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기둥머리를 갖춘 낮은 동자주를 세워서 종량을 받쳤고, 그 위에는 제형대공이 배치된 겹처마 지붕이다.
출처:논산시
[임리정기비]
김상현(金尙鉉)이 이 글을 짓고, 김영목(金永穆)이 써서 1875년(고종 12년)에 세운 것이다.
"보호수 수령 320년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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