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7. 05:39ㆍ구석구석 먹거리/토렴
산양식당은 경남 통영시 중앙동 강구안 골목길에 있는 한식 식당이다. 70년이 넘게 영업한 오래된 가게이다. 창업주 시어머니와 시인이자 수필가인 여사장님 뒤를 이어 큰딸이 3대째 대를 잇고 있다. 오래된 현지 단골뿐 아니라 방송에도 알려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다.
지도 앱을 보며 어렵지 않게 산양식당 앞에 다다른다. 출입문 오른쪽 ‘시인과 곰탕'이라는 부제를 단 산양식당 설명을 읽는다.
"강구안 골목은 30, 40년 이하는 명함도 못 내미는 오래된 가게들이 자랑입니다. 개업한 지 3대째, 70년 가까이 되는 산양식당입니다. 곰탕과 통영비빔밥이 주제입니다. 뽀얀 사골국물과 잘 익은 깍두기가 어우러진 곰탕의 제 맛을 오랜 세월동안 증명해왔습니다.”
설명대로 소머리곰탕과 통영비빔밥이 대표 음식이다. 수육, 가자미조림, 멍게비빔밥, 전복곰탕도 맛볼 수 있다. 영업시간은 매일 11:00~14:30, 16:30~20:30이다. 명절은 휴무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식당을 휘둘러본다. 1, 2층으로 된 식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1층 뻥 뚫린 중앙 위로 2층 홀이 주위를 돌며 있다. 2층은 계단을 통해 오른다.
식당 한쪽 벽에 千客萬來(천객만래, 천 명의 손님이 만 번씩 온다는 뜻으로, 많은 손님이 번갈아 계속 찾아옴을 이르는 말이다.) 라 쓴 액자가 보인다. 글의 뜻처럼 손님 드나듦이 잦다.
자리에 앉는다. 메뉴는 식당에 오기 전 소머리곰탕으로 미리 정했지만, 차림표를 한 번 더 살펴본다. 잠시 머뭇거린다. 잠깐의 갈등은 바닷가 지역에서 육지 음식인 소머리곰탕을 70년 넘게 파는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 닿는다.
그때 나그네의 눈에 1층 주방 위 플래카드에 붙은 글이 보인다. “80년 전통의 산양식당에서는 국내산(한우) 소머리·양지머리를 푹 고아서 구수하고 담백한 국물만을 우려낸 곰국을 끓입니다.”
마침, 종업원이 자리로 온다. 곰탕에 달걀을 넣을지 물어본다. 나그네는 맛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 올리며 힘차게 외친다. “소머리곰탕 하나 주세요. 달걀도 넣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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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배추김치, 부추무침, 국물이 자작한 깍두기 등 밑반찬과 함께 소머리곰탕이 나온다. 밥은 토렴하지 않고 공기에 담아 내준다.
소머리곰탕은 한우 소머리뼈를 통째로 넣고 밑 국물을 푹 우려낸 후 양지머리와 쌀뜨물을 넣어서 한 번 더 끓여낸다고 한다. 쌀뜨물은 잡냄새를 없애주고 육수에 담백함과 구수함을 더한다.
검은 뚝배기에 한우 소머리 고기와 양지머리를 담고 푹 우려낸 뜨거운 진국을 몇 차례 붓고 따랐다 한다. 그 후 날달걀을 넣고 국물로 토렴한다. 흰 자만 익고 노른자는 익지 않는다. 결이 조금 다르지만, 전주 콩나물국밥집 밥그릇에 넣어 중탕한 수란과 익산 ‘일해옥’ 콩나물해장국에 넣어 주는 날달걀도 떠오른다. 썬 대파와 후추를 약간 뿌린다. 노른자 품은 통영식 소머리곰탕이 완성된다.
곰탕에 날달걀을 넣은 데는 사연이 전해진다.
"창업주인 시어머니가 식당을 운영하던 시절 바로 옆집에 곰탕집이 생기면서 후발 식당이 경쟁하려고 곰탕에 달걀을 넣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산양 식당에서도 달걀을 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50년 넘게 달걀을 넣어서 빼는 게 어렵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며 다른 소머리 곰탕집과의 차별성이 되었다. 현재는 손님 취향에 따라 뺄 수도 있다."
손님 입장에선 손을 들어 반길 일이지만 식당에선 웃픈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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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집어 들고 날달걀과 고기를 밥공기에 건져낸다. 반숙된 날달걀을 숟가락에 얹어 들이킨다. 입술과 혀, 목구멍을 타고 부드럽게 내장으로 향한다. '호로록'과 '꿀꺽' 이란 어찌씨는 한 단어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날달걀 특유의 비릿함은 없다. 쌀뜨물이 들어간 육수로 토렴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달걀을 풀어먹는 손님도 있고, 달걀을 먼저 먹는 손님도 있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소머리곰탕 국물은 쌀뜨물을 이용하여 부옇지만 탁하지 않다. 달걀노른자의 흔적이 남은 숟가락을 한번 핥고 국물만 한 숟가락 떠 입에 넣는다. 정성 들여 곤 국물 맛이 입안에 잔잔하게 감돈다. 국물만 몇 숟가락 더 먹는다. 담담하다.
국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 섞은 후 다시 맛본다. 소금의 다양한 맛이 국물의 조화를 맞춘다. 맛의 만족감을 찾는 양념 또한 개인의 몫이다. 잡내 없는 은은한 고기 내음이 코를 놀린다. 쌀뜨물을 사용한 국물의 구수한 감칠맛으로 입안이 기껍다.
젓가락으로 바꿔 잡고 건더기로 넣은 소머리 고기와 양지머리를 집어 맛본다. 구수한 국물이 배어들어 노긋하다. 어금니에 다양한 질감의 그림씨를 콕콕 박는다. 고기 양이 낙낙하다. 씹는 맛을 천천히 즐긴다.
고기 씹는 여운을 남기며 쌀밥을 크게 한 술 떠먹는다. 국물도 몇 술 뜬다. 단맛과 구수함이 뒤섞인다. 두 번 더 반복한다. 남은 밥은 곰탕에 만다. 숟가락으로 크게 퍼 헤무르도록 씹는다. 모자람 없이 밥맛도, 국 맛도 산다. 숟가락질이 바쁘다.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배추김치는 시금하고, 국물음식의 홀맺음 찬인 깍두기는 시원하고 아삭하다. 부추무침은 생부추의 식감과 향, 짭짤한 감칠맛이 담박한 곰탕 국물과 잘 어우러진다.
곰탕과 밑반찬들을 번갈아 먹다 보니 뚝배기 바닥이 드러난다. 맑은 국물의 나주 지역 곰탕과는 다르지만, 설렁탕과 소머리곰탕의 맛깔스러움만 뽑아낸 듯 빼어난 곰탕이다.
경상도 말인 ‘히한타’(이 말은 희한하다. 즉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아서 절묘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경상도 지방의 말이다.)에 걸맞은 소머리곰탕 한 그릇이다.
바닷가에서 육지 음식으로 오랜 세월을 증명한 소머리곰탕 한 그릇엔 질 좋은 식재료, 진심이 담긴 정성, 넉넉한 인심이 두루 담긴다.
속일 수 없는 진심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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