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3. 04:44ㆍ구석구석 먹거리/토렴
용문해장국은 서울 효창공원앞역 3번 출구로 나와 용문시장 가는 길 왼쪽에 있다. 1965년 개업하여 대를 이어가는 해장국 노포다. 창성옥, 한성옥(2023년 7월 사장님 건강상의 이유로 폐업) 등과 함께 용문동 3대 해장국집으로 손꼽는 식당이다.
예전에는 해장국 한 가지로 새벽 2시에 문을 열어 오후 2시까지 영업을 하였다. 코로나19 이후 현재는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영업한다.
오전반은 영업시간(05:00~14:00)이 변경되고 메뉴는 해장국 하나 달랑이다. 해장국은 취향에 따라 우거지와 고기의 양, 선지의 유무 등을 주문할 때 요청할 수 있다. 해장국에 곁들여 나오는 깍두기가 일품이다. 오전반은 둘째, 넷째 주 월요일 쉰다.
오후반은 17:00~23:00까지 영업하며 소뼈전골, 매운뼈찜, 모듬수육, 쟁반육면, 미나리한우육회, 호박면전 등을 판매한다. 오후반에는 해장국을 맛볼 수 없다. 오후반은 매주 일요일 휴무이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요리사들이 회식한 식당으로 알려지며 오후반에는 자리를 잡기 힘들다고 한다.
안산 고잔역에서 오전 5시 42분 오이도발 4호선을 타고 서울로 향한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삼각지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효창공원앞역에 내린다.
3번 출구로 나온다. 인적 드문 경의선 숲 길엔 비둘기들이 서성거린다. 오전 7시 16분이다. 1시간 30분 넘게 지하철을 탄 이유는 아침으로 해장국을 먹기 위해서다.
용문동에는 3대 해장국집이 있다. 효창공원앞역에서 한성옥, 용문해장국, 창성옥 순으로 가깝다. 세 식당에 한 번 이상 들려 해장국을 맛봤다. 1번 출구 가까이 있던 한성옥은 2023년 7월 사장님 건강상의 이유로 폐업하였다.
세 식당 해장국은 소뼈, 선지, 배추(우거지), 된장 등 사용하는 식재료가 비슷하다. 식당마다 국물의 농도나 간, 선지의 맛 차이 등 취향에 따라 단골들이 나뉘어 있다.
용문시장 방향으로 217m 정도 걸어간다. 하얀 간판에 좌우 끝으로 용머리와 해장국 그림이 그려져 있고 ‘용문해장국’ 상호가 큰 글자로 쓰여 있다. 빨간 해장국 글자가 도드라진다.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출입문 입구 오른쪽으로 계산대가 있다. 계산대 뒤 벽에는 원산지 표시판과 옛 용문해장국 사진, 달력이 붙어 있다. 휴무일 안내판(매달 둘째, 넷째 주 월요일 휴무), 간판과 같은 빨간색으로 해장국(10,000원) 글자가 쓰여 있다. 오전반 메뉴는 해장국 하나 달랑임을 알려준다.
자리에 앉아 해장국을 주문한다. 계산대 앞쪽으로 주방이 보인다. 해장국이 나오는 배식구를 빼곤 가린 창이 쳐져 있다. 창에는 해장국에 소뼈, 선지, 우거지가 들어간다는 알림판, 소주 및 기타 주류는 1인 1병 판매하지 않는다는 알림판,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알림판이 붙어있다. 오전반의 규칙이다.
주방 창에 붙은 알림판을 다 읽을 즘 해장국이 식탁에 놓인다.
따뜻하고 뽀얀 쌀밥과 뚝배기에 선지, 소 목뼈, 배추 우거지, 콩나물 등을 넣은 해장국을 내준다. 찬은 풋고추와 쌈장, 깍두기뿐이다. 통에 담긴 깍두기 다섯 개를 국자로 퍼 앞 접시에 던다. 단출하게 차려졌지만 부족함이 없는 해장국 밥상이다.
해장국은 뚝배기에 소뼈, 선지 등을 담고 육수로 몇 차례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한다. 화구에 펄펄 끓이지 않는다. 전통적인 토렴은 아니지만 알맞은 온도를 맞추려는 배려의 조리법이다.
배추 우거지와 무, 콩나물 등 건더기와 국물을 붓고 썬 대파를 고명으로 조금 얹는다. 숟가락이 뚝배기에 담가져 나온다. 먹다 보면 딱히 젓가락이 필요 없음을 알게된다.
해장국은 소 사골, 목뼈를 고아 진국을 낸다. 우려낸 육수에 된장을 풀어 간도 맞추고 풍미도 더한다. 삶은 배추 우거지, 콩나물, 무를 넣고 푹 끓인다. 선지는 따로 쪄서 넣는다. 큼지막한 선지와 왕건이 소 등뼈를 담아 내준다.
숟가락을 들고 해장국을 훑어본다. 검은 뚝배기에 농밀한 갈색빛 국물이 눈에 띈다. 붉은빛 맑은 기름이 떠 있다. 큼지막한 검붉은 선지 덩어리가 뚝배기 반쪽 국물을 덮었다. 색 바랜 배추 우거지도 푸짐하다. 푸름과 하얌이 섞인 썬 대파가 색감을 더한다. 숟가락으로 해장국 한쪽을 헤집는다. 왕건이 소 목뼈가 드러난다. 소 목뼈를 밥뚜껑에 건져낸다.
국물만 한술 떠 맛을 본다. 따뜻한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다. 아주 맵지도 짜지도 않다. 간이 알맞다.
몇 술 더 국물만 떠먹는다. 사골 국물에 소 목뼈를 넣고 푹 고아 낸 진국의 깊은 맛. 배추 우거지, 콩나물, 무, 우거지 등의 식재료에서 뭉근하게 우러난 달금하고 시원한 맛. 된장의 구수함과 고소한 기름 맛이 뒤섞이며 혀를 감친다.
국물을 떠먹던 숟가락이 향한 건 현무암처럼 구멍 뚫린 검붉은 선지였다. 숟가락 날을 세워 자른다. 화강암의 단단함은 아니지만 숟가락을 잡은 손에 제법 저항이 전해지며 몸통을 허락한다.
한술 떠먹는다. 따로 쪄서 넣은 선지는 비릿하지 않고 신선하다. 어금니에 콕 박히며 몸 안에 품은 구수하고 진한 국물을 입안에 쏟아낸다. 퍽퍽하지 않은 선지는 씹을수록 녹진하고 짙은 풍미로 입안이 풍성해진다. 한국판 초콜릿 같다. 숟가락질이 반복되며 선지는 사라지고 초콜릿 맛만 은은하게 여운을 남긴다.
국물과 건더기를 크게 떠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데이지 않을 정도로 국물 온도가 ‘알맞음’을 입과 뇌에 전달한다. 진국에 녹아든 약간 말린 배추 우거지는 색은 바랬지만 흐물거리지 않는다. 졸깃하고 달금하다. 국물에 시원한 맛을 내준 콩나물은 아삭하게 무는 보드랍게 씹힌다.
밥뚜껑에 얹어둔 소 목뼈가 눈에 들어온다. 큼지막한 소뼈에 덕지덕지 살코기가 붙어있다.
두 손으로 뼈 끝을 잡는다. 토실토실하게 붙어 있는 고기를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금니에 차지게 씹힌다. 여리게 묻은 국물이 간을 맞춘다.
목뼈와 선지, 건더기들을 먹은 국물에 깍두기 국물을 붓고 하얀 쌀밥을 말아먹는다. 진국이 스며든 밥알이 후루룩 넘어간다.
숟가락에 밥과 깍두기를 올려 먹는다. 일주일간 충분히 익힌 깍두기는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식감과 시원하고 새곰한 맛이 풍미를 돋운다. 해장국 국물과 밥, 깍두기 궁합이 그만이다.
숟가락질이 바빠진다. 시나브로 건더기와 국물 한 모금도 남지 않은 뚝배기 바닥이 보인다. 밥뚜껑에는 살코기가 발라진 목뼈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맛깔남의 흔적은 비움으로 드러난다.
해장국은 적절한 농도에 소뼈 고기의 고소한 감칠맛, 된장의 구수한 맛, 배추 우거지의 단맛, 선지의 녹진한 맛등 4가지 주재료들이 서로간에 맛을 북돋운다. 한데 어우러지며 조화로운 균형을 맞춘다.
시간, 전통, 정성이 담긴 한 그릇에 육체적인 포만감과 정신적인 흐뭇함이 포개진다. 땀 한 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흐른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뽑아 나온다. 주황색 택시가 식당 앞에 주차해 있다. 주차가 편리해 기사식당 맛집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봇대와 나무 사이에 우산이 걸쳐져 있고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주차 관리하는 분이 앉는 자리라고 한다.
아늑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배 한대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10년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
달달한 커피 한 모금을 먹으며 머리로 그려본다. 하얀 담배연기 속으로 보이는 빨간 글자의 해장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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