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양탕에는 춘장이 나왔다?

2025. 2. 24. 06:38구석구석 먹거리/토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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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양탕은 1959년에 개업한오래된 가게였다. 보성새마을금고 본점 오른쪽 골목 안에 있었다. 노부부가 운영하셨다. 상호처럼 양탕(염소탕) 수육만 판매하는 전문점이었다.

 
2024년 2월 ‘보성양탕’을 지도 앱에서 검색한다. 검색되지 않는다. 식당 간판 상호에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건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여보세요” 하며 전화를 받는다. 연세가 느껴지는 남자분의 목소리다.
 
“보성양탕이죠. 오늘 몇 시부터 영업하시나요?”
“이제 장사 안 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보성양탕은  이상 영업하지 않는다. 2016 보성 여행  맛보고 기록하였던 글을 더듬어 쓴다.


양탕(羊湯)’ 염소탕이다전남 보성 토박이들이 꼬막만큼 즐겨 먹는 음식이다보성 ‘구미 당기는 9 하나이다
 
보성군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보성양탕은 여름철 보양식의 대명사이다냄새가  나는 암염소만을 사용하여 말린 토란대머윗대 등을 넣고 육개장처럼 얼큰하게 끓여낸 국물 맛이 일품이다.”라고 설명한다.
 
골목 안으로 접어들자 수수한 이층집이 보인다. 2층 옥상에 ‘보성양탕’이라 크게 쓴 글씨가 눈에 쏙 들어온다. 1층은 식당으로 2층은 생활공간처럼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식당 안 식탁과 의자, 방문이 빛바랜 갈색이다. 예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나무 의자에 앉아 메뉴판을 본다. 양탕과 수육만 판매한다. 양탕 ‘특”도 있지만 보통으로 주문한다.
 
희미해졌지만 꽃임을 알 수 있는 빛바랜 양은 쟁반에 상차림이 차려진다. 일반 공기보다 큰 밥그릇에 쌀밥이 담겨 있고 뚝배기 속 양탕에선 풀풀 김이 오른다. 눈으로도 곰삭음이 느껴지는 배추김치와 갓김치, 깍두기, 양파와 춘장을 밑반찬으로 내준다. 후추는 취향에 맞게 넣는다. 단출하지만 허투루 만든 게 없는 남도의 게미진 찬이다.
 
양탕은 누린내가 적은 흑염소 암컷을 쓴다. 맹물에 흑염소를 넣고 오랜 시간 푹 삶는다. 삶은 고기는 건져내 물기를 빼고 손으로 찢어 양탕과 수육용으로 따로 준비한다.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뼈는 육수에 다시 넣어서 곤다.
 
흑염소 진액이 다 우러난 육수에 토란대, 머윗대, 양파, 대파, 고춧가루, 된장 등을 넣어 은근하게 끓인다. 간은 천일염으로 한다. 
 
뚝배기에 손으로 찢어둔 고기를  움큼 담아 국물로  차례 부었다 따랐다 한다토렴질이다식은 살코기에 양념과 진국이 골고루 배이며 먹기 알맞은 국물의 온도를 맞춘다. 건더기와 국물을 낙낙하게 부은 후 숭덩 숭덩 썬 대파를 얹는다.  좋은 식재료에 시간과 정성을 오롯이 담아낸 보성양탕이 완성된다.
 
수십 년 넘게 양탕을 정성스레 담아낸 투가리 안과 밖이 차분하고 짙다. 은빛 쟁반 밑 꽃 그림을 보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휘휘 젓는다. 한술 크게 떠 맛본다.
 
선입견을 품었던 흑염소의 노린내는 나지 않는다. 구수하다. 몇 술 더 국물만 떠먹는다. 걸쭉하고 진하다. 육개장처럼 깔끔한 매운맛에 뒷맛이 개운하다. 
 
건더기와 국물을 크게 떠먹는다. 국물을 머금은 건더기들은 다른 질감과 맛으로 입안을 풍성하게 한다. 
 
흑염소 살코기는 어금니에 맞서지 않고 보드랍게 씹힌다. 살코기를 결대로 찢고 따뜻한 국물로 토렴한 사람의 손길 덕이다.
 
흑염소 껍질은 존득존득 가뿐하게 씹히고, 토란대와 머윗대는 졸깃졸깃 씹히며 어금니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썬 대파도 향과 아릿한 맛을 보탠다.
 
밥과 밑반찬도 곁들여 먹는다. 발효 숙성의 시간을 거친 배추김치와 갓김치, 깍두기는 시쿰하게 삭혀졌지만 질감은 무르지 않다. 
 
썬 생양파와 춘장은 중국집 찬으로는 익숙하지만 한식 찬으로는 낯설다. 담백한 밥은 찬과 먹다가 양탕에 만다. 숟가락으로 크게 퍼 꼭꼭 씹는다. 밥맛도, 양탕 맛도 모자람 없이 어우러진다.
 
찬으로 나온 춘장은 생양파도 찍어 먹지만 양탕에 섞어 먹기도 한다혹시 남아 있을 흑염소 노린내를 잡아 준다고 한다
 
보성양탕은  좋은 식재료를 골라 대를 잇는 요리법으로 시간과 정성을고스란히 담아냈다

주인장 노부부는 이젠 힘에 부쳐 식당 문을 닫았다

 
기록은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이음새다나그네는 오래된 기록으로 추억의 맛을 끄집어낸다보성양탕은 다시 내장 어디쯤 무의식의 맛으로 어디쯤 의식의 맛으로가슴 어디쯤 추억의 맛으로 쟁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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