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짜장을 곱씹으면 추억이 떠오른다

2025. 3. 2. 14:30구석구석 먹거리/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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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반점은 세종시 연기리 대로변에 있다. 노부부와 따님이 운영했던 중국집이었다. 2024년 11월 5년만에 다시 찾았다. 

 

음식을 만들던 주인 할아버지께서 보이지 않았다. 3년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허리가 굽으신 주인 할머님이 대신 주방을 맡았다. 따님이 일을 도왔다. 주인 할아버님이 손으로 뽑는 수타면은 아니지만 첨가제 사용 적은 면으로 만든 짬뽕과 짜장면, 옛 방식의 볶음밥을 맛볼 수 있다.

 

2024년 11월 천연기념물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 답사 후 정원반점을 찾는다. 5년만이다. 휴지를 담은 우유 통, 방석이 깔린 작고 오래된 나무 의자 등 가게 외관과 내부가 변함없다. 

 
 

 따님이 주문을 받는다. 간짜장을 주문한다. 

 

허리가 약간 굽으시고 키가 크신 주인 할머님이 주방으로 들어가신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익숙한 간짜장 만드는 소리를 귀로 듣고 뇌로 그려본다. 

 

한가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밀가루 반죽을 쳐대는 '철퍼덕' 소리다. 잠시 후 주인 할머님이 주방에서 간짜장을 들고나와 식탁에 놓는다. 

 

하얀 그릇에 담긴 면을 바라본다. 향긋하고 푸릇한 채 썬 오이를 얹어 내준다. 면이 뽀얗다. 한 가닥 씹는다. 탱글탱글 매끈하다. 쫀득한 식감과 차지고 졸깃한 식감이 섞이며 어금니를 놀린다.

 

간짜장 양념은 주문 즉시 만든다. 웍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 양배추 등 싱싱한 채소와 두툼한 돼지고기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춘장에 볶는다. 양파, 양배추 등이 푸짐하다. 채소즙이 나와 퍽퍽하지 않고 수분이 약간 있다. 달지 않고 짭짤하고 구수하다.


고춧가루를 조금 뿌린다. 흑과 백 사이에 빨강이 살포시 자리 잡는다. 오이의 푸름은 덤이다. 골고루 비벼 입에 밀어 넣고 씹는다.

 

후루룩 쩝쩝. 냠냠냠. 꾸밈없는 뽀얀 면 사이로 채소들과 뭉툭한 돼지고기가 리드미컬하게 씹힌다. 맛깔남의 표현으로 젓가락질은 날쌔고 쉼 없다. 

 

​시나브로 하얀 그릇엔 검은 양념의 흔적만 남는다. 노랑 단무지로 흑을 핥는다. 백이 드러나도록. 아사삭 씹는다. 마지막 구수함의 여운이 혀에 은은하게 감돈다.

 

구수함의 여운을 즐기며 할머님께 물었다. 

"할아버지가 안 보이시네요."

"돌아가신지 3년 됐어." 할머님이 손가락 3개를 펴신다.

 

주인 할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더이상 수타면은 먹을 수 없다. 이젠 주인 할머님이 숙성해둔 밀가루 반죽을 기계로 뽑지만,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아 주인 할아버지께서 만든 손면의 맛과 색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식당도 검은 간짜장 양념도 그대로다. 잊고 살았던 주인 할아버님의 간짜장 맛은 주인 할머님의 손으로 이어진다. 추억의 맛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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