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2020. 9. 9. 04:22뚜벅뚜벅 대한민국 세계유산/백제역사지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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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유적지구 [Baekje Historic Areas ] (2015)

대한민국 중서부 산지에 위치한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도시에 남아 있는 유적은 이웃한 지역과의 빈번한 교류를 통하여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하였던 고대 백제 왕국의 후기 시대를 대표한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어 660년에 멸망할 때까지 700년 동안 존속했던 고대 왕국으로, 한반도에서 형성된 초기 삼국 중 하나였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3개 지역에 분포된 8개 고고학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 웅진성(熊津城)과 연관된 공산성(公山城)과 송산리 고분군(宋山里 古墳群), 부여 사비성(泗沘城)과 관련된 관북리 유적(官北里遺蹟, 관북리 왕궁지) 및 부소산성(扶蘇山城), 정림사지(定林寺址), 능산리 고분군(陵山里古墳群), 부여 나성(扶餘羅城), 그리고 끝으로 사비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던 익산시 지역의 왕궁리 유적(王宮里 遺蹟), 미륵사지(彌勒寺址) 등으로, 이들 유적은 475년~660년 사이의 백제 왕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은 중국의 도시계획 원칙, 건축 기술, 예술, 종교를 수용하여 백제화(百濟化)한 증거를 보여주며, 이러한 발전을 통해 이룩한 세련된 백제의 문화를 일본 및 동아시아로 전파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출처: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의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사적 공주 공산성]

 

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동서로 약800m, 남북으로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암문·치성·고대·장대·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영은사·연지·임류각지, 그리고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문화재청

공주 공산성


"연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공산성"


"연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공산성"


"금강신관공원에서 바라본 공산성"


"정지산 유적에서 바라본 공산성"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금서루 야경"


"왕벚나무와 백제연못"


"백제 연못"


"백제시대 왕궁 건물터와 쌍수정"


"쌍수정사적비"


"진남루"


"명국삼장비"


"임류각"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과 공주대교"


"공산성에서 바라본 공주시"


"만하루와 연지"


"만하루와 연지"


"만하루에서 바라본 공주시"


"영은사"


"성안마을과 서문고개"


"공북루"


"공산정"


"공산정에서 바라본 공산성과 금강"


"공산정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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