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먹거리

2020. 12. 27. 06:53뚜벅뚜벅 대한민국 명승/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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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으뜸 정원"

[명승 제40호 담양 소쇄원]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양산보(1503-1557)는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의 정원인 소쇄원을 지었다.

정원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로 되어 있다. 4.060㎡의 면적에 기능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애양단구역, 오곡문구역, 제월당구역, 광풍각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 내에는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들로 된 숲이 있다.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 ‘애양단’, ‘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의 석판과 목판글씨가 담벽에 박혀있다. 소쇄원 안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소쇄원의 모습을 목판에 새긴 그림이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이다.

[영문 설명]

Soswaewon Garden epitomizes the literati gardens of the mid-Joseon Dynasty. Nature and artificial elements are carefully harmonized in this woodland garden, which embodies the upright mind and restrained aestheticism of ancient Korean scholars. Yang San-bo (1503-1557), a young scholar born in Damyang, built this garden after returning to his hometown and giving up his worldly ambitions when his teacher, Jo Gwang-jo, was sent to exile as part of a literati purge. The garden is a wooded estate spanning approximately 4,060 square meters in the form of a trapezoid, with a stream gorge running through the center. It is divided into several areas depending on the spatial features and functions: area around Aeyangdan Terrace, area around Ogongmun Gate, area around Jewoldang Hall, and area around Gwangpunggak Pavilion. The woods have various trees including bamboo, pine, zelkova, and maple trees. Main structures like pavilions, gates, and walls bear signs engraved on stone or wooden plates, such as Aeyangdan, Ogongmun, or Soswae Cheosa Yanggong Jiryeo (Free Man with Pure Mind; The Hut of Lord Yang). A woodblock print of the garden, dated 1755, the 31st year of the reign of King Yeongjo, shows the garden in its original form.

광풍각


"소쇄원 매표소 옆 냇가 오리"


"소쇄원 가는길 대숲"


"제주양씨지소쇄원 입구 표석"


"광풍각 가는 위교와 대나무 숲"


광풍각(제월당이 주인의 사생활적인 공간이라면 광풍각은 사랑방 격으로, 소쇄원의 풍광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중심 공간이다. 제월당과 광풍각 사이에는 공간을 나누어 주는 얕은 담과 작은 문이 있다. 광풍각에서는 주로 물의 흐름과 폭포, 바위에 부딪는 물방울, 맞은편에 있던 물레방아의 정취와 물소리 등 수경을 즐기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광풍각의 처음 이름은 침계문방(枕溪文房) 또는 계당(溪堂)이었다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인데, 가운데 한 칸에 방을 들였고 빙 둘러 가며 마루를 깔았다. 불을 넣는 아궁이가 뒤편에 있어서 그곳 마루가 다른 것보다 한 단 높게 달려 있는 점이 색달라 보인다. 물론 방문은 여름에는 모두 들어 열도록 되어 있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광풍각과 정천"


"광풍각"

우암 송시열이 쓴 광풍각 현판


"제월당 협문"


제월당(제월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왼쪽에 치우쳐서 한 칸 방이 있고, 나머지 두 칸은 마루로 트여 있으며, 마루 뒷벽에 활짝 열 수 있는 문이 달려 있다. 이 마루에 앉아 내다보면 시선이 광풍각 지붕 너머로 쭉 뻗다가 앞산에 가 닿는다. 「소쇄원도」에는 제월당 왼쪽 앞에 파초가 그려져 있는데, 지금은 그 자리쯤에 석류나무가 있다. 예전에 제월당 왼편 담 밖에 양산보의 아들들이 사랑채 겸 서재로 쓰던 고암정사와 부훤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제월당 전경(소쇄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사랑채와 서재를 겸한 건물이다.)


"오곡문을 새긴 판"


정천, 우물, 오곡문(주변의 돌담은 제주에서 온 일꾼들이 음양의 조화를 맞춰 가며 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 때문에 소쇄원이 있는 마을을 지석리(支石里), 즉 괸돌마을이라 불렀었다고 한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외나무다리와 오곡문(애양단을 지나면서 담은 ㄱ자로 꺾인다. 그 담에 또 오곡문(五曲門)이라 새긴 판이 박혀 있다. 그 옆에는 담 밑에 구멍이 뚫려서 그리로 물이 흘러들도록 되어 있다. 돌을 섞어 흙담을 쌓고 기와를 얹으며 죽 이어 오다가 이곳에 이르자 넓적한 바위를 걸쳐 다리를 놓은 후 그 위에 담을 올린 것이다. 오곡문이란 담 아래 터진 구멍으로 흘러든 물이 암반 위에서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수구 옆에 일각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냥 트여 있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오곡문(담 밑으로 넓적한 바위를 걸쳐 놓아 소쇄원으로 흘러드는 냇물이 자연 그대로 흐르도록 하였다.)


매대(다리를 건너면 두 단으로 된 꽃계단[花階]을 만난다. 이 같은 단은 보통 비탈의 침식을 막을 겸 쌓아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도록 꽃나무를 심어 꾸미는데, 소쇄원에서는 여기에 매화를 심고 매대(梅臺)라 불렀다. 매대 뒤의 담에는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 소쇄처사 양공의 조촐한 집)라는 송시열 글씨의 글자판이 박혀 있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광석(소쇄원에 들어온 사람은 이곳에서 외나무다리로 계류를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구부정한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로 물을 바라보기 딱 좋을 위치에 걸터앉을 만한 바위도 있다. 담 밑으로 들어온 물은 굽이를 이루고 폭포를 이루며 정원 가운데로 흘러가고, 그 가운데 일부는 나무 홈대에 이끌려 대봉대 아래 연못으로 간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애양단(대봉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동쪽 담에는 애양단(愛陽壇)이라고 새겨진 판이 박혀 있다. 이 부근은 유난히 볕이 바르다. 하서 김인후는 소쇄원의 아름다움 48가지를 노래한 「소쇄원 사십팔영」(瀟灑園 四十八詠) 가운데 ‘애양단의 겨울낮’(愛陽冬午)에서 한겨울에 계곡은 아직 얼었는데 이곳의 눈은 모두 녹았다고 노래했다. 양산보는 평소 도연명을 존경했다고 한다. 도연명이 했던 대로 그도 동쪽 담 아래에 국화를 심었을까? 역시 김인후의 「소쇄원 사십팔영」가운데는 동쪽 울타리 아래 점점이 핀 황국이 늦가을의 풍상(風霜)과 잘도 어울린다는 대목이 있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광석과 정천물이 흘러 대봉대 아래 연지로 흐르게 하는 나무 수로


대봉대(대숲이 끝나가면 앞쪽으로 담장과 대봉대가 보인다. 딴 세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봉대는 봉황을 기다리는 곳, 봉황처럼 소중한 손을 기다려 맞는다는 다정한 뜻이 담긴 곳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예전에는 곁에 오동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고목이 되어 없어졌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정천물이 대봉대 아래 연지로 흐르게 하는 나무 속을 파낸 홈대


대봉대 아래 연지(대봉대 아래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고 입구 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조금 더 큰 연못이 있다. 나무 속을 파낸 홈대와 도랑을 타고 온 계곡물은 먼저 작은 못을 채우고, 그 물이 넘치면 다시 도랑을 따라 큰 못으로 흘러들게 되어 있다. 큰 못에서도 넘쳐난 물은 돌로 만든 수구를 통해 계곡으로 떨어진다. 영조 31년(1755)에 만들어진 「소쇄원도」 목판에는 두 못에 물고기가 놀고 못가에 물풀이 자란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못을 연결하는 도랑 중간에는 물레방아가 있어서 계곡으로 물을 날리며 시원한 물소리를 보탰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담양 순이네국밥(담양전통시장 안 국밥집이다. 소머리국밥, 소내장국밥, 순대국밥, 선짓국밥, 돼지머리국밥, 새끼보국밥, 막창국밥, 모둠국밥 등 다양한 국밥을 판매한다. 기호에 맞게 국밥을 주문 할 수 있다. 목살, 곱창전골, 곱창구이도 판매한다. 암뽕순대, 황실이 구이, 찌개 등 별미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모둠 국밥(뚝배기에 내장, 막창 피순대, 선지와 부추, 파, 다진양념을 올려 한소끔 끓인 모둠 국밥에 밑반찬과 양념으로 시금하고 약간 씁쓸한 맛의 김치, 무김치, 새우젓, 쌈장, 청양고추, 양파, 콩나물무침, 파 넣어 무친 짠맛은 덜하고 삭힌 맛은 남은 양념장 등을 곁들여 내준다. 담양 죽향 막걸리 한잔 마신다.)


모둠 국밥(졸깃한 내장, 쫀득한 막창에 채소·선지로 속을 채운 막창 피순대, 신선한 생부추, 콩나물 등을 넣어 끓였다. 삼삼하고 깔끔한 국물에 매곰한 다진 양념이 약간 곁들여 나온다. 맑은 국물을 먹다가 매콤함을 더해주는 다진양념을 풀어 먹는다.)


"대한민국 명승(전라도)"

 

대한민국 명승(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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