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 외암마을

2021. 5. 12. 11:51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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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속문화재 아산 외암마을 (牙山 外巖마을)]

 

설화산 기슭 경사지에 위치한 외암마을은 약 500년전에 강씨와 목씨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조선 명종 때 장사랑을 지낸 이정이 이주해 오면서 예안 이씨가 대대로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이정의 후손들이 번창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점차 양반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정의 6대손인 이간이 호를 ‘외암’이라 지은 후 마을 이름도 ‘외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이 마을에는 영암댁·참판댁·송화댁 등의 양반주택과 50여 가구의 초가 등 크고 작은 옛집들이 상당부분 원래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 양반집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으며, 넓은 마당과 특색있는 정원이 당시 양반의 생활모습과 풍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초가 역시 예스러운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고, 돌담으로 연결된 골목길과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마을의 경관을 더욱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한 마을에 전통적인 수법의 상류·중류·서민가옥이 함께 남아있어 마을의 형성이나 전통가옥의 연구에 매우 가치가 있다. 또 설화산에서 시작된 냇물이 마을을 통과하며 이루어낸 정원은 매우 특색있고 운치있어 마을 전체가 귀중한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영문 설명]

 

Legend has it that Oeam Village, located on a hilly land at the foot of Seolhwasan Mountain, was formed some 500 years ago when the Kang Clan and Mok Clan settled here. When Yi Jeong, who served as a government official during the reign of King Myeongjong of the Joseon Dynasty, moved here, Yean Yi’s Clan began to settle here generation after generation. Since then, with the descendants of Yi Jeong thriving and producing many distinguished figures, the village started to assume the features of a nobility village. After Yi Gan, who was a 6th-generation descendant of Yi Jeong, used "Oeam" as pen-name, the village was also called "Oeam."

 

Today, the original appearance of high-class houses such as Yeongamdaek House in Champandaek House and Songhwadaek House as well as some 50 small and large old thatched-roof houses has been well-preserved. The high-class houses have a wide courtyard and a peculiar garden characteristic of the noble houses of the Joseon Dynasty. The thatched-roof houses have preserved their old style very well. Several alleys formed along stone fences, along with a thick forest surrounding the village, provide a more archaic, scenic view.

 

In particular, since this village has both high-class and middle-class houses and commoners’ houses, it is considered very valuable in studying the formation of village and Korean traditional houses. This house also boasts of a peculiar landscape garden since the water flowing from Seolhwasan Mountain passes through the village and flows to the garden; thus, the whole village has precious value.

※ Viewing of the cultural property above is usually available anytime but may be limited depending on the owner’s personal circumstances.

 

출처:문화재청


"아산 외암마을"


"보호수 수령 600년 느티나무"


"보호수 수령 600년 느티나무"


"아산 외암마을"


"아산 외암마을"


"외암 이간 사당과 종손댁"


"아산 외암마을"


"아산 외암마을"


외암 이간 선생묘(외암 이간선생 (숙종 3년, 1677-영조3년. 1727)은 아산시 송악면 외암마을에서 태어난 조선후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자는 공거, 호는 외암 또는 추월헌이며, 시호는 문정. 본관은 예안이다. 선생은 일찍이 부거한 적은 없으나, 숙종36년(1710) 33세 되던 해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장릉 참봉을 제수 받은 후 회덕현감, 경연관등을 지냈으나 관직에 뜻을 두기 보다는 오로지 학문 연찬에 진력하여 굴기 하였다.

선생은 수암 권상하 선생에게 사사하여 강문팔학사의 으뜸으로 일컬어졌으며. 윤곡-사계-우암-수암-외암 으로 이이지는 기호사림의 중심계여을 이루는 성리학자다.

정조대왕은 선생의 학덕을 기려 이조참판과 성균관제주를 증직하였고 순조대왕은 이조팡서를 증직하고 문정이라는 시호를 하사하셨다.

숙종 33년(1707)에 광덕산 기슭에 관선제를 건립하고 후학에게 유학을 강론하였고 지서로는 「외암유고」가 있으며 「외암문집목판」 307매가 현존한다.

외암마을에 있는 사당에서는 매년 3월에 불친위 제사를, 강당골 문선사에서는 세일제를 유림과 후손이 지내고 있으며, 외암마을 입구에 신도비가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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