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융릉과 건릉

2021. 5. 27. 08:15바롱이의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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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깊은 효심이 깃든 조선 왕릉"

[사적 제206호 화성 융릉과 건릉 (華城 隆陵과 健陵)]

융릉은 사도세자(장조의황제)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의 무덤이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 하였고, 1899년에 장조의황제로 추존하였다. 이때 혜경궁 홍씨도 헌경의황후로 추존하였다.

융릉은 원래 양주의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다. 합장릉인 융릉은 병풍석을 세우고 모란과 연꽃무늬를 새겼다. 석등은 전기의 8각형과 숙종, 영조대에 등장한 4각형 석등의 양식을 합한 새로운 양식이다. 문석인은 머리에 금관을 쓴 예가 나타나고 있어 19세기 이후의 무덤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조는 현륭원을 마련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와 그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정조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많은 인재를 등용하고, 조선 후기의 황금문화를 이룩하였다.

건릉은 현륭원의 동쪽 언덕에 있었으나 효의왕후가 죽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하였다. 무덤은 한 언덕에 2개의 방을 갖추었으며 난간만 두르고 있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혼이 앉는 자리인 혼유석이 하나만 있으며, 융릉과 같이 8각형과 4각형을 조화시켜 석등을 세웠다.

[영문 설명]

Yungneung is the place where Crown Prince Sado and his wife are buried. The prince was named Jangheon when King Jeongjo acceded to the throne and enthroned as Emperor Eui in 1899.

Yungneung was named Hyeollyungwon after the park, Yeongwuwon, was moved from Baebongsan Mountain. A stone screen with patterns of peonies and lotus flowers stands alongside the tomb. The stone lantern is constructed using a new style that combines the octagonal style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e rectangular style of the reigns of Kings Sukjong and Yeongjo. The same method was used in Geolleung and Yereung. The stone figure of a person had great influence on later tombs in the nineteenth century. The image itself is very realistic and invigorating as its head, which formerly hung down to the breast, looks upward. There is a civil officer image with a gold crown, which also was influential in subsequent works. King Jeongjo strove to make Hyeollyungwon creative and original.

Geolleung is the tomb where King Jeongjo, the 22nd king of Joseon, and his wife Queen Hyoui are buried. King Jeongjo is famous for his filial piety and for his recruitment of wise scholars, and during his reign, led the country to a golden age of literature. 

The tomb used to stand at the eastern hill of Hyeollyungwon but was moved to the west because the original place was deemed inauspicious after the queen passed away. The graves of the king and the queen were placed together. The tomb forms a ridge with two rooms surrounded by the balustrade. In addition, other sculptures were arranged following the construction of Yungneung. Although there are two graves in the tomb, there is only one stone for the spirit. A stone lantern was constructed combining octagonal and rectangular shapes. The statues of civil and the military vassals set an example for stone sculptures in the royal tombs in evoking a stable and realistic sentiment.

출처:문화재청


"화성 융릉과 건릉 (華城 隆陵과 健陵)"


"화성 융릉과 건릉 재실"

"천연기념물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먹거리

"우리나라 대표 개비자나무" [천연기념물 제504호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華城 隆陵 개비자나무)] 개비자나무는 개비자나무과의 늘푸른 바늘잎 작은키나무로 보통 높이 3m 이내로 자란다. 융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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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금천교"


곤신지(곤신지는 1789년(정조 13) 현륭원(융릉)이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이듬해에 조성한 원형의 연못이다.조선왕릉 중 드물게 연못을 원형으로 조성한 곳으로. '용의 여의주'의 형상이라고 한다. 이 연못은 남서 방향으로, 이 자리는 융릉의 생방*이기 때문에 연못을 조성하였다.

* 생방(生方 : 수지리 용어로 능·묘자리에서 처음보이는 물을 지칭)


"화성 융릉"


"화성 융릉"


"화성 융릉"


"화성 융릉"


"화성 융릉"


"화성 융릉 비각"


"현륭원 표석, 비문"


"융릉 표석, 비문"


"화성 건릉"


"화성 건릉 정자각"


"화성 건릉"


"화성 건릉 비각"


"화성 융릉과 건릉 초장지 숲길"


정조대왕 초장지(1800년 6월 정조가 승하하자 생전에 아버지 곁에 묻히 고자 했던 정조의 뜻에 따라 현륭원(현재의 융릉) 근처 동쪽에 건릉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1821년 정조비 효의왕후가 승하하여 건릉에 합장하려고 할때 건릉의 능자리가 길지가 아니므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 결과 정조가 생전 능자리로 염두에 두었던 여러 곳 가운데 수원향교 옛터에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하여 모시게 된 것이 현재 건릉이다.

정조가 처음 묻혔던 곳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1년과 2012년 이곳에서 왕릉 규모의 봉분 구역과 담장시설, 그리고 왕릉 부장품에 적합한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곳이 정조가 처음 묻힌 곳으로 알려졌다.)


"화성 융릉과 건릉 숲"


"화성 융릉과 건릉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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