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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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 속 왕들의 안식처, 서울 선릉과 정릉
"도심속 푸른 오아시스" [사적 서울 선릉과 정릉 (서울 宣陵과 靖陵) Seolleung and Jeongneung Royal Tombs, Seoul] 선릉(宣陵)은 조선 9대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1462~1530)의 능이다. 성종은 재위기간 동안 『경국대전』과 『대전속록』, 『국조오례의』를 완성하여 반포하였고, 선비들을 등용하여 기존의 훈구세력과 국정의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정현왕후는 1473년(성종 4) 성종의 후궁이 되었고, 1480년(성종 11)에 왕비가 되었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 앞에서 봤을 때 서쪽 언덕이 성종, 동쪽 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정..
2023.03.03 -
단종의 영원한 휴식처, 영월 장릉
"조선 6대 비운의 왕 단종, 영원한 휴식처" [사적 영월 장릉 (寧越 莊陵) Jangneung Royal Tomb, Yeongwol]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무덤이다.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우게 되었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다. 능의 양..
2022.09.08 -
조선 건국 후 첫번째 능, 서울 정릉
"조선 건국 후 첫번째 능" [사적 서울 정릉 (서울 貞陵) Jeongneung Royal Tomb, Seoul]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1396)의 능이다. 신덕황후는 강윤성의 딸로 고려의 풍습에 따라 태조의 경처(서울에서 결혼한 부인)가 되었다가, 1392년 조선 건국 후 최초의 왕비(현비)로 책봉되었다. 둘째아들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시켜 정치적 기반을 닦았으나 이 일로 왕자의 난이 일어나 정치적으로 혼란하였다. 태조는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중구 정동에 조성하였으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9년(태종 9) 도성 안에 능이 있다는 이유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에 옮겼고, 남아있던 목재와 석물을 태평관太平館과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태조의 왕비로 인정..
2022.07.27 -
화성 융릉과 건릉
"정조의 깊은 효심이 깃든 조선 왕릉" [사적 제206호 화성 융릉과 건릉 (華城 隆陵과 健陵)] 융릉은 사도세자(장조의황제)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의 무덤이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 하였고, 1899년에 장조의황제로 추존하였다. 이때 혜경궁 홍씨도 헌경의황후로 추존하였다. 융릉은 원래 양주의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다. 합장릉인 융릉은 병풍석을 세우고 모란과 연꽃무늬를 새겼다. 석등은 전기의 8각형과 숙종, 영조대에 등장한 4각형 석등의 양식을 합한 새로운 양식이다. 문석인은 머리에 금관을 쓴 예가 나타나고 있어 19세기 이후의 무덤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조는 현륭원을 마련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건릉은 조선..
202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