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후 첫번째 능, 서울 정릉

2022. 7. 27. 07:07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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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후 첫번째 능"

[사적 서울 정릉 (서울 貞陵) Jeongneung Royal Tomb, Seoul]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1396)의 능이다.

신덕황후는 강윤성의 딸로 고려의 풍습에 따라 태조의 경처(서울에서 결혼한 부인)가 되었다가, 1392년 조선 건국 후 최초의 왕비(현비)로 책봉되었다. 둘째아들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시켜 정치적 기반을 닦았으나 이 일로 왕자의 난이 일어나 정치적으로 혼란하였다. 태조는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중구 정동에 조성하였으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9년(태종 9) 도성 안에 능이 있다는 이유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에 옮겼고, 남아있던 목재와 석물을 태평관太平館과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태조의 왕비로 인정하지 않았다. 1669년(현종 10) 송시열 등의 상소로 신주를 종묘에 모시고, 정릉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능침은 추존된 왕비의 능제에 맞게 조성되어 병풍석과 난간석, 무석인을 생략하고 문석인과 석양,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 옛 정릉에서 옮겨온 석물이고 나머지 석물들은 현종대에 다시 조성하였다. 이후 1899년(광무 3) 신덕고황후로 추존되었다.

[영문 설명]

Jeongneung is the tomb where the first queen of Joseon Dynasty, Queen Sindeok, is buried. 

It used to be located at Jeong-dong but moved to the outskirts of the old city since there were some claim that it should not be placed within the city while other royal tombs were located in Uijeongbu. King Taejong removed the T-shaped shrine, constructed the Gwangtonggyo Bridge, and replaced the twelve zodiac animal deities after moving the tomb. For hundreds of years, Jeongneung was not given proper care as a royal tomb and treated as just a nameless one. In 1699, the 10th year of King Hyeonjong’s reign, a famous scholar and officer, Song Si-yeol, made a petition for the title of the tomb. 

Jeongneung is not as well-appointed as tombs of other queens as it has no stone screen or balustrades, and fewer stone sculptures. The system of royal tombs of Joseon was modeled after that of Goryeo. Joseon's tombs take Goryeo's as the standard, attempting a little modification of them, so the rectangular stone lantern in Jeongneung was modeled after one in Hyeonjeongneung, the tomb of King Gongmin and Princess Noguk.

출처:문화재청


"조선 건국 후 첫번째 능, 서울 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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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역 하트랜드 2016 권인경]

정릉은 조선 태조 비 신덕왕후 강 씨의 능으로 서울의 주산인 북한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자연이 인간의 도시를 두 팔 벌려 품고 있는 형상의 중심부에 정릉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인 하트랜드(Heart-Land)는 심장(중심)부, 즉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도 비교적 안전하고, 경제적, 정치적 자립도 가능할 것 같은 장소이다. 그 어떤 외부적 요인에도 흔들리지 않을 요새로 그곳은 어디에도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유토피아)이다.

나는 정릉을 북한산이 품은 인간들의 하트랜드(Heart-land)라고 보았다. 자연의 정기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깃들며 조선의 정기를 품은 정릉을 중심으로 각자 인간들의 하트랜드(Heart-land)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트랜드(Heart-Land)에 대한 상상은 인간이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시도, 즉 삶의 시원으로 가서 궁극적인 안식, 유토피아로 향하고자 하는 바람인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바람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운명적 만남, 버들잎 설화]

예부터 정릉고을은 조선 최초 왕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을 비롯하여 북한산, 정릉천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이야기를 가진 인심이 훈훈한 고장이다.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버들잎 설화는 두사람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리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목이 말라서 우물가를 찾은 이성계는 그곳에 있던 어느 아가씨에게 물을 청하였다. 급하게 물을 찾는 이성계를 본 그녀는 물을 마시다 체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버들잎을 물에 띄워 주었다. 이성계는 이러한 지혜로운 마음 씀씀이에 반하여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버드나무와 버들잎 이야기

버드나무는 음력 2월 봄기운에 가장 먼저 싹을 틔워 봄을 알리는 나무이다. 버드나무는 예로부터 물가에 많이 심어졌으며, 늘어진 가지들이 가늘고 섬세하여 유연함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져 왔다. 고전 문학 작품 속에서 버드나무 밑은 남녀가 만나고 이별하는 공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주술력을 가진 나무로 여겨져 농경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나 기우제를 지낼 때 버드나무로 신대[*]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민간에서는 버들잎이 불임을 치유하는 약효가 있다고 믿기도 했다.

신대(神一) : 신을 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나무 가지.

정릉 가는 길 은행나무와 버들잎 설화가 적힌 안내판


"세계유산 조선왕릉 서울 정릉"

매료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들어간다.


"정릉 재실과 보호수 수령 378년 느티나무"


[정릉 재실 貞陵齋室]

재실(齋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齋室), 제기(祭器)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와 그 외 부속 공간인 행랑(行廊)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실되었던 정릉 재실은 2012년에 발굴 조사하여 2014년에 복원하였다.

행랑, 재실, 제기고


"조선왕릉 세계유산, 정릉"

왕릉 해설사 분을 따라 이동한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


"홍살문과 정자각"


"홍살문과 소나무"


"향로와 어로"


"판위"

임금이 능역에 들어서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는 곳으로 4배를 한다. '배위(拜位)'라고도 한다.


"정릉"


"수라간"

왕릉에 제향을 지낼 때 쓸 제사 음식을 간단히 데우는 등의 준비하는 곳이다.


[정자각]

제향을 모시는 건물로 제향 공간의 중심적 건축물이다. 정청과 배위으로 나누어지며, 두개가 합쳐진 모양이 '정(丁)'자 같다 하여 정자각이라고 하고, 단청이 되어 있다.


[소전대]

제향 후 축문을 태우는 곳이다. 태조 건원릉, 신덕고황후 정릉, 태종 헌릉에만 있다.


"정자각 뒤에서 본 정릉"


[수복방]

수복방은 능에서 화재나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수복이 근무하는 곳이다.


[정릉 비각]

비각은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곳이다. 정릉의 표석은 1899년(광무 3년)에 신덕왕후를 신덕고황후로 추존하고 1900년(광무 4년)에옛표석을 갈아서 만든 것이다.

정릉 비문 貞陵 碑文

大韓 神德高皇后貞陵
대한 신덕고황후정릉

順元顯敬神德高皇后康氏 太祖高皇帝繼后 六月十四日 誕生壬申開國
순원현경신덕고황후강씨 태조고황제계후 육월십사일 탄생임신개국
冊封 顯妃丙子八月十三日 昇退丁丑正月葬于漢城皇華坊 太宗己丑二
책봉 현비병자팔월십삼일 승하정축정월장우한성황화방 태종기축이
月二十三日 移葬于楊州南沙阿里庚坐之原 顯宗己追袱 太廟追上 徽
월이십삼일 이장우양주남사아리경좌지원 현종기유추부 태묘추상 휘
號順元顯敬光武三年己亥十一月追尊恭上 諡號曰 高皇后敬書前面與陰
호순원현경광무삼년기해십일월추존공상 시호왈 고황후경서전면여음
記庸伸小子之微忱焉
기용신소자지미침언
光武四年月日
광무사년월일

정릉 비문 역문 貞陵 碑文 譯文
순원현경 신덕고황후 강씨는 태조고황제의 두 번째 황후인데, 6월 14일에 탄생하여, 임신년(1392)에 조선을 개국하면서 현비로 책봉되었다. 병자년(1396) 8월 13일에 승하하여 정축년(1397) 1월에 한성 황화방에 장사되었다가 태종 기축년(1409) 2월 23일에 양주 남사아리 경좌 언덕으로 이장하였다. 현종 기유년(1669)에 태묘에 부묘하고 순원헌경의 휘호를 추가로 올렸고, 광무 3년(기해년) 11월에 고황후로 시호를 추존하였다. 표석 전면과 음기를 삼가 써서 소자의 작은 정성을 표한다. 광무 4년(1900) 월 일

대한 신덕고황후정릉(고종 황제의 어필)


"정릉 가는 길"

일반 관람객은 출입을 할수 없다. 해설사 분 동행하여 정릉으로 향한다.


"정릉 가는 길에서 본 정자각"


"정릉"


"정릉"


"석마, 문석인, 망주석, 석양"


"능상, 혼유석, 장명등"


"장명등"

옛 정릉에서 옮겨온 석물로 여말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의 장명등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아 조선 왕릉이 고려 왕릉을 규범으로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혼유석"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은 옛 정릉에서 옮겨온 석물이다.


"정릉에서 바라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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