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렴(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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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푸성귀의 마지막 헌신
도종환 시인의 ‘시래기’(해인으로 가는 길, 2006년 발표)란 시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서리에 젖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제일 먼저 버림받은 우거지가 한겨울 추위와 바람, 눈과 서리..
2025.01.20 -
청주 해장국의 터줏대감
청주가 해장국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해방 전부터 성황을 이룬 남주동 부근의 우시장 때문이었다. 청주 우시장은 수원, 의성과 더불어 전국 3대 우시장으로 손꼽힐 만큼 규모가 컸다. 남주동 일대의 우시장이 열리자, 소의 부속물들을 재료로 하는 해장국집들이 하나둘 들어서게 되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번진 해장국은 남주동해장국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됐다. 인근의 ‘서문해장국' 등으로 확장하면서 해장국이 청주를 대표하는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청주 모충대교를 건너면 남주동 소공원이 나온다. 옛 우시장 터다. 남주동 우시장 터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장소다. 청주 3.1 만세운동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다. 남주동 소공원에는 5개의 비석과 '청주 3·1 만세 운동의 자리'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표지..
2025.01.13 -
어쩌면 당신은 꽃밥을 닮았네요?
천황식당은 진주중앙유등시장 가까이 있는 노포다. 1915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4대째 대를 이어 진주비빔밥을 계승해 오고 있다. 선짓국을 곁들여 먹는 진주비빔밥이 대표 음식이다. 석쇠불고기, 육회, 선지해장국(오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판매한다), 콩나물국밥도 맛볼 수 있다. 영업시간은 06:00~21:00(마지막 주문 20:00)이며 연중무휴다. 진주중앙유등시장을 구경하며 골목을 지나 천황식당 앞에 다다른다. 진주 여행하며 몇 차례 와 어렵지 않게 찾았다. 식당 입구엔 자동차 한 대가 서 있다. 현대자동차 포니 픽업이다. 예스러운 식당 건물과 어우러져 옛날 감성을 물씬 풍긴다. 식당 건물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져 새로 지은 뒤 현재까지 보존하며 사용 중이다. 오래된 목조 와가로 온돌과 ..
2025.01.06 -
비움은 묵직함으로 마음에 저장된다
충남식당은 거제 고현종합시장 안에 있는 국밥 전문점이다. 거제 주민들이 즐겨 찾는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내장국밥, 순대국밥, 섞어국밥, 내장국, 순댓국, 섞어국을 판매한다. 특이하게 초등학생까지만 먹을 수 있는 어린이 국밥과 5세까지만 주문할 수 있는 애기국밥이 메뉴로 있다. 매주 화요일, 매달 셋째주 일요일은 쉰다.자리에 앉아 보리차 한잔을 마시며 메뉴판을 살펴본다. 섞어국밥(내장+순대)을 주문한다. 소주는 1인 1병만 판매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원산지 표시판을 보니 국밥에 사용하는 사골, 돼지 내장, 순대 및 쌀, 깍두기용 무, 고춧가루 등 모두 국내산 식재료를 쓴다. 국밥 맛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다. 잠시 후 뚝배기에 담은 섞어국밥과 신맛 덜한 깍두기, 짠맛 덜한 새우젓, 다진양념, 청양고추..
2024.12.30 -
그냥 ‘국수집’이에요?
‘국수집’은 서울 지하철 장한평역 2번 출구로 나와 500여m 직진 후 계종빌딩 방면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100여m 걸으면 나오는 조그마한 식당이다. 12시 조금 넘어 식당 건너편에 다다른다. 하얀 간판에 검은색으로 쓴 ‘국수집’ 글자가 도드라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식당 창에 착한가격 모범업소 엠블럼이 붙어 있다. 그 위로 분홍색으로 크게 쓴 ‘고기국수’가 눈에 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에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꼼꼼히 읽는다. “저희 국수집은 어머니 혼자 소소히 운영하는 사랑방 같은 작은 점포입니다. 욕심 없이 음식을 나누자는 마음이 전해진 건지, 최근 저희도 모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분들께 소개가 되어 갑작스럽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족함이 많고, 많은 ..
2024.12.23 -
대를 잇는 수수하고 따뜻한 온국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용산전쟁기념관 관람 후 나왔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6호선 삼각지역 횡단보도를 건너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를 보고 14번 출구 방향으로 향했다. 삼각지 대구탕집에서 친구와 오후 6시에 술 약속이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국물 생각도 나고 출출한 속도 채우기 위해 ‘옛집국수’로 향했다.옛집국수는 6호선 삼각지역 14번 출구 나와 직진 후 좌측 골목길로 들어가면 있다. 창업주 할머니는 1981년 생계를 위해 국숫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창업주 할머니는 2023년 돌아가셨고 현재는 자녀들이 대를 잇고 있다. 멸치국물로 우려내 유부, 파, 다시마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인 온국수(6,000원)가 대표 메뉴이다. 칼국수(7,000원), 비빔국수(7,000원), 콩국수..
2024.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