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부석(浮石)&선묘각

2021. 6. 29. 05:44바롱이의 쪽지/경상북도

반응형

"영주 부석사 부석(浮石)"

신라 문무왕 1년(661)에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스님을 연모한 '선묘' 라는 낭자가 있었다.

의상스님이 장안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 문하에서 10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심오한 경지에 이른 후 귀국 뱃길에 오르자,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의상스님이 탄 배는 벌써 수평선 뒤를 사라지고 없자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스님이 탄 배를 호위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한다.

그 후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자 선묘신용이 나타나 조화를 부려 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물리쳤다 하여 '부석(浮石)'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이중환의 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아래윗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실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뜬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이리하여 절 이름을 '부석사(浮石寺)' 라 불렀으며, 그 후 선묘신용이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 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영주 부석사 부석(浮石)"


"영주 부석사 부석(浮石)"


"선묘각"

무량수전의 동쪽 뒤편으로 자리하고 있는 한 칸짜리 조그마한 전각이 있는데 선묘각이다. 선묘각은 의상을 사모하여 몸바쳐 그를 도운 당나라 아가씨 선묘의 넋을 기려 근래에 세운 것이다. 

선묘각 벽에는 선묘의 초상, 선묘용이 변해서 떴던 돌로 이도교들을 물러나게 하는 모습, 용이 되어 의상대사의 뱃길을 호위하는 모습 등이 벽화로 남아 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