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5. 07:14ㆍ구석구석 먹거리/별식&별미
[구석구석 별식(別食)&별미(別味)]
별식(別食)은 늘 먹는 음식과 다르게 만든 색다른 음식. 또는 평소에 먹던 것과는 다르게 만든 색다른 음식을,
별미(別味)는 특별히 좋은 맛. 또는 그 맛을 지닌 음식을 뜻한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하며 맛 본 별식, 별미를 소개한다.
[경북 영천 광명식당]
영천 블루캐슬모텔 건너 대로변에 있는 중국집이다. 2019년 영천 여행 때 처음 찾았다. 중년 남 사장님은 서빙 및 손님 응대하시고, 주방은 연세 드신 시아버지와 며느님 두 분이 계셨다.
시아버지 청년 시절부터 개업해 50여 년 영업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로 1대 사장님은 은퇴하시고 중년의 아들 부부가 대를 이어 영업중이다.
신선한 채소와 주문 후 뽑은 생면을 사용한다. 메뉴는 짜장면, 짬뽕, 우동뿐이다. 가스 불 대신 화력 좋은 연탄불을 계속 사용 중이며 불 꺼지면 영업을 못 해 새벽 4시경 남 사장님이 연탄불 갈아 주는 일을 한다.
결제는 현금만 가능했다.(현재는 계좌이체도 가능하다.) 독특하게 짜장면, 짬뽕을 시켜 큰 밥그릇에 담은 막걸리와 함께 먹는 손님들이 많았다.현재는 잔술 대신 막걸릿병으로만 팔지만 잔은 예전처럼 밥 그릇을 내준다.
첫날 짬뽕을 먹고 현금이 없어 계좌 이체해 드리려 하는데 남 사장님이 괜찮다며 나중에 또 오라고 하셨다. 고마움을 간직했다. 다음날 미리 현금을 찾아 다시 들렸다. 짜장면과 막걸리 잔술을 마시고 전날 먹은 짬뽕값과 함께 계산했다. 그날 먹은 짜장면과 막걸리가 늘 가슴에 남아 있었다.
2024년 9월 추억 속 짜장면과 막걸리를 떠올리며 다시 찾는다.
"이유 있는 꿀조합"
[짜장면과 막걸리]
주문 후 뽑은 첨가제 사용 적어 보이는 뽀얗고 넓적한 부드러운 생면을 삶아 그릇에 담고 돼지고기와 파, 양파, 당근 등 신선한 채소, 춘장 등을 섞어 화력 좋은 연탄불에 기름 적게 사용하여 볶은 삼삼한 짜장 양념을 붓는다. 김이 모락모락 난다. 즉석에서 조리한 증거다.
짜장면 한 젓가락 후루룩 먹고 넓고 깊은 밥 그릇 속에 담긴 시원한 막걸리를 들이켠다.
검은 짜장면과 하얀 막걸리의 색감은 대조적이지만 맛은 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짜장면과 술이 된 고봉밥을 먹은 느낌이다. 먹다 보면 약간 텁텁하고 느끼해질 수 있는 짜장면의 기름진 맛을 새곰한 막걸리가 시원하게 달래준다. 꿀조합이다.
단골분들이 함께 먹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2024년 9월 10시 50분쯤 광명식당 문 앞에 선다. 5년 만이다. 식당 좌측 구석에 타고 남은 연탄재가 보인다. 여전히 연탄불로 음식을 만든다는 물증이다.
11시 문 여는 시간이라 문 앞을 서성인다. 남 사장님이 출입문을 열고 나와 더운데 안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첫 손님이다. 자리에 앉아 식당 내부를 살펴본다. 5년 전과 변한게 없어 보인다. 짜장면과 잔술을 주문한다.
남 사장님이 잔술은 팔지 않고 막걸릿병으로만 판다며 속사정이 있음을 말씀해 주신다. 예전에는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와 잔술을 파셨다고 한다. 5년 전 두 번 찾아 첫 날 짬뽕값을 받지 않은 남 사장님, 잔술로 먹은 짜장면과 막걸리, 주방을 지키던 주인 할아버지, 연탄 사용 등을 이야기 드렸다.
주인 할아버지는 코로나19 이후로 자연스럽게 은퇴하셨고, 연탄불은 지금도 사용하며, 자신도 좀 있으면 환갑이라며 아내와 함께 대를 잇는다고 한다.
주방으로 돌아간 남 사장님은 숙성해둔 반죽을 기계로 뽑아내 뜨거운 물에 삶아 하얀 그릇에 담는다. 연탄불 화구 위에 웍을 올리고 채소와 짜장을 볶는다. 듣기 좋은 소리다. 볶은 짜장 양념을 면 위에 붓는다. 메뉴에는 짜장면이라 썼지만, 간짜장과 다름없다.
남 사장님이 막걸리 한 병, 커다란 그릇, 짜장면을 식탁에 놓는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넓고 깊은 밥그릇에 막걸리를 따른다. 하얀 밥 대신 쌀뜨물 같은 뽀얀 막걸리가 담긴다.
막걸릿잔 옆으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갓 만든 음식의 따뜻함은 코로 향을 전한다. 향은 뇌로 전해지고 뇌는 침샘을 자극한다. 손은 뇌의 명령을 재빨리 눈치채고 짜장면을 골고루 비빈다. 숨을 한 번 쉬고 한 젓가락 크게 떠먹는다.
볶은 춘장의 고소함이 코와 입술, 혀를 자극하고 따뜻한 면은 어금니에 맞서지 않고 쩍쩍 붙는다. 알맞게 기름을 머금은 갓 볶은 채소와 돼지고기도 싱싱함을 '아삭아삭' '쫀득쫀득'이란 어찌씨(부사)를 귀와 어금니에 선물한다. 따뜻한 여운을 기억하며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켠다.
색감은 대조적이지만 맛은 히한타! (이 말은 희한하다 즉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아서 절묘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경상도 지방의 말이다.)
짜장면과 술이 된 고봉밥을 몇 번 더 반복해 먹는다. 짜장면의 기름진 맛을 새곰달곰한 막걸리가 말끔하게 달래준다. 꿀조합이다. 내 뒤로 혼자 온 지역 분과 타지서 온 두 명의 손님도 짜장면과 짬뽕에 막걸리를 주문한다.
짜장면과 막걸리. 면과 술. 둘은 어우러져 제3의 풍미를 만든다. 시나브로 하얀 접시 바닥엔 검은 흔적, 밥그릇엔 하얀 흔적만이 남는다. 순수와 혼탁은 사라졌지만 또렷하게 먹는 이 가슴에 스며든다. 5년 전 먹은 추억의 맛을 들춰내고 꾸밈없는 맛을 추억으로 겹쌓는다.
짜장면에 막걸리를 마신다. 많은 분이 함께 먹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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