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청주박물관, 호서의 마한 미지의 역사를 깨우다

2021. 9. 6. 05:26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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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청주박물관 청명관 기획전시실, 호서의 마한 미지의 역사를 깨우다


"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마한(서기 2~3세기)

청주 오송 유적 4지점 47호 무덤(이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는 웅크리고 앉아있는 어미 호랑이가 꼬리 위에 새끼를 태운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단 한 점 밖에 없는것이다.

원래는 허리띠에 고정하기 위한 청동제 걸쇠가 있었는데 부러지자 몸톰에 구멍을 뚫어 철제 걸쇠를 다시 달았으나 이마저도 부러져 버렸다. 뒷면에는 허리띠에 고정하는 원통모양 고정쇠가 있다. 머리와 목은 입체감을 살려 얼굴 윤곽을 강조하였으며 입 안쪽에는 날카로운 이빨과 혀를 표현하였다. 목은 몸통에 비해 짧고 두툼하며 허리는 잘록하고 길다. 몸통에는 전체적으로 세로선, 세모, 마름모 등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꼬리는 돌돌 말린 모습이다.)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뒷면"

뒷면에는 허리띠에 고정하는 원통모양 고정쇠가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 (淸州 雲泉洞 新羅事蹟碑)]

사적비란 어떠한 사건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것으로, 이 비는 청주지방에 있던 어느 사찰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92㎝, 너비 91㎝로, 네모난 형태이다. 1982년 발견되기까지 산직마을의 공동우물터에서 빨래돌로 사용되었는데, 그 탓에 글자가 많이 닳아 있다. 비문은 북조풍의 해서체로 새겼으며, 비의 크기에 비해 글자가 크다. 비문의 내용은 알아보기 어려운데, 대체로 불법을 찬양하고 임금의 덕을 칭송하며 삼국통일의 위업을 기리는 호국불교의 내용을 담으면서, 절의 창건에 관련된 내용을 많이 적었다.

비에 ‘수공 2년’의 중국 연호가 있어 통일신라시대 신문왕 6년(686)에 이 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당시 청주지역이 행정, 군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였음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청주 송절동 유적"

뚜껑있는 굽다리항아리, 뚜껑있는 굽다리바리


"왕 글자가 있는 청동방울"

청주 송절동 유적 마한(서기 3~4세기)


보령 명천동 유적 한나라 거울과 목걸이(보령 명천동 유적은 바다와 산이 동서로 인접해 있는 저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의례공간으로 추측되는 유구는 저구릉지의 평탄면에 연접하는 3개의 환호 중 2호 환호 동쪽 출입구 앞쪽에 위치한다.

북쪽 중앙에서는 청동거울, 그 오른쪽으로 유리구슬이 출토되었으며 다른 옥들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출토되었다. 보령 명천동의 의례공간을 이용했던 집단의 존재여부는 아직 고고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뚜껑 있는 굽다리토기"


"말모양,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예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 예수 부활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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