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서울 경희궁지

2021. 11. 7. 05:29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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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경희궁 흥화문 (慶熙宮 興化門)]

조선 광해군 8년(1616)에 세운 경희궁의 정문이다.

그러나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건립하고자 궁내의 많은 전각을 헐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 그 후 일제는 1932년 남산 자락에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위한 사당인 박문사(博文寺)를 건립할 때 정문으로 사용하였다. 해방후 박문사는 폐사되고 흥화문은 영빈관(迎賓館) 및 신라 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8년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 계획의 일환으로 흥화문을 지금의 자리로 이전(移轉) 복원하였다. 그러나 원 자리는 동향을 보고 배치했다고 하나, 그 위치는 현재 찾기 힘들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의 다포 양식 건물로, 정전인 숭정전, 황학정과 더불어 건축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사적 경희궁지(慶熙宮址)]

원종의 집터에 세워진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이궁이다.

원종(1580∼1619)은 선조의 5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로 후에 왕으로 추존되었다. 1617년(광해군 9년)에서 1620년에 세워진 경희궁은 원래 경덕궁 이었으나 영조 36년(1760)에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의 규모는 약 7만여평 이었다. 그러나 민족항일기인 1907년부터 1910년에 걸쳐 강제로 철거되어 궁궐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였고 궁터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변형되어 결국 현재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경희궁에는 부속건물로 회상전, 융복전, 집경당, 흥정당, 숭정전, 흥학문, 황학정이 있었는데 융복전과 집경당은 없어졌다. 나머지 건물은 1910년 지금의 서울고등학교가 설립된 후, 회상전은 조계사로, 흥정당은 광운사로, 숭정전은 조계사에 옮겼다가 다시 동국대학교 안으로, 흥화문은 박문사로, 황학정은 사직공원 뒤로 각각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영문 설명]

This is a typical case of detached palace of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built on site of the house of King Wonjong.

The original name of Gyeonghuigung Palace, built in the 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1616), had been Gyeongdeokgung Palace, but was renamed in the 3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Yeongjo (1760). Initially, it had an area of approximately 231,000m2, but it lost its status as a palace by the forced removal during the period from 1907 to 1910 when the nationwide anti-Japan struggle broke out. The palace was severely damaged and reduced to its present size.

It had annex buildings – Hoesangjeon, Yungbokjeon, Jipgyeongdang, Heungjeongdang, Sungjeongjeon Halls, Heunghakmun Gate and Hwanghakjeong Pavilion. However, Yungbokjeon and Jipgyeongdang have disappeared. Of the remaining buildings, Hoesangjeon was moved to Jogyesa Temple, Heungjeongdang to Gwangunsa Temple, Sungjeongjeon to Jogyesa Temple first and to Dongguk University later, Heunghwamun Gate to Bangmunsa Temple, and Hwanghakjeong Pavilion to the rear side of Sajik Park. All of these are still preserved today. Currently the base platform of Sungjeongjeon remains, with the terrace stones and some letters carved on a rock, though the stone guardian has been moved. There is a retaining wall built of stone about 100 meters long at the north of the site, and a remarkable dragon head and cloud design carved on the stone stairs to the building can be seen.

출처:문화재청


사적 경희궁지(경희궁(慶喜宮)은 숙종과 경종이 태어난 곳이며 숙종·영조·순조·인헌왕후·인선왕후·인경왕후·선의왕후가 승하했으며 경종·정조·헌종이 즉위한 곳이다.

이런 사실이 상징하듯 경희궁은 조선 후기 정치사의 중심무대로서 지금 서울에 남아 있는 어느 궁궐에도 뒤지지 않는 비중과 중요성을 간직한 궁궐이었다. 이 점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이라 부르고 그와 짝을 이루어 경희궁을 서궐이라 일컬으면서, 인조 이후 역대 왕들이 당시의 법궁인 창덕궁과 이곳을 번갈아 오가며 정무를 보고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더불어 서울의 5대 궁궐로 꼽히던 경희궁은 그러나 어느 결엔가 궁궐이 아닌 제례 공간 종묘에 그 자리를 넘겨주고 잊혀진, 사라진 궁궐이 되어버렸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경희궁 숭정전 (慶熙宮 崇政殿)]

경희궁은 조선 광해군 9년(1617)부터 12년(1620) 사이에 지어진 궁궐로 임금이 항상 머무르던 곳이 아니라 본궁을 떠나 잠시 머무르던 이궁이다.

광해군 10년(1618)에 지어진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임금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고 공식적인 행사를 하던 곳이다. 그러나 1910년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어 1926년 조계사로 옮겨 세워졌다가 현재는 동국대학교 안의 정각원이라는 법당으로 쓰이고 있는데, 내부가 불교 의례를 행하기에 알맞게 변형되어 있다.

앞면 5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정전다운 품격을 갖추고 있다. 경희궁에 있던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장엄한 건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울시에서는 1985년부터 5차례의 발굴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숭정전을 6년에 걸쳐 복원했다. 경희궁 숭정전은 창경궁 명정전과 함께 조선 중기 궁궐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숭정전, 숭정전 답도, 내부 모습"


"숭정전에서 바라본 숭정문 방향 전경"


"경희궁의 편전 자정전"


"태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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